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심너울 지음 / 한끼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야흐로 한국형 SF 문학의 시대이다.

알 수 없는 우주의 생명체,

파괴된 지구를 떠올리게 하는

막연한 '공상과학'과 다르게

오늘날 현대문학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오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한국형 SF 소설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SF소설 하면 배경이 되는 미래나 우주,

과학과 관련된 내용들 때문인지

실제 연구를 한 연구가 등이 조사를 기본으로 해서

거기에 소설적 요소를 더한 작품들이 많았다.


심너울 작가는 심리학을 전공한 이력답게

지난 작품인 《갈아만든 천국》에서도

현실보다 리얼하면서도 판타지를 가득 담은,

그러면서도 사회 풍자를 놓지 않았는데

그런 심너울 작가의 SF 단편을 모은 핸디북 소설집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를 만나보았다.


작가는 워낙 한국 SF 문학의 3세대 대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는 데다가

전작인 《갈아만든 천국》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 단편집에 대한 기대도 컸다.

전작은 21세기 한국에 마력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그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다루면서

가지고 태어나는 '마력'이 또 다른 '권력'이 되며

그 욕심 앞에 변하고 망가지는 사람들의

모습과 후회를 통해 지금의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과 풍자를 재미있게 풀어냈었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작가가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쓴 단편들 중에서도

특히 SF 적인 작품을 모은 책으로,

심너울 작가의 SF를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한국형 SF 소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그 시작으로 만나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소설집에는 총 9편의 단편이 담겨있다.

〈어떻게 MBTI는 과학이 되었는가?〉는

가볍게는 재미로만 보던 MBTI가

본격적인 일자리 지원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심리학을 전공해 오던

'마음'이 이에 대한 부정과 의심을 바탕으로

연구에 본격적으로 파고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아이러니한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는데

인공지능이 정치까지 확장이 되면서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졌던 A가

본격적으로 KCAI의 도움을 받아

영웅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은

〈영웅의 탄생〉은 인간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보는 듯해

씁쓸하기까지 했다.


〈싹둑〉을 통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어

동기화되지 않는 타자를 두러워하던

올리브가 아이리스를 만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은

어떤 의미의 '사랑'이 아닐까 싶었다.


신처럼 자신이 만든 세상 속에서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이

진부함으로 다가왔을 때의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을 마주한 이야기

〈클리셰〉는 인간이 가지는 감정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내 손안의 영웅, 핸디히어로〉는

자신만의 능력이라 생각했던 자력이

그마저도 B-의 능력으로,

발현한 능력만으로도 먹고 살기 힘든

웃픈현실이 먼 미래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에 허탈한 웃을 짓게 했다.


〈달에서 온 불법체류자〉는 작가의 고향인

마산을 배경으로 멀리 달에서 내려온

월인들과의 만남을 다뤘는데,

서로 다른 모습과 능력을 가진

지구인과 월인들의 다음 이야기가 절로 궁금해졌다.


〈키스의 기원〉은 서로 다른 연인이

외계인들의 훼방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끝끝내

사랑을 하는 해피엔딩을 보여주며

심너울 작가가 보여주는 SF 식 로맨스 같았다.


〈찰나의 기념비〉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어려웠는데,

모두가 찾아가는 어떤 목표 앞에서

기꺼이 모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료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을 하게 됐다.


마지막 단편은 소설집과 동명의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였는데,

게임 개발과 게임 속에 심어진 주석을 따라

숨겨진 의도를 찾아내고

그 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 거듭난

두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인적으로는 IT업계에서 일을 했어서인지

일하는 이야기나 과정들이 예전을 떠올리게 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편들을 통해서 작가는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시간의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각각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과학'이나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사람들 간의 '상호 관계'에 맞춰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지고 차가워진다고

생각했었는데 작가가 그린 미래에는

여전히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그것이 사람들을 구한다는 것이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임을

잊지 말자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싶다.


심너울 작가답게 현실을 반영한 듯한

사회 풍자와 위트 넘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전작에 이어서도 느낄 수 있었고,

다양한 모습을 한 미래의 모습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었다.


SF 장르는 어쩌면 지금도 과도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SF 작가들의 등장이,

그들이 그리는 먼 미래의 모습들이

우주에 있는 수많은 먼지 같은 별처럼

무수하게 많은 가능성과 다양성을 담고 있고

그 이야기들이 쌓이고 모이면

언젠가 한국형 SF라는 장르의 이야기라는

큰 틀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주 느리고 단단한 확장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키워가고 있는 작가의 저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SF 소설이었다.

단편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고,

각 이야기마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분명히 느껴져서 너무 좋았다.

작가의 단편들이 앞으로도 이렇게 쌓여

또 다른 소실집으로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형 SF 소설의 탄탄한 기초가 될 작품을

다시 또 기대한다.


"이 글은 한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국에서 온 택배
히이라기 사나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택배가 활성화된 요즘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다는 연락만큼

예상치 못한 선물이 왔을 때는

그 기쁨은 배가 되곤 한다.


무슨 물건인지 알지 못한 채 열어보는 과정은

선물한 사람이 나를 생각하며

시간을 할애하고 마음을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그런데 만약 받게 되는 택배가

이미 세상을 떠난 죽은 이가 보낸

유품이 담겨있다면 어떨까?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그리움,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보고 싶으면서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이 생전에 나를 위해

맡겨놓은 물건이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받아보게 될지

정말 그 마음이 상상만으로도 뭉클해진다.


천국택배가 있다.

원하는 대상과 장소, 원하는 물건을 맡기면

약속한 날짜에 원하는 대상에게

그 물건을 어떻게 해서든 전달을 해준다.

강 저편과 이쪽으로 나뉜

생과 사의 경계를 뛰어넘어

소중한 이에게 전하고픈 마음을 담은 물건을

전해주는 택배회사이다.


가벼운 미스터리부터 일상을 그린 따뜻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히이라기 사나카가 쓴 《천국에서 온 택배》는

세상을 떠난 이가 전하고픈 마음까지 배달해 주는

천국택배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일본에서는 3펀까지 출간되며 새로운 시리즈 소설로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번에 만나보게 된 작품은

이 천국택배의 첫 번째 이야기로

메마른 감정에 단비 같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따뜻한 힐링 소설이었다.


생과 사라는 갈림길은 정해져있지 않고

어느 날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날 수도

사고로 인해 회복이 어려워서 떠날 수도

또 불치병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다가

조용히 주변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다가 우연히 닿은 연락이

마지막 부고인 경우도 있고 말이다.


천국택배의 배달원 나나호시는

각기 사연을 가진 의뢰인의 물품을

대상자에게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무언가 녹음된 녹음테이프이기도 하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게임 기계도 있다.

어렸을 때의 장난스러운 숨바꼭질 같았던 편지,

무언가 미션을 지니고 준비물이 필요한

여러 명에게 보낸 편지도 있고 말이다.


각 사연을 가진 의뢰인들은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자신의 인생의 끝에서

세상을 떠난 자신을 알게 된 소중한 이를 위해

그를 위한 마음을 준비한 것이다.


무너지고 어긋나고 실망하고 무심했던 마음들은

의뢰인들이 남긴 편지, 물건들과 함께

택배 수령인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진짜 전하고 싶었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왜 사람은 떠나고 엇갈린 후에야

비로소 이렇게 진심이 가닿는 걸까?

안타깝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한껏 진심을 마음 가득히

표현하며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내가 맞이했던 이별은 고작해야

이사나 전학으로 인한 친구들 선생님과의 이별,

먼 친척의 작고 소식이었다.

직접 와닿는 슬픈 이별이 없었기에

남긴 이가 준 '추억'이라는 선물에 대해서도

미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고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나고

곁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직접 겪어보니

'추억'이 가진 단단한 힘에 대해서

전과는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남아있는 이들은 떠난 이가 남겨놓은 추억을

야금야금 파먹으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당시에는 별 큰 의미가 아니었던 것 같았던

어떤 행동이나 말들은 남아있는 이가

어쩌면 평생을 살아갈 가장 큰 힘으로

여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 추억이 가진 힘을 이제 나는 믿고 있다.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없고

언젠가는 정해진 운명이 다 한다면 떠나가게 될 텐데,

남아있는 이들을 위해서 내가 남기고픈

나의 유품은 무엇인지, 누구에게 주고 싶은지

그리고 내가 함께 만들고픈 추억은 무엇인지

순간순간을 다시 곱씹는 시간도 되었다.


하루가 멀다가고 나를 찾아오는 택배 속

가장 의미 있는 택배가 되어줄 단 하나의 추억!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추억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글은 모모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서랍 속 작은 사치
이지수 지음 / 낮은산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생의 근본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런저런 조건을 따라 다다르는 결론은

'행복하게 살고 싶다'이다.

도달하고 싶은 어떤 부나 지위,

소유하고 싶은 물건이나 되고 싶은 사람,

그 많은 것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행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이 행복과 관련되어

자신을 스스로 챙기는 이들이 많아지는데,

'행복'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명확하게 규정된 유형이 아니기에

행복에 다다른다는 것 역시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만족도에 달려있다.


행복을 나타내는 말 중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소확행'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서 시작되었다.

소확행(일본어: 小確幸)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약칭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에서 따와 만든 말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수필집에서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등

대단하고 누가 봐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인 만족도를 주는 소소한 포인트를

그는 행복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 그의 책을 원서로 읽기 위해

일본어를 전공한 번역가이자,

사노 요코, 코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을 옮긴,

급기야 〈아무튼, 하루키〉를 쓴 이지수 작가가

고된 하루를 건너갈 징검돌이 되어 준

작은 사치들에 대해서 모아 쓴 글을 모아 책을 냈다.

《내 서랍 속 작은 사치》이다.


사치라는 것은 생존과는 별개로

필요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존재함으로 더 많은 만족감과

무언가를 버티는 힘이 될 수 있으며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한다는 사전적 정의 때문인지

뭔가 과소비의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사치'는

“오늘 하루의 생활 중 단 한 가지라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라며

그 자체의 절대적인 의미보다는

자신이 부여하는 가치에 '호사스러움, 사치'라는

의미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하루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작은 사치들을 소개하고 있다.


1장에서는 내 서랍 속 작은 호사들 이라는 이름으로

곁에 두고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여행지에서 구매한 재질과 모양이 마음에 드는 책갈피,

바르는 즉시 기분을 좋게 만들어줬던

사회 초년생 시절 사무실에 둔 핸드크림,

직접 고르고 달았던 집안의 조명,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듣기 위해 샀던 오디오 등

자신이 소유한 물건들에 대한 소개가 있다.


2장에서는 어떤 형태가 아닌

무형의 순간과 추억을 소개한다.

문을 걸어 잠그면 나만의 세상으로 변신하던 내 방,

뒤늦게 성인이 되어 다시 배운 피아노,

낯설고 방황했지만 뜻밖의 추억이 쌓였던 여행,

아이와 함께하는 짧은 산책길의 행복 등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을

'오늘의 기쁨'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3장에서는 이런저런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인생 속에서 마주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반려동물의 죽음, 유학 끝에 떠났던 여행에서 만난 사람,

부족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환경에 대한 노력,

인터뷰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

독서 권태기를 극복한 계기,

불면증을 겪으며 들었던 생각 등


책의 시작은 어떤 '물건'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무형의 '순간'으로 연결되고

마지막에는 '사람'에게 다다르는 확장을 보여준다.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좋은 것,

그것이 물건이든 추억이든 사람이든

그 '작은 사치'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그것에 대한 객관적인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흘려버릴 수 있는 이 작은 알갱이들을

작가는 모으고 움켜쥐며 오늘의 기쁨이라 명명한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

좋은 것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마음,

그것이 꼭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누구나 '발견'을 한다면 기꺼이 얻을 수 있는

'사치'임을 작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나에게 기쁨과 힘이 되어주는

작은 사치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주는 순간이 있었는가?

'사소한 작은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크고 거대한 행복이 아닌

아주 보통의 하루 속에서도

작지만 사소한 기쁨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내 안의 '기쁨 주파수'를 더욱 세워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잡화감각 - 이상하고 가끔 아름다운 세계에 관하여
미시나 데루오키 지음, 이건우 옮김 / 푸른숲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잡화점이라는 이름이 낯선 때가 있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취급하는 작은 규모의

시골 점방 같은 느낌에서

뭔가 아기자기하고 예쁘지만 쓸모는 잘 모르겠는

물건들을 취급하는 '잡화점'이라는 이름의 소품 숍까지

잡화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이토록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나 싶다.


잡화 (雜貨)

일상생활에서 쓰는 잡다한 물품.

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부르면 이름이 되고 의미가 되듯

그 어떤 물건도 '잡화'라는 이름 아래

통칭될 수 있는 것이

마치 문헌정보학을 배울 당시

도서 분류체계에서 '총류'에 속하는 000번대의

분류기호를 보는 듯한 기분이

내가 잡화를 접하고 든 첫 느낌이었다.


과거에는 '물건이 필요해 사러 갈 때'에

들르는 것이 상점이었다면

요즘은 상점의 의미라는 것이

꼭 구매의사가 없다 하더라도

'들러서 구경하고 둘러보는'

갤러리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핫하다고 하는 경리단길을 비롯해

뒤를 이어 전국 각지에 생겨버린

'*리단길'이라는 이라는 곳에는

이런저런 모든 잡화를 취급하는 잡화점이

셀 수 없을 만큼 생긴 것을 보니

잡화라는 세계가 얼마나 광대한지

새삼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만나보게 된 《잡화감각》은

모호하고 애매했던 잡화라는 것에 대한

총망라한 질문과 몽상을 더한

잡화의 세계를 담은 책이다.

실제 잡화점 'FALL'을 개점하고 운영하고 있는

작가는 잡화와 관련된 다양한 책을 출간했는데,

이 《잡화감각》은 그가 담아낸 잡화의 세계의

첫 책이자, 잡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본서로 다가올 수 있었다.


상점이라는 것은 방문객에 따라

문을 열기도 닫기도 하며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오래된 도시의 어느 곳을 방문하다 보면

혹은 동네에서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싶을만한

그런 잡화점이 한 군데 씩은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잡화점의 시작과

과정들, 또 잡화점을 운영하며 느낀 생각을 담으며

잡화를 스치는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잡화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고,

잡화감이나 잡화감각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몰랐던 독자들도 잡화라는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


물건의 실용성이나 내용이 아닌

표층 이미지에 의존하는 감각인 잡화감각,

나에게 내재된 잡화감각은 어느 정도인지

내가 어떤 물건을 보고 그것을 구매하기까지

구매의사에 잡화감각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나의 소비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1장은 작가가 본격적으로 잡화점을 시작하고

운영하며 느꼈던 잡화나 잡화감에 대한 소회가

2장에서는 잡화점을 운영하며 만났던 사람들이나

생각에 대한 내용들이 담긴다.

3장에서는 과거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작가의 잡화들에 대한 내용으로

각 장을 따라 읽으며 조금은 오히려 잡화라는 것에 대해

혼란스러울 때도 있고, 무슨 말이지 싶을 때도 있지만

그 또한 작가가 담아내고자 하는 생각의 유영이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건에 대한 생각을 이토록 깊이 한 적이 있을까?

'잡화'라는 카테고리에 대해서 어떤 냄새나

추억의 조각으로 가지고 있던 내게

물건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으로써 다가온

'잡화감각'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지극히 자본주의의 시대,

우리는 거의 매일 물건을 사며 인생을 채운다.

꼭 '기능적 필요'에 의함이 아닌 이미지나

어떤 의미에 따른 소유라는 것이

점차 드러나고 커지고 있기도 하다.

소비에 대한 분석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또 '나는 쓸데없이 예쁜 쓰레기'를 산다고

자학을 하고 있던 이들에게도

다 각기 '의미 있는 필요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상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세계,

꼭 필요하거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하지는 않지만 궁금해지는 세계.

잡화의 세계란 무릇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어디 어디에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을 칭할 수 있는

총류 같은 개념의 '잡화'를 새로이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이 글은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하라다 마하 지음, 송현정 옮김 / 빈페이지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료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색다른 장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주는 힘!

여행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바로

'떠났다가 돌아와서 다시금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

인 것 같다.


늘 시간을 보내던 익숙한 풍경이 아닌

다른 풍경 속에서 색다른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안락함이나 여행의 기억이 주는 아련함은

다시 떠날 이유가 되어주기도 하고,

익숙해서 소중한지 몰랐던 일상에 대한

감사까지도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늘 떠나는 것이 아니기에, 여행에 대한 이런 로망은

모두에게 마음속에 있는 풍선처럼 동동 떠오르는데,

그런 마음을 반영하듯 여행 프로그램이나

일상에서 벗어난 비일 상의 휴가, 방학에 대한

사람들의 간절함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일주일의 고단함을 지우듯 금요일 저녁시간대에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프로그램이

주로 배치되는 건 어쩌면 이런 마음을 알고

모두에게 전하는 위로일 수도 있겠다.


여행을 업으로 하거나, 수시로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런 아쉬움을 채우기도 하고

언젠가 떠날 여행의 후보지를 정하기도 하며

새로운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보는 방송이라고만 여겼던

매일 방송하는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보면

다양한 지역의 모습들이 나오곤 한다.

그곳에 사는 분들의 이야기,

지역 특산물이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리포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나 애정이

저절로 샘솟는 경험을 누구나 한 번씩 해봤을 것이다.

매 방송마다 각기 다른 지역을 오가며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리포터들은

'이렇게 여기저기 둘러보며 여행하며 일을 하니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번에 만나보게 된 소설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는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요청에 따라 대신 여행을 하고

여행의 감동을 전하는 역할을 하는

여행대리인 '오카에리'가 전하는 감동이 담겨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영상화 제작이 완료되어

방영을 기다리고 있기도 한 이 작품은

'소소 여행'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전직 아이돌이자, 한물 간 30대 초반의 연예인인

오카 에리카가 방송 촬영 중 한순간의 실수로

방송이 폐지되고 갈 곳을 잃은 그때,

방송을 지켜보았던 애청자의 요청으로

난치병을 앓고 있는 딸을 대신해

그녀가 꼭 가보고 싶었던 풍경을 대신 여행하고

그 여행의 감동을 전해주기를 요청받으며

본격적인 '여행대리인'으로의 활동을 시작한

오카에리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떠나지 않는 여행이

대신 전해보고 들은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여행대리인으로서 의뢰인을 대신해

여행지를 공부하고 중요 포인트를 잡으며

의뢰인이 원하는 바를 전하고자 노력하는

오카에리의 노력을 보고 있으니

'꼭 직접 겪는 여행만이 여행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독서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대리 여행을 의뢰하는 의뢰인들은

오카에리를 통해서 자신이 마치 그 여행을

직접 하는 듯 느낄 수 있었고

진심을 담아 전하고자 하는 오카에리의 노력은

'여행과는 또 다른 감동'으로 의뢰인들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의뢰인들의 여행을 하며

오카에리는 스스로에게도 많은 생각을 할 시간과

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얻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를 발견하는 시간으로 여행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따스한 감동과 기적과 같은 힘을 주는

오카에리와 여행의 기록들은

'다시 떠날 수 있는 원동력이자,

돌아왔다는 안도감'으로 모두에게

여행에 대한 환상을 더욱 진하게 심어줄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잘 하는 게 없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라는

방황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가방을 메고 일단 여행을 떠나보라고 하고 싶다.

낯선 공간에서 자신과 마주하며

몰랐던 속마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그런 시간, 여행만이 주는 힘을

가득히 느껴보기를 바란다.


여행이 끝나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이야기하며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여행 가기 전보다 한껏 단단해질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빈페이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