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부터 인내상자의 환영이 오코마의 꿈에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꿈에서 오코마는 불단 앞에 앉아 무릎에 인내상자를 올려놓고 있다. 당장이라도 뚜껑을 열 기세다. 그때 아버지 히코이치로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코마, 열어 보면 안 돼. 그걸 열면 이 아버지처럼 지옥에떨어진다. 절대로 열어 보지 마.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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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 루이가 후대에 남긴 중요한 유산으로 파리 시테섬에 있는 생트샤펠Sainte Chapelle이 있다. 이곳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때 이마에 둘러있던 가시관을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지은 소성당이다. 원래 이 가시관은 비잔티움제국의 국보였다. 이 성물이 파리에 온 계기는 말썽 많은 4차 십자군전쟁이다. 1204년, 비잔티움제국을 돕겠다며 떠난 십자군이 오히려 이 나라를 일부 정복하고 소위 라틴제국을 세워 50년 넘게 통치했다(1204~1261),
그러던 중 라틴제국 황제 보두앵 2세가 재정이 악화되자 베네치아의 은행가에게 거액을 빌리면서 가시관을 담보로 내놓았다. 이 소식을 접한 성왕 루이는 13만 5,000리브르라는 엄청난 돈을 갚아주고 이 성물을 파리로 가져왔다. 이로써 파리는 새로운 예루살렘이며 기독교 세계의 중심지임을 천명하게 됐다.
가시관뿐 아니라 십자가 일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 예수의 입에 물렸던 해면 등을 함께 확보한 성왕 루이는 이 보물들을 보존하기 위해 왕실 예배당인 생트샤펠을 지었다. 이 건물은 13세기 고딕 건축의 보석으로서, 특히 벽면을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구약의 첫 부분부터 신약의 마지막 부분까지 모두 1,100 장면을 표현한 후마지막 부분에 성 유물을 파리로 모셔 오는 루이 국왕 자신의 모습을 담았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 가시관은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보존하며 특별미사 때 신자들에게 공개했다. 2019년 노트르담 성당에 큰 화재가 났을 때소방관들은 매뉴얼에 따라 가장 먼저 가시관을 구해 가지고 나왔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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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그런 살인들에서 거리를 둘 때였다. 죽음과 죽임은 이제 밀어 두어야 했다. 최근 가마슈는 그런 걸 너무 많이 보아 왔다. 그렇고말고 자신을 지나간 역사, 오래전 흘러간 삶 속에 묻어 두는 것이낫다. 지적 탐색일 뿐이니까.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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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신령한 존재라는 의식은 멀리 켈트족 전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켈트족 왕은 용과 괴물이 상징하는혼돈의 힘과 싸워 이기고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존재다. 켈트 신화에서 왕은 세상의 중심인 신성한 나무에 자리 잡고 우주의 조화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며, 치유와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성격을 띠는 유럽의 군주를 ‘기적을 행하는 왕thaunaturgic king‘이라부른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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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세속 국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놀라운 반전이 준비되었다. 교회의 근본적 변화가 다시 세속 국가의 발전을 가져왔다. 쉽게 말해 교회 공동체의 발전을 모범으로 삼고 따라 한 것이다. 그들도 로마법을 연구하여 국가의 기본법을 다듬더니, 각국내부에서는 국왕이 로마황제와 다름없는 지상권을 가진다는개념을 만들었다.  - P123

우르바누스 2세는 이것을 발전시켜 신앙의 적과 싸우러 가는 행위가 순례라는 놀라운 해석을 제시했다. 십자군운동은 개념적으로 전투 이전에 순례 행위다. 기사들은 자신을 순례자로 칭했다. 다만 칼을 가지고 순례에 나선 점이 달랐을 뿐이다. 성스러운 전투와 참회, 이 두 가지를 연결한 것이 십자군운동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폭력을 휘둘러 살인을 하는 행위가 죄를 닦는 선행이 되다니! - P133

소년 십자군에 대해 기록한 연대기는 50개가 넘는다. 당시 기록에서는 ‘푸에리pueri‘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말은 10대 청소년을 가리킨다. 이와 관련해서 학계에서 비판적인 견해가 제시된 적이 있다. 1970년대에 피터 라츠Peter Raedta라는 역사가는 ‘푸에리"라는 말은 실제 나이가 적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 곧 가난한사람들, 주변인, 배척당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했다. - P139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종교적 흥분과 열정에 휘몰린 희대의 사건은 심대한 위기에 빠져든 중세 유럽 사회의 종말론적 분위기를말해준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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