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1월 30일에 탄생한 제3제국은 히틀러의 호언장담에 따르면천년을 이어갈 것이었으며 나치 용어로 흔히 ‘천년제국‘이라 불렸다. 제3제국은 12년하고도 4개월을 버텼지만, 그 짧은 기간에 일찍이 지구상에서 벌어진 그 어떤 분란보다도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분란을 일으켰고, 독일 국민을 그들이 천년 넘게 알지 못했던 권력의 정점에까지 끌어올려서로는 대서양부터 동으로 볼가 강까지, 북으로는 노스케이프부터 남으로 지중해까지 펼쳐진 유럽의 지배자로 만든 다음, 전쟁 막바지에는 파괴와 황폐의 심연으로 추락시켰다. 제3제국은 냉혹하게 전쟁을 유발한뒤 전시에 피정복 국민들을 상대로 공포정치를 펼치면서 역사상 그 어떤야만적 압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생명과 정신을 계획적으로 도살했다. - P21
성년을 앞둔 몇 해 동안 히틀러를 그토록 행복하게 해준 것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였다. 그런 자유 덕에 생각에 골똘히 잠기고, 몽상에 빠지고, 친구와 함께 시가지나 시골길을 배회하면서 세상의 무엇이잘못되었고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을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고, 저녁이면웅크린 자세로 책을 뒤적이고 이따금 린츠나 빈의 오페라하우스를 찾아뒤쪽 입석에서 리하르트 바그너의 신비주의적이고 이교적인 작품을 넋놓고 감상할 수 있었다. - P38
청소년기의 친구는 훗날 히틀러를 얼굴이 창백하고 병약하고 빼빼 말랐던 사내, 보통은 수줍어하고 과묵하면서도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는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화를 내는 사내였다고 기억했다. 히틀러는4년간 슈테파니 stefanie라는 이름의 어여쁜 금발 소녀를 깊이 짝사랑하면서 그녀가 종종 어머니와 함께 린츠의 란트슈트라세를 산책하는 모습을흠모하는 눈길로 바라보긴 했어도 직접 말을 나눠보려 하지는 않았고, 이런저런 애정의 대상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자신의 허무맹랑한 공상세계에 가둬두기를 좋아했다. - P38
그렇지만 이런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끝끝내 어엿한 직장을구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나의 투쟁>에서 밝혔듯이. 그는 행여 프롤레타리아트 신분으로, 육체노동자 신분으로 미끄러져 내려갈까봐 전전긍긍하는 프티부르주아지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 P45
히틀러의 ‘예술적 성취는 이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죽는 날까지 ‘예술가‘를 자처했다. - P46
대부분 빈약하고 조잡하고 괴상하고 터무니없고 기이한 편견에 물들어있었다는 것은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 이념이 작금의 세계와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것이 이책벌레 부랑자가 머지않아 건설할 제3제국의 토대 중 일부를 형성했기때문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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