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조항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최고의헌법적 가치이자 헌법과 국가의 존재 이유다. 인간의 존엄성은 다른 권리나 법 원칙과 충돌할 때 우선순위를 비교해서 제한하거나 후순위로 돌릴 수 없다. 앞서 본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고, 누구에게도 양보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결적인 목적이며, 헌법을 정점으로 한 법질서는 모두 이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 P32
내가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 국가는 인간을 위한 도구이지 그 반대가아니다. 존엄한 것은 대한민국도 아니고, 한민족도 아니다. 인간이다. 여기서의 인간이란 무슨 거창한 집단으로 묶여 추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다. 국가는 굶주리지도, 피 흘리지도 않는다. 굶주리고 피 흘리는 것은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 P33
인간은 서로에게 상냥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은존엄한 것 아닐까. - P47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에 사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자율적 이성을 가졌기에 존엄한데, 그런 인간이 스스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선택을 했다면 그의 행위에 걸맞은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그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방법이라는논리다. 사형 집행이 시민사회의 의무라고까지 했다. 세상이내일 멸망해서 최후의 일인이 남을지라도 사형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는 살인자를 처형하지 않은 모든 시민들 역시 살인에 동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정도로 정의의 실현을 중요시했다. - P50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자신의선택에 책임을 지는 존재, 객체가 아닌 주체인 존재. 인간을 그런 존재로 인정하면서 비로소 근대가 시작되었다. - P61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헌법은 많은 권리의 리스트를 적어놓고 있다. 교육받을 권리(제31조), 근로의 권리(제32조),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제33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환경권, 제35조), 그리고 가장 포괄적인 권리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제34조). - P62
결국 사회적 기본권은 이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입법에 의해 생명력을 얻는다. 헌법 교과서에는 사회적 기본권에 대한설명이 자유권, 평등권 못지않은 분량으로 적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에는 재미없어서 쓰지 못하는 이유는 그 설명이라는 것이 죄다 ‘국가는 ~하여야 한다‘는 당위에 그치는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아직 사회적 기본권을 채우는 구체적인 법률들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 P66
불쌍해하는 마음, 측은지심이 인간의 본래 타고난 본성인사단중의 으뜸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정치도 이 마음으로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모두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있다. 왕이 다른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으면,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가 있다. 그 마음으로 정치를 행하면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이듯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고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보지 못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P69
누구든 지금 현재, 자기가 속한 사회 안에서 기준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인간다운 생활인가, 라는 기준점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 기준점이 올라가는 것은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사회의 발전이다. 아니, 배부른 소리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배부른 소리가 인간사회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결핍이 변화를 낳는다. - P72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의 일상에서도 인간 존엄에 대한 감수성은 작동해야 한다. 전염병과 싸우는 게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성소수자가 주로 드나드는 클럽에 누가 어느 날 들렀는지, 누가 언제 어느 모텔에 들렀는지까지 알 수 있도록 개개인의 동선이공개되는 상황이 아무 문제 없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마음,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운동화깔창을 대신 사용하고 있다는 일을 알게 되고는 앞뒤 따질 겨를도 없이 ‘아유 어째! 그래선 안 되지!‘ 하는 소리가 터져나오게 되는 마음, 학생들에게 점심 한끼라도 무료로 먹을 수 있게해주되, 이왕이면 사춘기 아이들의 자존감까지 배려해서 누구는 돈을 내고 먹고 누구는 무료로 먹는지 알 수 없도록 제도를만들어보자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는사회를 만든다. - P73
사람이 죽든 말든 정해놓은 매뉴얼과 절차가 더 중요한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는 제도는 있을지 모르되 인간을 존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다. 사람에게 차마 해를가하지 못하고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맹자의 오래된 가르침이 어쩌면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복잡한 시스템으로 가득한 21세기에 더욱 필요한 헌법적 감수성일지도 모르겠다. - P75
이제 법치주의는 단순히 제도여서는 안 된다. 사고방식이어야 하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법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누구든 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말고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사회가 진정한 법치주의 사회다. - P82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 몇 줄만 보면 뻔해 보이는 일을갖고 경찰과 검찰을 거쳐 1심, 2심, 3심까지 재판을 하도록 시스템을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 신속하고 손쉬운 정의를 위해사람을 물에 던져 가라앉는지 뜨는지로 마녀인지 여부를 판단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참 미개했었다고 비웃지만, 마녀사냥은 지금 이 순간도 인터넷 여기저기서 새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P83
양쪽 모두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절차‘가 중요해진다. 법치주의의 핵심은 권선징악이 아니다. ‘적법 절차다. 앞에서 언급한 가치상대주의, 법적 안정성, 중립성 등을 보장하기 위해 법은 절차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 P86
그래서 법은 때로는 진실보다 절차적 정당성을 우선시한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 그 한 예다. 위법하게 얻은 증거는 아무리 진실에 부합한다 하더라도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원칙이다. 비록 그것이 뻔뻔한 악인을 처벌할 수있는 유일한 증거라 해도, 국가권력이 위법한 수단을 통해 얻은 증거를 이용해 처벌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악인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강력한 국가권력에게 정의의 이름으로 위법한 수단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나머지 시민들 또한 위험에 몰아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 P87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가 다양해졌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과거에는 왕이나 귀족이 그 주체였다면 지금은? 국가권력뿐아니라 빅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간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 기업을 비롯한 거대기업들, 양극화의 흐름에서낙오된 이들을 유혹하여 군림하는 종교집단들, 인터넷을 무기로 익명의 집단으로 뭉쳐 개인을 공격하는 군중.... 억압 주체가 왕이나 귀족뿐이었던 시대에 다져진 법리로 지금 시대의자유에 대해 논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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