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4.3 에 대해 말했잖아. 그 후에 꿈도 꿨는데, 조금씩 여러 가지가 기억이 나려고 하네." 기억의 실을 손으로 감듯이 어머니는 신중하게 이야기했다. 이전에 단편적으로 4.3사건을 말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조금 이야기하다 멈추고 또 이야기하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이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면 안 돼. 4.3은 특별해. 절대로 들키면 안 돼,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니까! 너희는 몰라. 더 묻지 마." - P147
개인숭배에는 의문을 품지 않으면서 타인이 소속된 종교는 절대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위화감을 느꼈다. 집에서도 정치적 지향성이 뚜렷한 노래를 부르는 부모님 모습은 좋게 말하면 앞뒤가다르지 않은 순수의 화신으로, 나쁘게 말하면 시야가 좁은 맹신자로 보였다. - P153
이데올로기가 달라 서로 탓하고 싸우고 죽이는 세상에서, 이데올로기가 다른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밥을 해서 나눠 먹는다는 사실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졌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도 같이 살 수있다는 것을 어머니와 카오루가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 P174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 P175
부모님은 장남만이라도 곁에 두게 해달라고 조총련 중앙본부에 탄원했지만,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신속하게 장남도 조국에 바치라는 명령이 돌아왔다. 조직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김일성을 향한 충성심이 흐려진 증거라고 비난받았다. - P182
북에 간 직후부터 건오 오빠에게 불행한 일이 이어졌다.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빠가 사랑해 마지않는 음악이었다. 클래식을 포함한 서양음악과 해외문학이 금지된 당시 북조선에서 오빠가 가져간 음악 플레이어와 책들은 큰 문젯거리였다. 비판을 받고, 자기비판을 강요당하고, 감시당하고, 미행당하고…… - P184
기억을 잃어가던 어머니가 김일성을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잔혹하고 순수하고 활기차고 사랑스럽고가엾고 성숙한 소녀 같았다. 인간의 불가사의한 면모가 응축된 이장면은 <수프와 이데올로기> 118분 중에도 가장 보는 이의 마음을사로잡는다. 떠올릴 때마다 숨이 답답해질 정도다. - P194
어머니는 고향을 떠난 지 70년만에 다시 제주도를 방문했다. 기억이 희미해진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을 따라 얼핏 떠오르는 한국의 애국가를 더듬거리며 부르는 조선 국적의 어머니. 그 옆에는부모를 반면교사 삼아 아나키스트로 살고자 하는 한국 국적의 딸과, 북한 정부가 수여한 훈장을 단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사진을 들고 장모님과 아내를 지지하는 일본인 사위가 있다. 4.3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한 우리 중 누구도 한국의 국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세 사람은 함께 밥을 먹는다. 우리는 가족이다. - P195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본 지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초상화를 치우는 장면을 굳이 넣다니, 다시는 북조선에 입국할 수 없을지모른다. 정말로 두 번 다시 가족을 만나고 싶지 않은 거냐. 평양에있는 가족이 걱정되지 않냐‘는 항의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가족을카메라에 담아온 26년 동안 그러한 자문자답을 되풀이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작품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내가 정권이나 조직의눈치를 보며 영화를 만들 거라고 생각하나. - P197
어떻게든 초상화를 치우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넣어야 했다. 나 자신과의 결별로서, 새롭게 걸어나가기 위한 생의 마디로서 낡은 시대에 고하는 결별이자 가족과의 결별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는 이제 끝냅시다!‘ 하는 결별. 평양에 있는 가족이 걱정되지 않을 리가 있을까.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에 가족이 있어서 아무 말 못 했던 시대를 끝내고 싶었다. 이제 충분하지 않나. 무엇보다 나는 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 P198
오사카의 영화관에서 가족의 나라를 본 어머니는 "네각오는 알겠다. 앞으로 딸이 하는 일에 말 보태지 않을 테니까 건강만조심하고"라고 했다. 그 후 매달 인삼과 마늘을 듬뿍 넣은 닭 백숙을 만들어 도쿄로 보내주었다. - P199
오사카 집에 더 이상 초상화는 없다. 알츠하이머로 ‘귀국사업‘이라는 말도 잊어버린 어머니다. 어머니는 나와 남편을 포함한가족 모두가 함께 있다는, 당신의 삶일 수 없었던 시간을 살고 있었다. 점차 온화해진 어머니는 매일 그림책을 보면서 당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와 남편은 어머니의 어떤 이야기에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P201
어머니는 퇴원 직후 절에 가서 스님에게 건오 오빠 일주기에독경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와 오사카시 덴노지구의 통국사에 가서 부탁을 드렸다. 재일코리안이었던 스님은 북송 사업으로 이산가족이 된 우리의 상황을 잘 알았고, 독경을 마친 뒤에도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어머니는 스님 말씀에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에서 합장하고, 독경을 듣고,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어머니는 내가 알던 어머니와 다른 사람 같았다. 나이 든 어머니가 조금은 작아 보이기도 했다. - P207
받지도 않는, 근원적인 ‘기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해온 모든 행위가 기도였던 것이 아닐까. 남편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깨우고 꾸짖고 칭찬하는 그 모든 것이 기도였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 P209
앞선 두 편의 영화 내내 양영희의 비극은 미완성의 가족에 있다. 도쿄와 오사카, 평양이라는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전체주의의거짓말에 의해 분리된 가족, 국가와 사상이라는 매개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 기이한 가족의 현실 말이다. 이 가족 내에 놀랍도록 개인 그 자체인 아라이 카오루가 뛰어들고, 그는 끝내 국가 체제의상징들을 뜯어내고 그곳에 진짜 가족사진을 채워 넣고야 만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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