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았다. 우리는 모두 ‘남자‘가 이해하는전쟁, ‘남자‘가 느끼는 전쟁에 사로잡혀 있다. ‘남자‘들의 언어로 쓰인 전쟁. 여자들은 침묵한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할머니의 이야기를 묻지않았다. 나의 엄마 이야기도, 심지어 전쟁터에 나갔던 여자들조차 알려들지 않았다.  - P17

또 여자들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론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 있다 - P18

나는 그것이 아니라 ‘여자‘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듣고 싶었고,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 삶의 영역이 저마다 다른 많은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것도 한 번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여러 번 만났다. 보고 또 보고서야 인물을 화폭에 담아내는 초상화가처럼. - P19

"전쟁이 끝나자마자 시집을 갔어. 남편뒤에 숨어 살았지. 하루하루 평범하게,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면서. 그렇게 기꺼이 나를 숨기고 살았어. 그리고 친정엄마가 ‘조용히 입다물고 아무 내색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거든. 나는 조국 앞에 내 할 바를다했지만, 내가 전쟁터에 나갔다는 사실이 슬퍼. 내가 전쟁을 안다는 사실이..
・・・・・・ 당신은 아직 애야. 애. 그래서 나는 이런 일을 하는 당신이 딱해......" 이들이 조용히 앉아서 자신에게 귀기울이는 모습을 종종 본다. - P21

수색견까지 데리고 ・・・・・・ 만약 개들이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어. 서른 명이나 되는 우리 목숨이 다・・・・・・ 이해가 돼?
결국 지휘관이 결단을 내렸어.…………누구도 지휘관의 결정을 아이 엄마에게 차마 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그녀가 스스로 알아차리더군.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물속에 담그더니 그대로 한참을 있었어…… 아기는 더이상 울지 않았지.....… 아무소리도 내지 않았어.....… 우리는 차마 눈을 들 수가 없었어. 눈을 들어아기 엄마를 마주 대할 수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었지...…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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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무게가 늘어 허리가 아프고 발이 자주 부었다. 숨이차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고, 땀을 많이 흘리고 화장실에도쉴 새 없이 들락거려야 했다. 병원에서는 전부 정상적인 징후라고 했다. 그러나 6개월이 되도록 태동이 없었다. 배 속에서뭔가 약하게 꿈틀거리거나 부르르 떠는 듯한 느낌만 아주 가끔 전해질 뿐, 구체적인 아기의 몸이 움직이거나 팔다리가 자궁벽을 때리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녀가 걱정하자 진한 화장을 뒤집어쓴 산부인과 의사는 사납게 그녀를 나무랐다. - P95

"처자 배 속에 있는 그 애 말인데, 그 애를 날 주오. 밭에는 이미 자리가 잡혔고, 이제 씨만 넣으면 된다며? 내 씨를주지 아니, 아예 내 후실로 들어앉는 건 어때? 우리 집 대만이어주면,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내, 애는 물론 처자도 평생 호의호식하며 살게 해 주리다."
"아니, 저기, 할아버지...."
"사위 놈 말이 나이는 문제가 아니라고 처자가 그랬다며?
내 여든둘이지만 이래 봬도 아직은 젊은 놈 못지않게 정정하다오, 호적에도 다 정식으로 올려주리다. 응?" - P104

그렇다면 ‘아이가 제대로 발육을 못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녀는 산부인과 의사의 짙은 화장을 뒤집어쓴 얼음장같은 눈초리를 떠올렸다. 태아에게 발육 상의 이유로 아버지가 그렇게 절실히 필요했다면, 아버지 없이도 이만큼 발육한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의사의 말, 아니 어떤 인상 고약한낯선 젊은 여자의 말만 믿고, 배 속의 아기가 괴물이 되어가고 있을까 봐 지레 겁먹은 건 아닐까? ‘아기를 위해서‘라는 명분아래 아이 아버지를 구하는 데만 너무 열중해서, 정작 중요한 아기에게는 충분히 마음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발육이 어떻게 되었든, 아버지가 있든 없든, 아기는 그녀의 아기였고 또 진정한 의미에서 그녀만의 아기였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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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법은 없지만 그런 세상은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나도 저주 용품을 만드는 걸로 직업을 삼고, 그걸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 P17

사장의 손자는 전등을 켤 때나 끌 때나 하루에도 몇 번씩 스위치를 누르기 위해 토끼의 등을 만졌다.
사장 아들의 집에서 토끼는 더 이상 종이를 갉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 P24

꿈속에서 아이는 몸통이 하얗고 꼬리 끝과 귀끝이 검은 귀여운 토끼와 함께 나무아래 앉아서 즐겁게 자신의 뇌를 갉아먹었다. 갉을수록 아이의 세계는 점점 좁아져서 마침내 앞으로 영원히 토끼와 함께 앉아 있는 나무 아래를 떠나지 못하게 되었으나 아이는 이미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토끼와 함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할 뿐이었다. - P26

지금과 같은 삶을 계속 산다면 나도 언젠가 할아버지처럼
죽어도 죽지 못한 채 달 없는 밤 어느 거실의 어둠 속에서 나를 이승에 붙들어두는 닻과 같은 물건 옆에 영원히 앉아 있게 될 것이다. - P34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있는 사물 외에는 아무것도 상상할 능력이 없어 보이는, 소박하고 건실한 남자였다. 낯선 이성 앞에서 그녀는 내내 화장실이 불안해 어쩔 줄 몰랐다. 남자는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
수줍음 잘 타는 순진하고 얌전한 여성이 제 이상형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남자 앞에서 수줍어하는 여자는 찾기 힘들더군요. 남자 쪽에서 강행하다시피 석달 후에 약혼하고 또석달이 지나자 결혼을 했다. - P42

그녀는 젊은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젊은 자신의 몸을바라보았다. 자궁과 탯줄이 아닌 대장과 배설물로 자신에게서 비롯되어 어엿한 성체를 이룬 존재를 바라보았다.  - P55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이후에도 나를 혐오하고 역겨워하여 줄곧 없애고자 하지 않았느냐? 내게 베풀어준 것이라고는 있어 봤자 네게는 백해무익할 따름인 배설물과 오물뿐이 아니었느냐? 그나마 받아먹으며 사람다운 외양을 이루기 위해 나는 네게서 갖은 수모와 박해를 받아야 했단 말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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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4.3 에 대해 말했잖아. 그 후에 꿈도 꿨는데, 조금씩 여러 가지가 기억이 나려고 하네." 기억의 실을 손으로 감듯이 어머니는 신중하게 이야기했다. 이전에 단편적으로 4.3사건을 말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조금 이야기하다 멈추고 또 이야기하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면 안 돼.
4.3은 특별해. 절대로 들키면 안 돼,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니까! 너희는 몰라. 더 묻지 마."  - P147

개인숭배에는 의문을 품지 않으면서 타인이 소속된 종교는 절대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위화감을 느꼈다. 집에서도 정치적 지향성이 뚜렷한 노래를 부르는 부모님 모습은 좋게 말하면 앞뒤가다르지 않은 순수의 화신으로, 나쁘게 말하면 시야가 좁은 맹신자로 보였다. - P153

이데올로기가 달라 서로 탓하고 싸우고 죽이는 세상에서, 이데올로기가 다른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밥을 해서 나눠 먹는다는 사실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졌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도 같이 살 수있다는 것을 어머니와 카오루가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 P174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 P175

부모님은 장남만이라도 곁에 두게 해달라고 조총련 중앙본부에 탄원했지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신속하게 장남도 조국에 바치라는 명령이 돌아왔다. 조직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김일성을 향한 충성심이 흐려진 증거라고 비난받았다.  - P182

북에 간 직후부터 건오 오빠에게 불행한 일이 이어졌다.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빠가 사랑해 마지않는 음악이었다. 클래식을 포함한 서양음악과 해외문학이 금지된 당시 북조선에서 오빠가 가져간 음악 플레이어와 책들은 큰 문젯거리였다. 비판을 받고,
자기비판을 강요당하고, 감시당하고, 미행당하고…… - P184

기억을 잃어가던 어머니가 김일성을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잔혹하고 순수하고 활기차고 사랑스럽고가엾고 성숙한 소녀 같았다. 인간의 불가사의한 면모가 응축된 이장면은 <수프와 이데올로기> 118분 중에도 가장 보는 이의 마음을사로잡는다. 떠올릴 때마다 숨이 답답해질 정도다. - P194

어머니는 고향을 떠난 지 70년만에 다시 제주도를 방문했다.
기억이 희미해진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을 따라 얼핏 떠오르는 한국의 애국가를 더듬거리며 부르는 조선 국적의 어머니. 그 옆에는부모를 반면교사 삼아 아나키스트로 살고자 하는 한국 국적의 딸과, 북한 정부가 수여한 훈장을 단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사진을 들고 장모님과 아내를 지지하는 일본인 사위가 있다. 4.3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한 우리 중 누구도 한국의 국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세 사람은 함께 밥을 먹는다. 우리는 가족이다. - P195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본 지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초상화를 치우는 장면을 굳이 넣다니, 다시는 북조선에 입국할 수 없을지모른다. 정말로 두 번 다시 가족을 만나고 싶지 않은 거냐. 평양에있는 가족이 걱정되지 않냐‘는 항의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가족을카메라에 담아온 26년 동안 그러한 자문자답을 되풀이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작품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내가 정권이나 조직의눈치를 보며 영화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나.  - P197

어떻게든 초상화를 치우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넣어야 했다.
나 자신과의 결별로서, 새롭게 걸어나가기 위한 생의 마디로서 낡은 시대에 고하는 결별이자 가족과의 결별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는 이제 끝냅시다!‘ 하는 결별. 평양에 있는 가족이 걱정되지 않을 리가 있을까.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에 가족이 있어서 아무 말 못 했던 시대를 끝내고 싶었다. 이제 충분하지 않나.
무엇보다 나는 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 P198

오사카의 영화관에서 가족의 나라를 본 어머니는 "네각오는 알겠다. 앞으로 딸이 하는 일에 말 보태지 않을 테니까 건강만조심하고"라고 했다. 그 후 매달 인삼과 마늘을 듬뿍 넣은 닭 백숙을 만들어 도쿄로 보내주었다. - P199

오사카 집에 더 이상 초상화는 없다. 알츠하이머로 ‘귀국사업‘이라는 말도 잊어버린 어머니다. 어머니는 나와 남편을 포함한가족 모두가 함께 있다는, 당신의 삶일 수 없었던 시간을 살고 있었다. 점차 온화해진 어머니는 매일 그림책을 보면서 당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와 남편은 어머니의 어떤 이야기에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201

어머니는 퇴원 직후 절에 가서 스님에게 건오 오빠 일주기에독경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와 오사카시 덴노지구의 통국사에 가서 부탁을 드렸다. 재일코리안이었던 스님은 북송 사업으로 이산가족이 된 우리의 상황을 잘 알았고, 독경을 마친 뒤에도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어머니는 스님 말씀에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에서 합장하고, 독경을 듣고,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어머니는 내가 알던 어머니와 다른 사람 같았다. 나이 든 어머니가 조금은 작아 보이기도 했다. - P207

받지도 않는, 근원적인 ‘기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해온 모든 행위가 기도였던 것이 아닐까. 남편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깨우고 꾸짖고 칭찬하는 그 모든 것이 기도였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 P209

앞선 두 편의 영화 내내 양영희의 비극은 미완성의 가족에 있다. 도쿄와 오사카, 평양이라는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전체주의의거짓말에 의해 분리된 가족, 국가와 사상이라는 매개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가족의 현실 말이다. 이 가족 내에 놀랍도록 개인 그 자체인 아라이 카오루가 뛰어들고, 그는 끝내 국가 체제의상징들을 뜯어내고 그곳에 진짜 가족사진을 채워 넣고야 만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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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어슴푸레 드러난 원산 풍경은 북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같았다. 시간이 멈춘 듯, 낡아 빠진 듯, 소박한 듯, 과격한 듯, 메일에 싸인 듯, 시치미를 떼는 듯 미처 무언가를 다 감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 P60

고등학생 시절부터 방북을 마치고 출국하기 전 세관검사에서편지나 필름을 빼앗겨 성을 내다 제 무덤을 파는 사람을 여럿 봐왔다. 그들이 저질렀던 실수는 무엇일까. 당국이 몰수하려는 것은 어떤 기록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내가 일본에돌아간 후에도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아야 할 가족과 친척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 P63

"위대한 지도자님 아래, 조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으며 우리 인민에게는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라는 버스 가이드의 진부한 멘트에도 "비록 지금은 ‘고난의 행군‘을 견뎌야 할 시기지만"이라는 둥 이전까지는 들어본 적없던 본심이 섞여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사람들의 표정과 겹치는 교조적인 말에 더욱 마음이 쓰렸다. - P65

원산에서 고속도로를 지나 이 자리로 옮겨진 모두가 고개를 숙일때, 나 혼자 멍하니 동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내뒷머리에 손을 얹고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몇 초 후 다시 머리를 들 때까지 그 손은 계속 내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부동자세에서 풀려난 후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머리를 누르다니, 부모도 한 적이 없는 짓이었다. 형용하기 어려울정도로 소름 끼치는 굴욕감을 맛보았다. - P66

아버지는 북송 사업의 선봉대 역할을 자처했다. 북을 지지하는 조총련과 한국을 지지하는 민단의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동포 사회에서 격렬한 사상투쟁을 벌인 활동가였다. 자신이 가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미화해서 타인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무모함을 혁명적 임무라고 믿고 수행했던 것이다. 자기 자식들 손에까지 편도 표를 들려서 북한에 보낸 몇 년 후, 그 나라에 방문해서야 누구보다 북송 사업의 실태를 잘 알게 된 사람이었다.  - P71

 후회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뿐더러 용서받을 수없다는 자각도 있었을 터이다. 세 아들과 가족들이 ‘인질‘이 되고야 말았으니 그 체제에 순응하며 살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훈장을달고 활짝 웃는 부모님의 얼굴이 피에로 같다고 생각하며 나도 웃었다.  - P72

"아버지, 우리 셋 대신에 영희 하나 정도는 자유롭게 해주세요. 영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잖아요." 전화 오빠의 말에 아버지는 조용해졌다. 아버지와 머리를 맞대듯 수화기에 귀를 대고 있던 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 P73

어째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살아본 적도 없는 나라의 영향을이토록 직접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일까. 나에게 북한이란 도대체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 P76

‘난민 여권‘이라 불리는 재입국 허가증만 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미국에 온 것부터가 무모했다. 만약 전쟁이라도 나면 정식 여권(국적)이 없는 나는 의지할 대사관도 없는 것이었다. 일본 특별영주권자라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지켜줄 수 있을까. 아나키스트처럼 살기를 바라 마지않았지만, 그때만큼은 몹시도 불안해서 위조 여권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고심할 정도였다. 평양행이 무산될까 마음의 기둥이 부서져 내리는 심정으로 TV와 라디오에서 계속흘러나오는 뉴스에 귀 기울였다. - P77

"안녕, 영희,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파일이 학생비자 신청을위해 대사관에 제출할 서류예요. 불안하겠지만 정신 바짝 차려요.
당신은 우리 대학원의 정식 학생이고,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도학생의 배울 권리를 지키는 것이 대학의 의무입니다. 만약 미국에오기 위한 비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직접 주일 미국대사관에 요청할 거예요. 이 건에 관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우리에게 맡겨요. 가족을 만나러 간다면서요. 여행 잘해요!" - P80

평양에서 촬영한다는 어려움과 자기 가족을 찍는다는 어려움사이에서 고민도 많겠지만 너무 무리하지 마. 후회도 하지 말고 찍을 수 있는 만큼 찍어둬. 영화로 만들지 말지는 나중에생각하면 되니까. 영희에게도 가족에게도 틀림없이 귀중한 기록이 될 거야.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나 에세이면 또 어때.
귀중한 자료를 만들어두는 거야. 뉴욕에 돌아오면 또 이야기하자. - P81

우선 찍자,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그 말이 나를 구원했다. 이미 시작된 가족 다큐멘터리 프로젝트가 행여나 가족을 상처 입히지 않을까 꿈속에서조차 고민하던 시기였다. 나는 은사가 등을 떠밀어준 덕분에 미국대사관에 제출할 편지와 캠코더를 들고 뉴욕에서 오사카로 날아갔다. - P81

잠옷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는 아버지의 캐릭터에 빠졌던 관객들이 확 깨는 장면이다. 딸인 나조차 귀를 막고 싶어지니 무리도아니다. ‘오오, 그렇군, 역시 사고방식이 다르네. 이 사람들과 서로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어‘ 낙담하게 되는 연설. - P84

얼핏 보면 남들의 부러움을 살 법한 훌륭한 잔치 같았지만, 어딘가 코미디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높다란 천장 아래으리으리한 연회장에 들어찬 커다랗고 둥근 테이블, 그 위에 수북이 담긴 소박한 조선 요리와 술, 오빠들 부부와 조카들은 어머니가일본에서 보낸 정장과 민족의상을 입고 있었다.  - P86

아버지가 "나에게는 아들, 딸, 손자들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뒤 "이 젊은이들을 혁명가로!"라고 외쳤을 때, 나는 무심코 조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설마, 말도 안 돼‘라는 제스처를 조카들에게 해 보이자 모두가 나를 가리키면서 웃음을 참았다.
조카들이 보기에도 나는 ‘자유분방한 문제아‘겠거니 생각하자 옷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캠코더가 흔들리지 않도록 팔에 힘을 주었다 - P87

가족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해부하여 내 백그라운드의 정체를 넓고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 - P87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본심과 명분 사이를 오가지 않을까. 본심 속에도 명분이 있고 명분도 본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다면체라 여러 측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비범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평범해 보여도 인간이란 그러한 생명체인 것이다. 훈장을 단 아버지를보면 잠옷 차림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혁명을 외치는 아버지도 평범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88

화가 났다.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다는 그의 ‘죄‘는 다른 나라였다면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몇 년 동안 감옥에가둬놓고 이제 와 ‘무죄‘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는 수용소에서 다리를 다쳤다고 했지만 나는 고문이 아닐까 의심했다.

불합리한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의 불합리성에는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하기마련이다. 원래 그런 나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예외로 두는 건 불공정한 것 아닌가. ‘김씨 왕조‘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공정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 P90

"세 명 전부 보내서 후회해?" 갑자기 물어보자 침묵이 흘렀다.
될 대로 되라지 생각한 순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미 가버린 건 별수 없다 싶지만, 그 가서……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으려나 그렇게는 생각하지." 내 귀를 의심하면서 신중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타임캡슐을 타고 북송 사업이 활발했던 무렵으로 돌아가서 목차를 훑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아버지 연세가? 아들들을 보냈을 때. 아버지는 몇 살이
"몇 살이었으려나……"
"지금부터 32, 33년 전이면 아버지가 43, 44세?"
"당시 전망이라는 게, 재일조선인 운동이 제일 앙양하던 시기이기도 하고, 문제가 다 잘풀리는 쪽으로 보았으니까, 안일했지......" - P92

아버지는 <디어 평양>의 클라이맥스에서 내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허락하면서 한국에 시집가도 되니까 그저 상대만 찾으라고 말한다. 자신은 생애 마지막까지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하겠지만, 딸은 별개이니 자유롭게 살라고 한다.
실은 오빠들의 ‘귀국‘에 대해 후회하는 장면부터 나의 국적 변경을 허락하는 장면까지 모두 같은 날 찍은 영상이다. 그다음 날, 나 - P93

나는 조직의 태도는 모른 체하고, 가족과 친척을 지원하는 데필사적인 부모님에게 오랫동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만은 나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아들과 손주들이 인질처럼 잡혀 있는 부모님이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다고. 아이를 낳아본 적 없는나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세운 책망의 가시에 자꾸만 스스로 찔렸다. - P94

"사람이 할 말이 있으면 감독인 나한테 해야지 모르는 사람한테서 협박 전화 같은 거 오니까 기분 나쁘겠다. 미안해요."
"모르는 사람도 아냐, 오래 알고 지냈으니 목소리만 들으면금방 알지. 너한테 이상한 전화가 안 오면 됐어. 가족 기록을 영화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언제나 당당한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 P95

"설마 그럴 리 없어. 아직은 보낼 수 없어. 다시 한번 손주를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아직 영화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주인공인데, 아버지가 처음으로 봐야 하는데." 조수석에 앉은 나는 중얼중얼거리다가 소리 내어 울었다.  - P97

 "아버지, 힘내자!"라는 내 말에 아버지도 "힘내자!"라고 화답했다. "힘내서 병을 고쳐 집에 가야지. 손주 보러 평양에 가야지" 그렇게 애버지를 격려했다. 집에 가자, 가족이 있는 평양에 가자. 그 말이 우리의 암호가 되었다. - P100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입힐 옷을 들고 병실에 도착했다. 간호사들도 들어왔다. 아버지의 숨은 더욱 거칠어져갔다. 상반신을 공중으로 밀어 올리듯 들숨을 쉬고, 떠오른 머리와 등을 침대에 격렬하게 떨어뜨리며 날숨을 뱉었다. 아버지는 이를 여러 번 반복하다천천히 단계를 거치듯이 숨을 거두었다. 인간은 이렇게 죽어가는것이라고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계속 잡고 있던 아버지의 손이 차가워졌다. 얼굴도 목덜미도 차가워졌다. 차가워도 괜찮으니까 관에 들어가지 말고 영원히 이대로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103

대가족에 둘러싸인 선화가 웃었고, 선화가 웃으면모두가 웃었다. 연출되고 강요된 미소가 아닌, 가족의 일상적인 표정이 거기 있었다. 그때 나는 이 미소를 찍기 위해 평양까지 온것임을 확신했다. 더 이상 검열도 두렵지 않았다.  - P112

정순 씨는 무척 소박한 사람이었다. 결혼 선물로 어머니가 일본에서보낸 속옷을 아깝다며 한 번도 입지 않고 상자에 고이 넣어 서랍에보관해두었다고 했다. 예쁜 레이스가 달린 속옷을 몇 번이고 꺼내서 물끄러미 보았다고 했다.  - P117

사회주의를 몸에 두르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그 위에 자본주의를 덮은 모습이 선화를 둘러싼 환경을 보여주는 듯했다. - P118

우습게도 재혼 생각이 없다는 오빠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이 나서 인기는 더욱높아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일본에서 정기적으로 생활비와 애정이 가득 담긴 소포가 온다는 사실이었다.  - P121

아버지는 열다섯 때 제주도에서 헤어진 채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 할머니를, 세 오빠들은 오사카에 살면서 물자 공급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를, 올케언니들은 친정어머니를, 선화의 이복형제인 지성과 지홍은 자신을 두고 떠나간 친모와 그 이후 자신들을 키워준 정순 씨를, 선화도 다섯 살 때 사망한 친모 정순 씨를. 이 얼마나 보편적인 노래인가. 전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어 불리면 좋겠다. - P125

예전부터 만들 생각이라고 말은 했지만.
이 방북 직전에 <디어 평양>을 완성했기 때문에 출연자인 오빠들에게 알려야 했다. 이미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이 정해진 상태였다영화제와 영화에 대해 뜨겁게 논하는 여동생을 보면서 오빠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우리 걱정은 하지 마"라고 말해주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빠에 대한 고마움과 죄책감과 불합리에 대한 분노, 그리고 새로운 결의가 마음속에 뒤섞였다. "내 동생이 영화감독으로서 한국에 가는 셈이네. 힘내."오빠는 덧붙였다. - P131

 고작 연극에 관한 대화일 뿐인데 녹화를 하면문제의 소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춘기 소녀가 아렇게까지 위축되어 살아가야 하는 감시 체제란 대체 무엇인가. - P133

‘아버지 용태가 호전되면 평양에서 요양하는 것이 어떨까요?
조선에도 좋은 온천이 있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서 병을 이겨냅시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편지 내용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이시점에도 송금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친척의 편지를 받았을 때는공포심마저 느꼈다. 어머니에게 말만 하면 무엇이든 보내주는 관계가 이미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에 절망스럽기도 했다.  - P138

하지만 아버지를 완벽하게 간호하려는 어머니를 보조하면서 내 삶은 이미 파탄 나고 있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력이 없었다. 언제쯤이면 혼자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가족에게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또다시 죄책감에 시달렸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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