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2 - 우리 시대를 읽기 위한 최소한의 인문 배경지식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2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인문학을 좋아 한다. 인문학만 보면 세상이 보인다. 인문학만 알면 세상을 알수 있다. 지금을 알 수있고, 나를 알 수 있다. 타인을 알고, 서로를 안다. 인문학은 위대하다. 그런데 인문학을 너무 몰랐다. 지금 사람들은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관심이 없다. 무슨 말인가? 인문학을 성적 받는 도구 정도로 생각한다. 그것보다 나은 것은 지식을 자랑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인문한은 사람 ‘人’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람을 알기 위한 학문으로 보지 않고, 돈버는 도구, 대학가는 도구, 남들에게 지식을 자랑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못내 마음이 아프다. 프랑스 대학수능시험은 철학적 질문을 주관식으로 묻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숫자 놀음, 찍기 놀음, 숫자 하나만 틀려도 점수가 주루룩 떨어져 결국 대학까지 떨어진다. 더하기나 빼기 하나만 실수해도 등급은 한 없이 추락하여 원하는 학과,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한다. 이런 아픈 일이 어디있는가? 그런데 인문학에 대한 아주 잘 정리된 책이 나와서 반갑다. 인문학 전체를 숲을 보듯 볼 수 있는 책이다. 1권을 읽어보지 못해 못내 아쉬운데 꼭 읽어보고 싶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2’는 회화, 문예사조, 과학, 사회과학, 미학과 대중문화 등으로 열거하고 있다. 인문학1에서 현대 인문학을 말했다면 인문학2는 고대인문학을 정리하고 있다. 과거를 알아야 현대를 알 수 있으니 필수과정이다. 저자도 인문학1을 발간하고 아쉬움이 많았는데 과거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각 문명들의 회화, 문예사조, 과학 사회과학 등등을 아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여 이해하는데 아무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그 시대의 사상들을 정확하게 꿰뚫어 기록한 것은 독자들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또한 그 시대의 최고의 작품, 대표할 만한 화가나 작가를 통해 그 시대의 진수를 보여주는 탁월함이 있다. 사진과 작품을 실어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자상함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인문학이 자칙 지루하고, 어려운 문장으로 열거하는 졸리는 학문이 될 수 있는데 그림들과 시대를 엮어가는 초점있는 전개는 책이 잘 읽히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인문학은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 예술이 나왔는지, 왜 그 과학이 유행을 했는지, 왜 그런 철학자가 등장했는지 그냥 우연히 나온 경우는 아주 드물다. 다음 학문은 그 전 시대의 베이스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연계성을 잘 분석하고 있다. 역사는 연계성, 철학은 물론 더 그런 것 같다. 이런 전체의 흐름을 잘 파악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전체를 이해하게 되었다. 즉 역사의 전반을, 과학과 회화, 문예사조까지 줄줄이 사탕처럼 엮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번 더 읽으면서 전체를 더욱 확실하게 머리에 담아 둘 수 있으면 좋겠다. 저자의 통찰력에 감사한다. 다음 책을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 열세 명 어린 배낭여행자들의 라오스 여행기
김향미 지음 / 예담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여행을 좋아함에도 늘 패키지로 끝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호주에 가는 도중 홍콩에 10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열심히 인터넷을 뒤졌다. 아내와 함께만 하는 여행이기도 하고, 중간 기착지에 10시간을 머문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남자가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며 수십페이지의 자료들을 준비했다. 드디어 홍콩에 도착 짐을 맡기고, 버스를 타고 홍콩 시내를 나갔다.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딤섬도 먹고, 버블티도 먹고, 저녁 야경도 보았다. 약간의 쇼핑도 하고 돌아가는데 돌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전철을 타는데 왜 그리 먼지, 노선은 잘 모르겠고, 그래서 길가는 사람들, 전철을 탄 사람들에 수도 없이 물어물어 드디어 공항에 도착 호주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의 많은 여행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여행이 홍콩에 10시간 정도 머문 여행이었다. 나도 이런 여행을 하고 싶은데 나이가 나이니만큼, 함께 하는 동행자들의 구성이 구성이니만큼 아직 쉽지 않다. 언젠가는 해 보리라.

 

‘여행학교’ 처음 들어보는 학교다. 저자들의 967일 동안 47개국의 여행, 이 경험을 살려 여행학교를 열었고, 13명의 아이들이 미체험국 라오스를 다녀왔다. 구성은 대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남녀 다양한 구성이다. 서로 모르는 사이다. 제주도 3박4일의 걷기 체험으로 라오스 여행을 준비했다. 여행의 원칙은 스스로 경험하기다. 모든 것을 짜 놓은 것은 진정한 여행이 될 수 없고, 공부가 될 수 없다는 원리에서다. 따라서 경비를 쓰는 것, 방을 구하는 것, 목적지에 찾아오는 것 등등이 모둠, 즉 조별로 시행된다. 절대로 선생님들이 간섭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스스로 부딪치면서 안 되는 것도 알고, 안 통하는 것도 안다. 실수를 통하여 돈을 그렇게 쓰면 안되는 구나, 친구와의 관계는 이렇게 열어가는 것이구나 등등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제주도 여행 학교 캠프부터 부모님들의 걱정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제주도 캠프를 경험하고 모두들 라오스 행을 기다렸고, 드디어 떠나게 되었다. 라오스 직행을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방콕, 치앙마이, 배를 타고 라오스행, 2박4일을 거쳐 국경을 넘는 여행을 한다. 진짜 국경을 넘는게 이런거구나 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언어, 문화, 관계, 돈쓰는 법, 부모님을 떠나 스스로 해 보는 것,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 등등을 익히고 또 익혔다. 그야말로 ‘여행학교’다. 나는 여행하면 그 나라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은 학교가 되어야 진정한 여행이 될 수 있다. 뭐든지 스스로 해보고 새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좋은 선생님들이 좋은 학교라 생각된다.

 

우리 가정은 2008년(5년전) 가족회의를 하면서 5년 후 즉 2013년에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기존의 나라들은 너무 많이 알려져 궁금증이 덜하였다. 그래서 라오스라는 나라가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이 친구들이 라오스를 다녀왔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이번 여름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겨울 방학 때 가기로 했다. 큰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닌다. 초년병이라 여름에 휴가를 얻지 못해서 연기되었다. 둘째 딸은 대학 3학년 방학 때 시간이 가능하다. 막내 아들은 대학 1학년 방학 때 가능하다. 이 책을 토대로 이런 여행을 계획해 보아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접 경헝이 많이 되었다. 우리 가족과의 라오스여행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례자들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작가의 열두 빛깔 소설들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박연진 옮김 / 솟을북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여행을 좋아 한다. 그런데 늘 아쉬운 게 패키지의 찍는 여행이라는 것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묵상하고, 글을 쓰는 여행을 하고 싶다. 필그림, 순례자 참 좋은 말이다. 내가 좋아 하는 수양관이 있는데 필그림하우스다. 그 곳에서 많은 묵상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12빛깔의 순례의 이야기를 다양하고도, 칼라플하게 엮어가고 있다. 너무 다양해 작가가 어떻게 이런 경험들을 했을까 의아해할 정도다. 작가의 다양성에 찬사를 보낸다. 여성 작가로서 어떻게 남자들의 세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또한 그녀의 탁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말로는 나그네 인생, 서양 표현으로는 순례자들, 우리는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다. 바로 보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순례를 해야 하는데 <순례자들> 속의 순례자들을 살펴보자.

 

첫 작품 순례자들에서는 새로운 삶에 대한 과감한 도전의식을 상기시키고 있다. 농장에서 부모님들이 살아온 삶에 눌러 살지 않고 새로운 도시로,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과감하고도 단호하게 떠나는 당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으로 새로운 삶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약간 거부감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과단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은 전혀 나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죽였다는 표현이나, 부모에게 전혀 언급 없이 몰래 떠나는 모습, 은행을 털 것을 계획하는 무법적 사고 등은 과격한 비도적주의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틀에 매여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강한 충격요법을 쓰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순례는 어떤 것일까? 새로운 것에 대한 과감한 도전일 것이다. 반대를 너무 의식하여 너무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함으로 더 과감한 전진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늘 가지게 된다. 언젠가는 몇 단계를 과감히 뛰어 넘는 도전을 이루고야 말리라.

 

두 번째, 작품, ‘엘크의 말’에서는 도시를 떠나 산 속 깊은 곳에 이사 와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한 가정을 본다. 너무나 깊은 산골이라 불편함과 적막함까지 느끼게 하는 곳이다. 차가 너무 없어서 역주행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곳에서 침묵을 하며 나무와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생의 깊은 묵상이 가능한 곳이다. 엘크의 말과 마음을 나눌 정도의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대한 동경은 현대인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결단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대인들의 로망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디로 떠나 볼 것인가? 아무도 없는 산골에서 일주일 살아보기, 혼자 견뎌내 보기 등을 실현하면 많은 생각과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외의 작품들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 나름대로 느낌을 적어보겠다. 동쪽으로 가는 엘리스는 아들과 딸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살기 위해 또 동쪽으로 떠나는 엘리스의 모습을 통해서 현재 미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희생을 거부하는 모습을 그려본 것 같다. 엘리스의 아들들의 어머니에 대한 희생,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군대에서 희생적인 군생활을 하는 모습 등을 통해 희생적인 삶을 미화하고 있는 것 같다.

‘새 사격’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분야에 대한 도전의식을 고양시키고 있다. 나이 차이를 극복하는 사랑들을 통해 새로운 경험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톨 폭스’에서는 스트립 걸의 오직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알리고 싶어 한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랑이 뭔지에 대해 논의할 자격조차 없는 스트립 걸이라 하겠지만 한 사람을 향한 지고지순한 변함없는 사랑을 하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착륙’에서는 이유없이, 의미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현대인들의 역마살을 지적하며, 이젠 한 곳에 머무르며, 정착할 때가 되지 않았나하는 부분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다.

‘와서 이 멍청한 녀석들 좀 데러가게’에서는 현대 젊은이들이 너무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말하고 있다. 도전도 좋지만 이유 없는 도전, 의미 없는 시도는 이젠 금물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무모한 시도는 그만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것 같다.

‘데니 브라운이 몰랐던 많은 것들(15세)’에서는 교육의 불완전성, 배움을 위한 교육, 인생을 가르치지 않고, 지식만 가르치는 학교 혹은 사회를 꼬집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의 의미를 삶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삶이 지식이 되어서는 안 되고, 자녀가 부모를 알고, 부모가 자녀를 진정으로 아는 사회가 되고, 교육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꽃과 여자의 이름’에서는 한 노부부를 통해 애틋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을 말하고 있다. 늙고 병든 할머니, 의식도 퇴화해 사람의 이름과 꽃 이름만 되뇌이는 할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할머니가 읊은 베이비, 비슷한 발음의 베벳이란 연인을 찾아가 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짜고짜 찾아가 떼를 쓰고, 미친 노인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그림을 그려내는 할아버지의 사랑의 완성을 본다.

‘브롱크스 터미널 청과물 시장에생’에서는 미국의 청과물시장에서 다양한 출신의 민족들의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이를 외면하고 살아가는 무관심한 사람들,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려는 용기를 가진 지미 모던의 헌신을 그리고 있다.

‘명성 자자한 자르고 붙여 불붙이기’ 담배 마술에서는 헝가리 이민자로 살아가는 고단한 삶, 그의 딸이 토끼 마술로 그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민자들의 힘겨운 삶을 그리고 있다.

‘더없이 참한 아내’에서는 미모와 착함으로 세상을 이겨내 보려는 안간힘을 본다. 미모와 착함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모두 사랑을 받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그것은 결국 버스에 모든 사람을 다 태운 공용의 인생, 버스같은 인생, 자가용처럼 개인이 타는 것이 아닌 인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모든 작품들을 통해 미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을 말하고 있다. 그들의 힘겨운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리고 싶은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렇게 살아가면서도 돌파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총기 난무, 마약과 약물 중독, 조직 폭력, 이민자의 홀대, 뜻도 없이, 의미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젊은이들 등등의 인간시장이 현재의 미국이다. 이젠 미국이 깨어날 때이다.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진정한 교육, 철학적 교육이 살아 있는 미국이 되기를 희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는 제대로 화내고 싶다 - 철학자들이 알려주는 화의 잠재력
오가와 히토시 지음, 이서연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누가 이씨 집안 아니랄까봐” 즉 화만 내면 집안들 들먹이신다. 우리 조부님부터 아버님, 형님까지 ‘화’를 잘 내는 편이고, 무엇보다 내가 잘 ‘화’를 낸다. 아내도 내가 ‘화’를 내는 것을 아주 싫어하며, 특히 소리 좀 지르지 말라고 한다. 처음 10년은 말도 없던 아내가 이젠 도리어 더 큰 소리를 친다. 그러면 내가 무섭다. 그런데 지난 날을 돌아보니, 특히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친 경우 아이들이 경각심을 갖고 잘 받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상처 받고 놀란 일들도 있었겠지만 아이들이 바로 크는 기회도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화’는 무조건 나쁜게 아니라 잘 내는게 중요하구나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그 ‘화’라는게 그렇게 잘 절제되면 화라고 하겠는가? 잘 조절해서 내기가 그렇게 쉬운가? 그렇지만 이 책에 지혜가 있을 것 같다.

 

저자는 화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면서 화를 접근하고 있다. “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중용이란 ‘가장 바람직한 상태’를 말한다. 화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용은 ‘온화’를 의미한다. 화내는 방법을 바람직하게 여기고 잘 화내는 사람을 ‘온화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화’의 잠재력이란 더 이상 방도가 없다고 생각될 때 단념하지 않고 과감히 난관을 돌파하는 능력이자 마음의 안전지기로서 불합리한 현실에 떠밀려 상처 입은 마음을 안전하게 지키는 능력이다. 권력자는 분노하는 인간보다 순종하는 인간을 원한다. 그래서 교육을 비롯한 계몽 활동을 통해 분노를 거세하고 순종하는 인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애를 쓴다. 안타깝게도 분노라는 정상적인 감정의 일부를 빼앗겨 버린 인간은 다른 감정을 표현할 때도 적잖이 영향을 받게 된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일그러진다. 극단적일 정도로 분노를 혐오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웃지 못하는 아이나 울지 못하는 어른, 즐기지 못하는 인간이 현저히 늘어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로보토미 수술’이라는 만행이 정상적인 의료 행위를 인정했던 때가 있었는데 감정을 관리하는 뇌의 일부를 잘라 내 난폭한 사람을 온순하게 만드는 수술을 했더니 다른 감정까지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화’의 진정한 목적은 인정을 획득하는 것이다. 헤겔은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호승인의 성립이다. 친구든 부부든 싸우면 싸울수록 역설적이게도 유대가 깊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인정이란 무엇인가? ‘상대와 함께 인격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서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의무로 삼는 모든 태도’를 의미한다. 자신의 가능성은 화로 인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로 인해 가능성이 생기고 계기가 마련된다. 화내면 손해라는 사고방식이 싹을 틔우면서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진정으로 화내지 못하는 생물이 되고 말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한다. 제대로 상처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곱게만 자라 왔다. 학교에서는 체벌이 금지되고 인권보호라는 미명 아래 온갖 공격으로부터 비껴나 있었다. 심지어 부모조차 쉽사리 참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상처주려고 하면 거칠게 맞서서 어떻게든 제지하려고 한다. 즉, 이성을 잃는다.

 

‘화’는 드라이버나 컴퓨터와 같은 ‘도구’다. 도구는 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논의하면서 줄곧 화내는 방법은 현명하지 않다. 중요한 순간에 화내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화내야 할 때 적절한 형태로 화내는 것, 그것이 바르게 화내는 법이다. 합당한 사정에 대해 합당한 사람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합당한 시간에 합당한 사이에만 화를 낸다. 언성을 높이지 말고, 논리정연하게 화내라. 즉 내용에 ‘물론’, ‘하지만’, ‘따라서’, 등의 접속사를 많이 붙여 사용하라. ‘물론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우선 인정한다. 다음 ‘하지만 이런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비판한다. 이것이 상대방을 설득하는 화내는 방법이다. 나는 내 말에 친구들이 왜 공감하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지 이제야 알았다. 나는 첫째, 흥분한다. 둘째, 무조건 내 의견이 맞다고 주장한다. 셋째, 내 의견을 듣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이 말한다. 그러니 친구들이 들어주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말을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니 어찌 동의할 수 있겠는가?

 

화를 잘 내는 6가지 방법을 보자. 1)의문을 발견하는 방법, 2)문제를 제기하는 방법 3)의견을 제시하는 방법-의견이 다르므로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의견에도 일리는 있다. 나름대로 좋은 점이나 올바른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양자택일보다는 양자의 장점을 채택하여 더 나은 의견을 구축하면 된다. 제3의 길을 모색한다는 것은 단순히 절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더욱 발전시켜 간다는 의미다. 화를 통해 의견을 제시할 때는 그야말로 이런 태도가 요구된다.- 4)논의를 진행하는 방법-냉철한 언어와 논리를 구사할 수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냉철한 태도가 결여되면 주위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자신이 먼저 진정해야 한다. 5)결론을 정리하는 방법-자신만 만족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어디까지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화내는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모처럼 화냈다면 어떻게든 상대와 발전적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6)화내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가만히 있어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경우에는 조용히 지켜보면서 해결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무조건 화를 내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상대가 화낼 때에는 그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특히 친구 모임이나, 공식 석상에서 논쟁을 하는 방법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라. 인정하라. 충분히 들어주라. 그리고 공감해 주라. 그리고 내 의견을 말하라.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이제부터 내 말만 옳다는 생각 혹은 주장만 하지 말아야겠다. 늘 나는 나만 옳다는 생각, 나만 똑똑하다는 생각이 강하여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좋은 책에 도움을 많이 받아 저자에게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 - 세계사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기독교 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따라서 왜곡된 부분들이 많다. 기독교 역사 역시 기록에 있어서 오해가 있는 부분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만 했지 누군가가 정리해서 남긴 것은 드물다. 그러나 저자가 나선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들이 우리가 몰랐던 기록들일까 사뭇 궁금하다.

 

중세 시대의 역사들을 보면서 끔찍함을 금할길이 없다. 특히 기독교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생각하면 더욱 부끄럽고 안타깝다. 여자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은 면이다. 성경에 어디에도 여성들에 대한 입장은 결코 그런 비하를 넘어 죄악시하는 것이 결코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역시 기독교 역시 당시의 사회 환경과 문화를 뛰어 넘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그런면들은 어떤 것들일까? 성경을 지나친 문자적 해석과 기독교 국가에서 발전한 문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천시 내지 죄악시 하는 것들일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의 국악이다. 물론 샤마니즘적 무속신앙의 굿을 하는 음악은 예외이겠지만 궁중음악, 민속음악, 민중들의 전통음악 등을 싸잡아 비기독교적이라 배척하는 것은 또 다른 타문화에 대한 폭력이라 생각된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루터는 항의문을 붙이지 않았다. 멜랑히톤의 주장으로 항의문 95개조항이 비텐베르크 성곽교회에 내걸었다고 주장되었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항의문을 붙인게 아니라 로마 캐톨릭 상위기관에 항의문을 보냈다. 그것이 회자되어 알려지게 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항의문을 붙였다는 증거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보낸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붙인 거나 보낸 거나 별반 다른게 없지만 정확히 해두자는 차원에서 받아들인다.

 

불행이 가져다준 교회의 일치운동을 볼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를 비롯해서 세계 교회는 수많은 교단이 난립을 하는데 각기 복음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서로 반목하는 것은 많은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1453년 오스만 군대는 콘스탄티노플을 55일간 포위했다. 최후 공격이 있기 하루 전 1453년 5월 28일 월요일 저역, 하기아 소피아에서는 마지막 예배가 진행되었다. 코스탄티노플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종파와 상관없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비잔티움 황제는 참석한 동방교회와 로마교회 주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파를 초월해서 함께 예배하고 성찬에 참여했다. 자정에 예배가 모두 끝났다. 그로부터 1시간 반 뒤에 메메드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화요일 늦은 아침에는 콘스탄티노플이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왜 진작 하나되지 못했을까? 하나되지 못함이 결국 나라의 결속을 약화시켰고, 오스만 터키의 먹이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세상의 먹이감이 되고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교회들이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지 못하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 성도와 성도끼리, 목회자와 성도간에, 목회자와 중직자 간에 대립의 형태는 공멸의 길임을 역사가 교훈하고 있다. 최근 한국 최고의 교회에서 충돌하고 있는 모습은 이런 역사를 통하여 되돌아보고 해결점을 찾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경교가 당나라에서 수만명을 거느릴 정도로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급속히 쇠락한 이유가 무엇일까? 경교가 외래 종교였음에도 토착화를 위해 따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게 일차적인 이유로 꼽힌다. 한 때 경교의 신자들이 4만-6만명에 달하기도 했었지만, 대부분 서역 출신의 상인이나 군인이었다. 빈약한 경전의 번역과 생소한 한족문화와 종교 때문에 경교는 외국인을 위한 종교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우리가 교리나 문화는 달라도 이웃과 교류, 협력, 섬김을 관계를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조건 배척 중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고립되는 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