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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 -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과 낭만
패멀라 폴 지음, 이다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5월
평점 :

'풍요 속의 빈곤'
넘치는 자원과 방대한 양의 데이터,
부족한 것이 없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부족하고 아쉬운 게 많았던 과거와 같은
낭만이나 정은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쉽곤 하다.
누군가에게는 빛바랜 과거의 추억일 거라고,
부럽지 않은 지난 영광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학교를 다니고
2000년대에 성인이 되어
DOS와 윈도우, 피처폰과 스마트폰을
모두 사용해 온 MZ 세대의 막차를 타고 있는 나는
아날로그 시대만이 주는 낭만과 따스함이
그립고 더 좋다고 느낄 때가 많다.
불편한 점도 있었고, 이로 인한 에피소드가 있을 만큼
아날로그 시대의 일상이 주었던 사소한 즐거움들은
지금의 내가 가진 감성을 이루는데 좋은 씨앗이 되었다.
나만큼이나 그 시대를 살아간 우리들 만큼이나
잊히고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던 저자는
우리가 그 시절에 두고 온 100가지 추억을
나열하며 지금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두고 온 100가지 유실물》이다.
뉴욕타임즈 북리뷰 편집장인 패멀라 폴은
섬세한 감각으로 지나간 삶의 파편을 더듬어 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보냈던
그때의 시간들은 불편함이 없고 더 편리해진
지금의 세상에서 더욱 큰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말하는 100가지의 추억들은 나라가 다르고
처했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조금씩 다르게 느낄 수는 있지만 공감할 수 있는
많은 추억들도 담고 있었다.
단순히 100가지 과거의 것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감상 등을 더하고 공감을 일으킴으로써
잠들어 있던 추억을 일깨워주고 있다.
저자가 얘기하는 100가지 중에서
나에게도 겹쳐지는 추억들이 제법 있었다.
지루함, 실패한 사진, 생일카드, 종이신문,
지도, 손편지, 취침전 독서, 사회 교과서, 글씨체,
도서관의 서지카드 등이 바로 그것인데
그중에서도 '사회 교과서'에 대한 것은
여름휴가가 맞물리는 시기가 때면
늘 떠오르는 기억이기도 하다.
지금의 교과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사회 교과서는
학습내용이 담긴 메인 교과서와
지도가 있는 '사회과 부도'로 나뉘어 있었다.
사회과 부도에는 학습과정에 포함된
다양한 학습자료의 사진을 포함해
역사적 의미가 있는 유물, 국보 등을 표기한
각 지역별로 상세한 지도가 있었다.
한 학년이 끝나고 나면 교과서를 모아서
한꺼번에 버리곤 했는데,
"사회과 부도는 버리지 말고 남겨둬"라는
아빠의 당부가 있었다.
당시에는 네비게이션도 없고
지도와 도로의 표지판에 의지해
운전을 했는데, 이 사회과 부도에 있는
상세한 지도는 휴가 가서 볼거리를 찾아 이동할 때나
미리 여행 루트를 정할 때도 굉장한 도움이 됐던 것!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지도에 표시해 두었던
장소들을 휴가를 가며 다시 찾아보는 기분,
학교에서는 교과서였지만
방학, 그것도 휴가를 떠날 때 중요한 자료로
변신하는 그 모습이 너무 즐거워서는
동생과 나의 책 중 서로 자신의 것을 남기겠다고
다툼 아닌 다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지도를 보는 사람도 잘 없고
여행 코스를 정할 때도 지도를 보는 게 아니라
SNS나 방송을 탄 어떤 장소들을 포인트 삼아
간편하게 핸드폰이나 네비게이션에
장소를 등록만 하면 자동으로 경로가 완성되고
안내 음성을 따라 교통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면 되니
지도가 상세하게 있다 한들 그것을 굳이
보관할 일은 없겠지만
새로운 교과서를 받을 때면
또 언젠가의 휴가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었던
그때의 시간들은 지금도 즐거운 추억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이 좋은 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따스한 추억과
즐거움이 남기 때문이 아닐까.
빠르고 편해졌지만 사람의 체온이 덜 느껴지는
요즘의 편함은 마냥 편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도
그래서 더 상대적으로 느끼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읽으면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고
'맞아, 이런 게 참 좋았어'라는 아련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보다 '더' 좋다가 아니라,
지금도 좋지만 그때'도' 좋았다는 말로
겨우 설명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었다.
더 나아질 세상의 풍요로움이
더 부족함과 고립을 가져올 줄은 몰랐다.
세상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이렇듯
계획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일상들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릴 날도
머지않았겠지.
오늘의 사소한 일상을 기쁘게 맞이하며
만끽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이 글은 생각의힘 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