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고 보면, 판주의 아들 사랑은 참 한결같았다. 서른이 넘은 아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받은 상이 안방의 한쪽 벽면을 빼곡히 차지했다. 그 모든 상을 받은 아들 자체가 그녀에게는상장일 터였다. 그리고 며느리는 상장에 딸려 오는 사은품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 당연한 사실이 그제야 와닿았다. 

현경은 천천히 덩어리 앞으로 다가갔다. 인기 있는 동영상을 소개하는 방송에서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액체 괴물,
 슬라임이라고도 부르는 찰흙도 뭣도 아닌 덩어리를 마구 늘리고 합치면서 주물거리는 영상이었다. 덩어리는 형광 초록색,
핑크색, 반짝이가 들어간 금색처럼 인위적인 색을 띠었다. 지금 현경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딱 그런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험하게 주물거리고 내버린 액체 괴물. 혹은 슬라임, 젤리. 달콤하고 인조적인 냄새를 풍기며 차갑게 굳어 가는 것.

"편찮아. 전부 언젠가는 끝날 일이야."
놀랍게도 매번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젤리는 종종 그 말을 곱씹었다. 그건 꼭 마법의 주문 같았다. 우울한 날에도, 인간에게 모습을 들킬 뻔한 날에도, 청소기가 유난히 시끄럽게 울어 대던 날에도 그 말을 떠올리면 견딜 수 있었다. 언젠가는 끝날 일, 힘들고 안 좋은 모든 것들은결국 지나간다. 물론 좋은 것들도 지나간다. 

이 세상은 어쩔 수 없는 것투성이니까, 그중에서는 제일 제멋대로인 것은 마음이다. 누군가와 나눈 마음은 제 것인데도 완전한 제 것이 아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창 읽고있는 소설.
앞서 나왔던 에피소드에 엑스트라처럼 등장했던 이들이 얘기가 나온다. 흥미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게 나쁠 것도 좋을 것도 비극도 희극도 없는 얼굴로 노래하는, 그냥 흔한 어느 친구의 류일 뿐이었다.

어떤 마음의 열도가 사그라든 후우리를 휩싸는 알싸한 공기와무미건조하던 일상을 채우는풍부한 감정의 서라운드

그러니까 아이는 집에도 있지 못하고 학교에도 들어가지도 못한채 교문에 매달려서 흔들었다. 몸을,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 까불지는 못하고 그 경계에서 철문에 붙어서 흔들며 소리를 냈다. 노래를 불렀을까, 그러니까 나를 좀 봐달라고, 이렇게 어린 나를 누구도 봐주지 않는데 원래 세계는 이렇게 고독할까, 이렇게 흔들어도 계속 혼자일까, 이렇게, 하고,

물론 연애도 했다. 하지만 애인들에게조차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성의가 없었으므로 오래가지 못하고 시든 배추처럼 종결되곤 했다. K는 실연을 경험하고 나서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고 도리어 고양감 같은 것을 느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위해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깊게 깊게 파고들어가면서 곪고 썩어가는 과정을 괴상한 희열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치명적인 고통에 대해 깨닫지 못한 어떤 마비 상태이기도 했지만 어떻든 그것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도를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저 조용히 활자나 다루면서 고독하지만 생산적으로 인생을 보내고 싶을뿐이었는데

결별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분노와 냉소와 찬멸이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연애를 지속하면서도 결혼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운주가 알거지가 돼서 결혼을 하려야 할 수 없어지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운주는 블랙홀처럼 내 모든 원망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시킨 것이 오 년 연애의 종말이라는사실이 참으로 허망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