"너는 여전히 어린애구나. 하지만 앞으로도 그래서는 곤란해똑똑히 기억해 둬, 세상에 부는 바람에는 동풍도 없고 남풍도 없어, 전부 북풍뿐이야."
- P100

부모의 시신은 거의 다 타 버려서 얼굴도 분간할 수 없었지만동생은 그렇지 않았다. 부상과 화상이 잘 드러나 오히려 더 끔찍했다. 어찌된 일인지 손톱 밑에 흙이 꽉 차 있었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매장하기 전에 어떻게든 손톱밑을 깨끗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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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인내상자의 환영이 오코마의 꿈에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꿈에서 오코마는 불단 앞에 앉아 무릎에 인내상자를 올려놓고 있다. 당장이라도 뚜껑을 열 기세다. 그때 아버지 히코이치로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코마, 열어 보면 안 돼. 그걸 열면 이 아버지처럼 지옥에떨어진다. 절대로 열어 보지 마.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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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 루이가 후대에 남긴 중요한 유산으로 파리 시테섬에 있는 생트샤펠Sainte Chapelle이 있다. 이곳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 이마에 둘러있던 가시관을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지은 소성당이다. 원래 이 가시관은 비잔티움제국의 국보였다. 이 성물이 파리에 온 계기는 말썽 많은 4차 십자군전쟁이다. 1204년, 비잔티움제국을 돕겠다며 떠난 십자군이 오히려 이 나라를 일부 정복하고 소위 라틴제국을 세워 50년 넘게 통치했다(1204~1261),
그러던 중 라틴제국 황제 보두앵 2세가 재정이 악화되자 베네치아의 은행가에게 거액을 빌리면서 가시관을 담보로 내놓았다. 이 소식을 접한 성왕 루이는 13만 5,000리브르라는 엄청난 돈을 갚아주고 이 성물을 파리로 가져왔다. 이로써 파리는 새로운 예루살렘이며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임을 천명하게 됐다.
가시관뿐 아니라 십자가 일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 예수의 입에 물렸던 해면 등을 함께 확보한 성왕 루이는 이 보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왕실 예배당인 생트샤펠을 지었다. 이 건물은 13세기 고딕 건축의 보석으로서, 특히 벽면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구약의 첫 부분부터 신약의 마지막 부분까지 모두 1,100 장면을 표현한 후마지막 부분에 성 유물을 파리로 모셔 오는 루이 국왕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 가시관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보존하며 특별미사 때 신자들에게 공개했다. 2019년 노트르담 성당에 큰 화재가 났을 때소방관들은 매뉴얼에 따라 가장 먼저 가시관을 구해 가지고 나왔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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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그런 살인들에서 거리를 둘 때였다. 죽음과 죽임은 이제 밀어 두어야 했다. 최근 가마슈는 그런 걸 너무 많이 보아 왔다. 그렇고말고 자신을 지나간 역사, 오래전 흘러간 삶 속에 묻어 두는 것이낫다. 지적 탐색일 뿐이니까.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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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신령한 존재라는 의식은 멀리 켈트족 전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켈트족 왕은 용과 괴물이 상징하는혼돈의 힘과 싸워 이기고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존재다. 켈트 신화에서 왕은 세상의 중심인 신성한 나무에 자리 잡고 우주의 조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며, 치유와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성격을 띠는 유럽의 군주를 ‘기적을 행하는 왕thaunaturgic king‘이라부른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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