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를 마중하러 왔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7
박사랑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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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묘사할 수 있는 표현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아직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

무얼 해야 하는지 무얼 잘 하는지도

그저 혼란스럽기만 한 나이.

반복되는 학교 - 학원 - 집 생활 속에서

'나'라는 존재 대신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나조차 나를 잘 모르겠다' 마음에

더욱 복잡한 때가 바로 사춘기이다.


18살의 평범한 고등학생인 주인공은

등교 지옥을 뚫고 겨우 도착한 교실에서

자신이 주번임을 알게 되고,

때마침 터진 대자연의 신호 앞에서

떨어진 컨디션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오늘따라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게 너무 이상하다, 마치 이름을 잃은 듯

주번, 12번 등으로 불리며

'내가 이렇게 존재감이 없었나' 섭섭해질 무렵

하필 떨어진 명찰 때문에

힘들게 얻어낸 조퇴길에 버스마저도 놓치게 된다.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30분이라는 시간에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찰나

갑자기 느낌 어지러움과 함께

구멍 같은 곳에 발이 빠지고

눈을 떠보니 이상한 타이밍에 어딘가에서

새로이 태어났는데,

그곳은 바로 조선시대의 원주!


타임슬립이라기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나 너무 혼란스럽고

충돌이나 차원의 문도 열지 않았는데

다른 시공간으로 오게 된 건지 정말 모를 일이다.


과거의 기억은 또렷한데,

이상하게 이름 세 글자만 지우개로 지운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혼란스러움도 잠시 어느덧 조선에서의 시간은

백모월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내가 9살이 되었고,

외출을 했다가 몸종인 연시와 함께 돌아온 집에서

엄청난 사건을 맞이하여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까지 가족 모두를

눈앞에서 잃게 되는데

집까지 불에 타버리고 '위험하다'라는 생각에

그길로 연시와 함께 손을 잡고 도망친 모월!


이름도 잃고, 미래에서 조선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모월은

이제 조선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벌어진

비밀까지 파헤쳐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미래의 기억을 가진 주인공이

과거의 조선에서 마주한 현실에는

역병과 기묘한 살인사건,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청루의 당주까지

과연 주인공은 비밀을 풀어가고,

자신이 있던 현재로 돌아올 수 있을까?


2012년 단편소설 《이야기 속으로》와

《어제의 콘스탄체》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조선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고등학생의

본격 추리활극을 《안녕, 나를 마중하러 왔어》에 담았다.

장편소설 《우주를 담아줘》로 덕질라이프에 대한

내용을 담으며 십 대는 물론, 작가와 비슷한 나이대의

삼십 대까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이번에는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을 통해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본격 타임슬립

추리 활극으로 재미와 감동을 모두 전하고 있다.


타임슬립은 종종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요소이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

(과거에서도 등장하는 이가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시공간만을 이동한 것으로 나오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조선시대에서 새로이 태어난다는

설정이 굉장히 독특했다.

나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새로이 또 다른 나로 태어난다는 점,

이름을 잃은 주인공이 다시 태어난 과거에서도

집안의 문제로 인해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다른 이름으로 비밀을 파헤쳐 가는 과정이

마치 평행우주에 있는 같은 존재처럼 겹쳐졌다.


과거의 조선이나, 미래의 대한민국에서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주인공의 여정은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미래의 자신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무얼 잘하는지 모르는

주변의 다른 여성들에게 이름을 물어주며,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해 주는 과정은

타인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의미를 찾아주는

해결사 같은 모습으로 굉장히 멋있었다.


어린 나이의 주인공이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들여다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이만큼 성장하는 과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청소년 소설인지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뿐더러

조선시대라는 배경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도

소설을 통해서 과거로 함께 여행을 하면서

색다른 배경 같은 우리나라의 매력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다시 미래로 돌아온 주인공이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고,

나를 찾기 위해 오늘의 현재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고민스럽고 답답한 아이들에게

방향 표시 등 같은 느낌으로 다가갈 것만 같다.


소설을 읽으며 이름을 찾아 헤맸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극히 한국식으로 해석한

본격 타임슬립 소설의 즐거움을

모두가 함께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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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간식은 뭐로 하지 - 달달해서 좋은 만남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반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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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밥 사이, 때로는 밥을 건너띄고 먹기도 하는

간식을 참 좋아한다.

무언가 색다른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

밥과 다른 느낌의 음식을 여유롭게 즐기는

그 시간이 입뿐만 아니라 기분적으로도

굉장히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지금이야 아침 간식부터 시작해서

점심 급식, 오후 간식까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원에서 먹는 음식이 여러 회차에 걸쳐

참 다양하기도 한데

내가 어렸을 때는 어린이집은 없고

고작해야 학교 가기 전 일 년 정도 유치원을 다녔다.

점심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수요일),

나머지 요일에는 점심을 먹기 전 수업이 끝났는데

매일 출출할 무렵 간단한 요깃거리가 나오는

'간식시간'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자

기다림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아침 일찍 수업을 시작해서

활동을 하다가 간식시간이 다가오면

선생님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물론 직접 연주하신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설레는 마음으로

모둠별로 모여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노래가 끝나고 눈을 감고 있으면 모둠별로 1명씩

선생님이 목걸이를 걸어 '간식 당번'을 정해주는데,

이 간식 당번은 선생님이 있는 앞쪽에 나와

간식을 타서는 모둠 아이들에게

하나씩 전달해 주는 그날의 임무가 주어진다.

아이들인지라 한 번에 한 명씩,

간식 당번이 주는 순서대로 간식을 받기 때문에

'뭔가 제일 먼저 받고 싶어' 라든가

'나 제일 큰 걸로 줘!' 하는 아우성이 나오기도 하는데

워낙 수줍을 많이 타기도 하고

친구가 많지 않았던 나는 늘 거의 끝에서 두 번째

혹은 마지막에 다다르는 경우가 많았다.


쌍둥이인 동생과 같은 모둠일 때는

서로 물어볼 것도 없이 제일 먼저

가장 크고 좋아 보이는(그래봐야 다 같은 간식)

간식을 제일 먼저 놓아주었고


지금은 소보로 빵이라 불리는 곰보빵은

빵 겉의 소보로만 먼저 떼어먹고

누더기가 된 남은 빵은 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어서 싸가기도 하고

(당시 소보로 빵을 싫어해서 먹지 않았다고 하니,

엄마가 버리지 말고 싸오라고 간식표를 보고

비닐봉지를 넣어주심)

귤이 나오는 날에는 아이들 모두 손에 굴려 귤을 깐 다음

간식 쟁반 위에 귤을 한 조각씩 펼쳐놓은 뒤

'돈가스처럼 먹어야지' 하면서

썰어놓은 돈가스를 먹는 듯 귤을 먹기도 했었다.


대단한 간식은 아니지만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고

간식표는 미리 집에 보내는 안내문에 있을 텐데

(엄마가 미리 알려주지도 않은 데다가)

오늘 간식은 뭐지? 하면서

교실로 배달되는 간식 상자를 눈여겨보며

그날의 간식을 상상해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미혼 여성의 일상을 담은 만화와 에세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마스다미리가

이번에는 본격 간식, 음식 이야기로 찾아왔다.

얼마 전 읽은 《런치의 시간》을 통해서는

코로나 시대를 보며, 점심 한 끼를 통해

하루의 행복을 담고 여행 대신 만끽하던

다양한 점심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이번에는 《오늘의 간식은 뭐로 하지》를 통해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하고 따스한

간식과 음식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연도별로 분류된 글은

그녀가 먹었던 간식에 얽힌 추억들에 대해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익숙한 때로는 새로운 간식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그 맛을 상상하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나 책의 서문에 있었던

그녀가 직접 찍었던 간식들은

"꺄악" 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했는데

마스다미리 특유의 귀여운 그림까지 더해지니

더욱 특별한 간식 이야기로 다가왔던 것 같다.


지친 하루, 심난한 기분

때로는 기쁘거나 의미를 더하고 싶은 날

나에게 작은 행복을 선사하고 싶다면

'간식'보다 좋은 게 또 있을까?

마스다미리가 간식이라는 이름을 빌려 전하는

일상의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아도

행복이란 이토록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만의 확고한 입맛을 드러내는

마스다미리의 간식 취향도

'어쩌면 조금은 나와 비슷한 면도 있네' 하고

즐겁게 간식처럼 읽을 수 있었던 그런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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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없다 - 교통사고에서 재난 참사까지,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제시 싱어 지음, 김승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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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그건 정말 사고였어"

치명적인 부상이나 안타까운 사망이 발생하기도 하며

때로는 한 두 명의 사람이 아닌

대형 참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과연 이 모든 것이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라는

사고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쓴 저자는 자신이 16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에릭 응이라는 소년이

자전거와 차량 추돌로 세상을 떠나고

사고를 낸 사람의 선고 공판에서

"일어난 이 사고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는

그의 최후 진술 속에서 '일어난 이 사고'라는 말에

책무성의 부재와 죽음과 관련 없다는 듯한 화법에

'사고'라는 것에 대한 본격적인 추적과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담은

《사고는 없다》를 출간하게 되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누군가의 죽음이

사고로 쉽게 치부되고,

어떤 공동체가 사고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지

또 '그건 단지 사고였어요'라는 주장을

면제권으로 사용하는지 생각하도록 촉구하고 있는데,


교통사고를 비롯해 업무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과 안전 수칙에 관한 이야기,

총기와 비행기 사고를 비롯해

특정 인종이나 계급, 부와 관련해 가질 수 있는

어떤 편견이나 인종주의적 생각,

일어난 사건에 대해 '비난'이 더해지면서

사고에 대한 시선이 틀어지는 것,

무차별 범죄를 피하고 책임감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사실을 바탕으로 풀어놓고 있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바라보며

그간 내가 태어나고 자라오며 발생했던

굵직한 일들을 생각했다.

'역대 사고' '역대 참사'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그 일들은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크게 달라지는 것 없이

비슷한 패턴으로 다시 발생하기도 하며,

제대로 된 책임이나 개선되는 것 없이

꼬리 자르기 식으로 특정한 누군가의 '처벌'만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단적으로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벌어졌던 압사사건만 살펴보더라도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단적이고

편집되어 제공되는 사실로 편향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그 일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누가 그 일을 일으켰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참사 소식에 대해서는

사건에 대해서 이곳에 몰린 사람들과

우리나라 기념일도 아닌 할로윈데이라는데

초점을 맞춰지고 있었다.

다양한 코스프레, 더러 선정적인 옷차림과

할로윈데이에 일어났던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한 원인이

마치 피해자들의 처신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뉴스를 통해 소식을 본 사람들은

대체 할로윈데이가 뭐길래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왜 그 자리에 갔으며

이후 사건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마약검사를 해야 한다는 얘기들은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사건의 본질과 맞지않는

비난을 통해 사건 본질에 대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사건의 원인이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연이나 스포츠, 관광지 등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를 사건의 주요한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사고 이후 최초에 사고의 주원인으로 표적이 되었던

'토끼 머리띠를 한 남자가 행인들을 밀기 시작했다'라는

유언비어와 그에 대한 수사는

왜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라보기보다는

'사건의 해결을 위한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감을 알 수 있다.

이후 혐의 없음으로 밝혀진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소방당국의 브리핑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할로윈 행사 참여를 위해

여러 사람이 몰린 이태원에 인파가 넘어지면서

방문 시민의 다수에게서 사상이 발생한 것으로,

넘어지고 깔리면서 외상성 질식과 다발성 장기 부전이

유발되며 질식의 경우 골든타임을 놓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참사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시스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달라진다.

참사가 일어났던 골목에서 해밀턴 호텔이

골목에 불법 테라스 구조물을 설치했으며,

이로 인해 인도의 통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해밀턴호텔 대표는 이후 벌금 800만 원의

처벌을 받게 되었는데, 이로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으며 비슷한 일이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몰릴 수 있을 것이 예상되는 곳에서

사람들의 이동 및 통행을 제어할 수 있는

인적, 물리적 지원이 있어야 하고

제도적으로는 인도를 가로막는 적치물이나

불법건축물이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지

미리 체크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문제의 원인을 유발하는 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 즉, 피해자 혹은

피의자로 특정 지어지는 한두 사람의 책임자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고 그것이 발생하는

원인이나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지적하며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반복되는 사고 속에서 처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실패들을 바탕으로 모든 설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시선을 가지고 그것을 개선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갖자고 얘기한다.


사고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해프닝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긴다.


쉽게 '그것은 사고였다'라는 무기력한 말로

제대로 이해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힘 있는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 글은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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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
캐트리오나 실비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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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선생님과 제자, 직장 동료 등

살면서 마주하는 나 이외의 존재인

다른 사람 즉 타인에 대해서

완벽한 이해를 하기란 어렵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에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에는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때로는 이토록 깊은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알다가도 모르겠다' '도대체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이번에 읽게된 《백만 번의 세계가 끝날 무렵》은

그 이해에 대한 폭을 넓혀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데뷔작임에도 현재 15개국에서 출판권이 계약되었고,

아틀라스 엔터테인먼트와 유명 배우 갤 가돗이 참여한

프로덕션 파일럿 웨이브에서 영화 판권을 계약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작품은

지구상 인간에게 가능한

거의 모든 형태의 사랑을

수많은 생애에서 거듭하게 되는

남녀의 운명과 그 비밀을 다룬 소설로

'소라'와 '산티'라는 두 주인공의

무한한 생애와 관계를 바탕으로 풀어나간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는 영국에서 성장하면서,

남들과 다른 이상한 억양과 평야 지역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산티에게는 이런 작가가

겪었던 어떤 차별이라는 감정이 심어져 있기도 했는데,

소프트웨어 회사의 솔루션 개발자로 일하며

틈틈이 SF 소설을 집필한 그녀는

자신의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이번 작품에서도

SF와 로맨스, 서스펜스를 오가며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서사와

대담한 스케일을 한정된 장소에서 풀어가는

자신만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소설은 크게 3장으로 나뉘어 볼 수 있다.

어지러이 펼쳐지며 다양한 관계로 엮이는

소라와 산티의 여러 세계가 펼쳐지며

그들이 이런저런 관계로 만나고

또 새로운 세상에서 얽히고 헤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설의 막바지에서

보게 될 결말에 다다르는 단서들을 보여주는 1장,

이전 세계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무한대로 주어지는 생애를 알게 된

소라와 산티가 그곳을 벗어나려는 시도와 함께

서로를 찾고, 피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2장,

이 반복되는 생애 속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가며 마지막에 다다르는 3장으로

점점 그리고 짙어져가는 소설의 농도는

처음에는 정신없이 쫓아가다가 마지막에는

그 농밀함에 읽는 속도를 늦추게 되는

마법 같은 힘을 지녔다.


흔히 불교에서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한 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생의 인연이 후생에도 이어진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처음에는 우연한 기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스쳐지나는 옅은 인연 같았던 소라와 산티가

여러 생애를 다시 살아가면서

계속 얽히고 연결되며 관계를 맺는 모습이

동양적 불교 관점에서는

애초에 하나의 이야기가 다양한 인연으로 풀어지는

자연스러움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공간적 한계와

여러 번 반복해서 살 때마다 상수처럼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까지,

모든 것이 운명 같고 신의 뜻이라 생각하는 산티와

그저 지금 살고 있는 삶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소라의 모습이 대조되며

그들의 색이 더욱 진해져가는 모습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했다.


타인에 대해 나만큼이나

완전한 이해를 하기란 어렵다.

여러 번의 생애를 반복하며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소라와 산티가

마지막에 다다르며 선택에 이르기까지

그 도전과 고민을 함께하며 여러 번의

생이를 살아낸 것만 같은 피로함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타인에 대한 이해로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성장과 변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며 내가 만약 소설 속 그들과 같은

무한한 생애를 반복하고 있다면

소라와 산티 중 누구와 같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끊임없이 충돌하고 마찰했던 두 사람의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어서야

비로소 다다를 수 있었던 결론까지

꽉 차게 즐길 수 있었던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었다.


"이 글은 문학수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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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비실
이미예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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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얘기가 하나 있다.

바로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


제 1 법칙 : 어느 직장에나 일정량의 또라이가 존재한다.

제 2 법칙 : 그래서 아무리 또라이를 피하려고

회사나 부서를 옮겨도 또 다른 또라이를

만날 수 밖에 없다.

제 3 법칙 : 만약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내 주변에는 또라이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당신이 그 또라이일 확률이 높다.


또라이 혹은 빌런이라고 불리는 이 인물들 덕분에

우리는 직장이나 집단에서

스트레스와 불편을 얼마나 느꼈는가?

'이상한 한 사람'이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듯

조용한 회사생활이 흙탕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법칙을 떠올리는건

나 한명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닐것이다.


전작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첫 소설을 발표한 후 150만부 이상의 판매를 올리며

전 세계에 번역되어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자신만의 탄탄한 필력을 보여준 이미예 작가가

새로이 출간한 《탕비실》은

네 평 남짓한 회사안에 있는

탕비실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그곳에 등장하는 여러 빌런의 얘기를 통해

잠시 스쳐지나가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미운털이 박혀 싫은소리를 들으며

이해받지도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않는

현대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로 어딘가에나 있을 법한

등장인물들의 탕비실에서 행하는 행동들은

하이퍼리얼리즘을 넘어 사실 그 자체인가 싶었는데,

얄밉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며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그들의 행태 앞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지만,

내 소유가 아닌 회사 소유의 공간이기에

회사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월급이라는 대가를 받는 우리들은

회사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나, 불만 등을

탕비실에라는 공간에서 민낯을 드러내곤 한다.


소설 속에서 〈탕비실〉은

시작은 다큐멘터리 였으나

저조한 시청률과 출연자 논란으로 중도 폐지되고,

탕비실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이 술래를 찾는

게임을 하는 동명의 리얼리티쇼로 다시 등장한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이 리얼리티쇼에 출연하게 된

다섯명의 인물을 바탕으로

그 중에서 '얼음'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상금을 노리고 게임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얼음,

술래가 누구인지 서로를 의심하며

주어진 환경 내에서 힌트를 얻으며

추리를 이어가는데,

규칙을 깨면 주어지는 힌트 교환권을 통해서

출연하는 다섯명 중 원하는 인물을 선택하면

그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여느 출연자와 달리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은

힌트 교환권이 2장이라 들어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힌트 교환권을 얻게된 얼음,

궁금했던 다른 출연진의 힌트를 열어보며

그에 대한 제보를 하는 출연진의 직장동료들의

뒷담화를 들으며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나에 대한 힌트를 듣는 다른 출연진에게는

나에 대한 어떤 얘기가 들어있을까?

나의 직장동료들은 나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했을까?

하고 말이다.


게임을 진행하며, 술래를 찾기 위해

서로가 자신의 진심과 진실을 숨긴 채

열심히 서로를 탐색하고 마음 속으로 평가하는 과정은

뒤집어 생각하면 자신을 향한 타인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더욱 씁쓸했다.


'사무실 빌런' '탕비실 빌런'이라 부르지만,

그들 역시 한편으로는

어떤 '나'의 모습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일주일간의 시간을 보내며

연합을 하는 출연진도

또 혼자서 묵묵히 헤쳐가는 이도 있는데,

과연 '방송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술래는 누구일지 얼음의 시선을 따라

술래를 함께 예측해 가는 재미도 있었다.


마지막에 다다라 밝혀지는 술래의 정체와

또 뒤이어 촬영했던 리얼리티쇼가 방송되고

사람들의 반응과 맞물려 알게된 불편한 진실까지,


이유없이 좋고 싫을 수밖에 없는

인간 관계라고 하지만

제대로 마주하는 기회가 아닌

스쳐지나는 탕비실이라는 공간 속에서도

미운털이 박혀버린 사람들에게

그들 각자에 대한 이해나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그저 '평가'되어지는 모습을 통해

싫어하는 대상의 기분을 상상해보는 기회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선의이자 배려였는데,

이런식으로 해석하다니' 하는 감정들,

눈살을 찌뿌리게 했던 행동들에는

숨겨진 다른 배려나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리고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으로 돌아가본다.

또라이는 정말 어느 집단에서나 일정 비율로

등장하는 이상한 사람일까?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평가한

우리들이 만들어낸 어떤 캐릭터 같은 건 아닐지,

그런 오해 같은것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 싫음의 감정을 소화시키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소설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글은 출판사 한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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