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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작가의 열두 빛깔 소설들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박연진 옮김 / 솟을북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여행을 좋아 한다. 그런데 늘 아쉬운 게 패키지의 찍는 여행이라는 것이다. 생각하고, 느끼고, 묵상하고, 글을 쓰는 여행을 하고 싶다. 필그림, 순례자 참 좋은 말이다. 내가 좋아 하는 수양관이 있는데 필그림하우스다. 그 곳에서 많은 묵상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12빛깔의 순례의 이야기를 다양하고도, 칼라플하게 엮어가고 있다. 너무 다양해 작가가 어떻게 이런 경험들을 했을까 의아해할 정도다. 작가의 다양성에 찬사를 보낸다. 여성 작가로서 어떻게 남자들의 세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또한 그녀의 탁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말로는 나그네 인생, 서양 표현으로는 순례자들, 우리는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다. 바로 보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순례를 해야 하는데 <순례자들> 속의 순례자들을 살펴보자.
첫 작품 순례자들에서는 새로운 삶에 대한 과감한 도전의식을 상기시키고 있다. 농장에서 부모님들이 살아온 삶에 눌러 살지 않고 새로운 도시로,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과감하고도 단호하게 떠나는 당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으로 새로운 삶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약간 거부감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과단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은 전혀 나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죽였다는 표현이나, 부모에게 전혀 언급 없이 몰래 떠나는 모습, 은행을 털 것을 계획하는 무법적 사고 등은 과격한 비도적주의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틀에 매여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강한 충격요법을 쓰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순례는 어떤 것일까? 새로운 것에 대한 과감한 도전일 것이다. 반대를 너무 의식하여 너무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함으로 더 과감한 전진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늘 가지게 된다. 언젠가는 몇 단계를 과감히 뛰어 넘는 도전을 이루고야 말리라.
두 번째, 작품, ‘엘크의 말’에서는 도시를 떠나 산 속 깊은 곳에 이사 와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한 가정을 본다. 너무나 깊은 산골이라 불편함과 적막함까지 느끼게 하는 곳이다. 차가 너무 없어서 역주행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곳에서 침묵을 하며 나무와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생의 깊은 묵상이 가능한 곳이다. 엘크의 말과 마음을 나눌 정도의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대한 동경은 현대인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결단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대인들의 로망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디로 떠나 볼 것인가? 아무도 없는 산골에서 일주일 살아보기, 혼자 견뎌내 보기 등을 실현하면 많은 생각과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외의 작품들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 나름대로 느낌을 적어보겠다. 동쪽으로 가는 엘리스는 아들과 딸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살기 위해 또 동쪽으로 떠나는 엘리스의 모습을 통해서 현재 미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희생을 거부하는 모습을 그려본 것 같다. 엘리스의 아들들의 어머니에 대한 희생,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군대에서 희생적인 군생활을 하는 모습 등을 통해 희생적인 삶을 미화하고 있는 것 같다.
‘새 사격’에서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분야에 대한 도전의식을 고양시키고 있다. 나이 차이를 극복하는 사랑들을 통해 새로운 경험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톨 폭스’에서는 스트립 걸의 오직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뭔지를 알리고 싶어 한 것 같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랑이 뭔지에 대해 논의할 자격조차 없는 스트립 걸이라 하겠지만 한 사람을 향한 지고지순한 변함없는 사랑을 하는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착륙’에서는 이유없이, 의미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현대인들의 역마살을 지적하며, 이젠 한 곳에 머무르며, 정착할 때가 되지 않았나하는 부분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다.
‘와서 이 멍청한 녀석들 좀 데러가게’에서는 현대 젊은이들이 너무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말하고 있다. 도전도 좋지만 이유 없는 도전, 의미 없는 시도는 이젠 금물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무모한 시도는 그만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긴 것 같다.
‘데니 브라운이 몰랐던 많은 것들(15세)’에서는 교육의 불완전성, 배움을 위한 교육, 인생을 가르치지 않고, 지식만 가르치는 학교 혹은 사회를 꼬집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의 의미를 삶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삶이 지식이 되어서는 안 되고, 자녀가 부모를 알고, 부모가 자녀를 진정으로 아는 사회가 되고, 교육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꽃과 여자의 이름’에서는 한 노부부를 통해 애틋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을 말하고 있다. 늙고 병든 할머니, 의식도 퇴화해 사람의 이름과 꽃 이름만 되뇌이는 할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할머니가 읊은 베이비, 비슷한 발음의 베벳이란 연인을 찾아가 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짜고짜 찾아가 떼를 쓰고, 미친 노인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그림을 그려내는 할아버지의 사랑의 완성을 본다.
‘브롱크스 터미널 청과물 시장에생’에서는 미국의 청과물시장에서 다양한 출신의 민족들의 삶의 고단함을 보여준다. 이를 외면하고 살아가는 무관심한 사람들,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개선해 보려는 용기를 가진 지미 모던의 헌신을 그리고 있다.
‘명성 자자한 자르고 붙여 불붙이기’ 담배 마술에서는 헝가리 이민자로 살아가는 고단한 삶, 그의 딸이 토끼 마술로 그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민자들의 힘겨운 삶을 그리고 있다.
‘더없이 참한 아내’에서는 미모와 착함으로 세상을 이겨내 보려는 안간힘을 본다. 미모와 착함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모두 사랑을 받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나 그것은 결국 버스에 모든 사람을 다 태운 공용의 인생, 버스같은 인생, 자가용처럼 개인이 타는 것이 아닌 인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모든 작품들을 통해 미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을 말하고 있다. 그들의 힘겨운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리고 싶은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렇게 살아가면서도 돌파구가 쉽게 보이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총기 난무, 마약과 약물 중독, 조직 폭력, 이민자의 홀대, 뜻도 없이, 의미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젊은이들 등등의 인간시장이 현재의 미국이다. 이젠 미국이 깨어날 때이다.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진정한 교육, 철학적 교육이 살아 있는 미국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