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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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을 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무엇을 이루게 해달라기보다는

주로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 포기하지 않을 마음,

혹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나 자신을 자책하지 않게 해달라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계획 같은 느낌으로

공손히 손을 모은다.


사실 오래된 말씀은 종교적인 색을 떠나

후대의 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어쩌면 그것이 최초의 교육이었을 수 있고,

깨달음에서 비롯된 이어짐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따금씩 전해지는 기도문들을 보며

힘을 얻기도 하고, 나아갈 방법을 배우기도 하며

반성을 하기도 한다.


그런 기회에 만나보게 된 책은

이문재 시인이 엮은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기도와 기도 시를 모았는데,

작자 미상의 기도를 포함해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들의 작품까지

다양한 시를 통해 간절함을 담고자 했다.


지치고 힘들 때,

먼저 그 시간을 겪은 이들의 마음이 가득 담긴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지만

오히려 해결책이 없기에 더욱 와닿고 좋다.

복잡했던 마음의 조각들이 그들의 말을 들으며

조금씩 풀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안도감이 좋다.


과거에는 기도라는 게 나 자신에게 말하는 다짐이었고,

가까운 가족이 떠난 이후에는 그들이 수호신인 양

그들에게 털어놓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이런 마음이고 이런 속상함인데

나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하지만

그 기도에는 질문도 답도 필요 없다.

사실은 그저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함께 주어진 이어 쓰기 노트를 통해

마음에 들어온 시들을 차분히 옮겨 적는다.

마치 나를 위한 것만 같았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시작으로

기도라는 것에 정형된 형태가 없이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라는 얘기는

종교적인 그것을 초월한 모두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도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어떤 욕심도

내가 나를 위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들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기도의 힘이란 무릇 이런 것일까,

나를 다시 돌아보고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일까

시를 옮겨 적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음에 복잡할 때마다 막연한 외침 같은 기도 대신

이제는 이 책을 펼쳐보려 한다.

간절함을 담은 나의 오래된 기도로

나의 길을 밝혀보려 한다.


"이 글은 달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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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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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에 가거나 출근을 하는 등

하루의 시작과 끝, 그 과정에 만나는 교통수단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선호하는 건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이동시간 및 소요 시간에 변동이 없고

언제든 타고 내릴 수 있으며

그 속에서 마주 앉은 사람들과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인생 또한 즐기고 배울 수 있는 지하철이다.


지하로 연결된 긴 통로의 선로를 미끄러져가는 지하철은

매 역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품고 있는데,

늘 타고 내리기만 했지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찰나에

이 열차를 움직이는 기관사의 시선에서

지하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났다.

바로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이다.


이 책은 부산시 지하철 2호선을 운행하는

이도훈 기관사가 쓴 책으로

제 11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다.

브런치북에서 '마리오네트 지하철'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작품이 이번에 책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평소 지하철에서 제일 앞이나 뒤 칸에 탔을 때

열차를 기다리며 마주하게 되는 얼굴인

기관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기관사석은 승객이 이용하는

일반 객실과는 분리되어 있고,

어지간해서는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며

정차를 하거나 이슈가 있을 때에만

방송을 통해서 목소리로만 만날 수 있는 존재다.

매일 같이 이용을 하고 있지만

마주하는 얼굴이 아니기에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이

'사람의 손이 닿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뭔가 기계적인 느낌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따금씩 기관사석과 맞닿아있는 객실에서

문을 통해 들리는 어떤 무전음 같은 것이나

혹은 중간 역에서 교대를 위해 문이 여닫히면서

열차에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이 타고 내리는 만큼

사연도 사건도 사고도 많은 이 지하철에 대한 얘기는

때로는 뉴스에서 때로는 어떤 방송 사연으로

때로는 SNS나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기관사의 시선에서 바라본 지하철의

다양한 이야기가 기관사의 업무와

또 지하철이 돌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궁금했던

부분이 색다른 재미로 펼쳐지고 있었다.


작가는 자신이 기관사가 되기까지 거쳤던

여러 단계의 시험이나 과정에 대해서도

지하철 어벤저스라 불리는 합이 좋은

동료들에 대해서도,

또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각양각색의

손님 유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어?' 싶을 만큼

다양한 사건들은 단순히 '지하철을 운행한다'라는 것

이상으로 해야 할 몫이 많은 기관사들의

노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지하철 역사 내에서의

자살 뉴스를 보며 이로 인해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기관사들의 이야기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과 책임을 다하고 있지만,

어떤 직업의 경우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보다는 타인을 생각하고

어지간한 사명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런 일들도 있다.

우리가 일상을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우리들을 열차에 싣고 옮겨주는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묵묵한 노력에 감사함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정시 출발, 정시 도착.

누군가의 하루 시작을 열어주고

누군가의 하루 마지막을 닫아주는

첫차 막차의 감사함 속에

시민의 안전과 편리함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기관사분들께

열차를 타고 내릴 때 수줍긴 하지만

감사의 인사라도 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재미로 시작한 지하철 이야기의 이 책이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직업에 대한 깊은 애정과

단단한 책임감으로 숙연하게 읽혀나갔다.


유난히 길게 이어지는 비 소식이 계속되는 요즈음

부디 모두에게 안전한 하루가 마무리되기를,

여닫는 문 사이 미끄러움 없이 매끄러운

평탄한 모두의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이야기장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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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지음 / 래빗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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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공포' '두려움' '무서움' 등의 화제로 옮겨지면

'귀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

'혼자 있을 때 느끼는 무서움?'의

질문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얀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처녀귀신이나

경직된 몸으로 부적을 붙인 채 총총 뛰는 강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를 묻는 화장실 귀신까지

살아있지 않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대부분이었던

어렸을 때와 다르게 그때에 비해 많이 알게 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보다는

존재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귀신이나 좀비 등을 소재로 한 영화보다는

실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 벌이는 현실적인 공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더욱 많이 다뤄지는 것처럼 말이다.


제목만으로는 전형적인 귀신의 이야기를 다룬

오컬트 물이라고 생각했던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는

비정상 혹은 시대가 정한 중앙에 들지 않아

차별을 받았던 여성들이

그 차별 속에서도 꿋꿋하게 맞선 이야기를 통해

으스스한 호러적 재미뿐 아니라

통쾌한 해방감을 전하고 있었다.


첫 장편소설이 드라마화가 확정되었고,

장편소설, 에세이, 앤솔러지 소설집을 통해서

자신만의 확실한 색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온 김이삭이

각기 다른 이야기이지만 하나의 방향을 향하는

작품들을 모아 첫 소설집을 묶어 내었다.


이번 소설집은 5가지 단편이 묶어져 있는데,

데이트 폭력 가해자를 피하여

고택에 머물던 여성의 기이한 체험담 〈성주단지〉,

학교의 금기를 어긴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학교 괴담 〈야자 중 ×× 금지〉,

옹녀의 시점에서 다시 쓴 ‘변강쇠전’ 〈낭인전〉,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 혐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오컬트 물 〈풀각시〉,

조선 후기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에서

벌이지는 괴이한 이야기 〈교우촌〉까지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차별과 편견을 받아온 여성들이

그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지키고

서로를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 그 연대를 담았다.


소설 속에서 그녀들에게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불가사의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들이 으스스함을 전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녀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그녀들에게 위해를 가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어떤 차별이나 비뚤어진 시선, 편견이다.

소설 속에서 그녀들은 이를 극복해 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또한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우리는 그 차별을 극복해 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후련함이나 통쾌함, 어떤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읽으며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 또한

이 차별에 가해진 불편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까?


가부장적인 사회, 유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소리 없이 스러졌을 수많은 목소리들,

수많은 그녀들의 목소리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부단히 강하게 만들고, 도왔으며, 나아가게 만들었다.


다섯 가지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풀각시〉였다.

기억을 놓아가는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의 고향을 찾은 주인공.

고향에서는 헤매는 것 없이 평온한 일상을

찾은 할머니는 5개의 살이 모인 곳에서

풀과 갈대를 모아 풀각시 인형을 만든다.


늘 그것을 품고 다니던 할머니는

손녀인 나에게 '언니'라 부르며

자신이 이번에는 꼭 언니를 지키겠다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곤 한다.

별채에 머물던 그녀와 할머니,

어느 날 뒤뜰에서 발견된 상자 속에서

나온 책자와 인형을 통해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데,

과연 오래된 할머니의 친정집 그곳과

집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읽으며 가슴이 턱 막히기도 했고

높은 벽처럼 가로막히는 현실 속에서

과거의 그녀들과 오늘날의 그녀들이

어떻게 이 현실을 넘어설지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을 하게 됐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하고

넘어야 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은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하지만,

그 벽을 부수고 나아간 그녀들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벽을 부수고 넘으라!'라며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성별을 지우고 읽어도 '차별'을 받는 존재들,

비정상이라 낙인이 찍힌 이들에게

그들만의 연대로 마주한 벽을 넘어서라는

큰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


소설을 읽으며 그들이 처한 상황이 주는 두려움에

함께 으스스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는 두려움은 더 이상

공포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차별이라는 벽을 부수고 나아가

두려움을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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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를 마중하러 왔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17
박사랑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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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묘사할 수 있는 표현으로

이만한 것이 있을까?

아직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

무얼 해야 하는지 무얼 잘 하는지도

그저 혼란스럽기만 한 나이.

반복되는 학교 - 학원 - 집 생활 속에서

'나'라는 존재 대신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나조차 나를 잘 모르겠다' 마음에

더욱 복잡한 때가 바로 사춘기이다.


18살의 평범한 고등학생인 주인공은

등교 지옥을 뚫고 겨우 도착한 교실에서

자신이 주번임을 알게 되고,

때마침 터진 대자연의 신호 앞에서

떨어진 컨디션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데 오늘따라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게 너무 이상하다, 마치 이름을 잃은 듯

주번, 12번 등으로 불리며

'내가 이렇게 존재감이 없었나' 섭섭해질 무렵

하필 떨어진 명찰 때문에

힘들게 얻어낸 조퇴길에 버스마저도 놓치게 된다.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30분이라는 시간에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찰나

갑자기 느낌 어지러움과 함께

구멍 같은 곳에 발이 빠지고

눈을 떠보니 이상한 타이밍에 어딘가에서

새로이 태어났는데,

그곳은 바로 조선시대의 원주!


타임슬립이라기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나 너무 혼란스럽고

충돌이나 차원의 문도 열지 않았는데

다른 시공간으로 오게 된 건지 정말 모를 일이다.


과거의 기억은 또렷한데,

이상하게 이름 세 글자만 지우개로 지운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혼란스러움도 잠시 어느덧 조선에서의 시간은

백모월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내가 9살이 되었고,

외출을 했다가 몸종인 연시와 함께 돌아온 집에서

엄청난 사건을 맞이하여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까지 가족 모두를

눈앞에서 잃게 되는데

집까지 불에 타버리고 '위험하다'라는 생각에

그길로 연시와 함께 손을 잡고 도망친 모월!


이름도 잃고, 미래에서 조선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모월은

이제 조선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벌어진

비밀까지 파헤쳐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미래의 기억을 가진 주인공이

과거의 조선에서 마주한 현실에는

역병과 기묘한 살인사건,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청루의 당주까지

과연 주인공은 비밀을 풀어가고,

자신이 있던 현재로 돌아올 수 있을까?


2012년 단편소설 《이야기 속으로》와

《어제의 콘스탄체》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조선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고등학생의

본격 추리활극을 《안녕, 나를 마중하러 왔어》에 담았다.

장편소설 《우주를 담아줘》로 덕질라이프에 대한

내용을 담으며 십 대는 물론, 작가와 비슷한 나이대의

삼십 대까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이번에는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을 통해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본격 타임슬립

추리 활극으로 재미와 감동을 모두 전하고 있다.


타임슬립은 종종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요소이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

(과거에서도 등장하는 이가 굉장히 낯설고 이상한)

시공간만을 이동한 것으로 나오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조선시대에서 새로이 태어난다는

설정이 굉장히 독특했다.

나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새로이 또 다른 나로 태어난다는 점,

이름을 잃은 주인공이 다시 태어난 과거에서도

집안의 문제로 인해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다른 이름으로 비밀을 파헤쳐 가는 과정이

마치 평행우주에 있는 같은 존재처럼 겹쳐졌다.


과거의 조선이나, 미래의 대한민국에서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주인공의 여정은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미래의 자신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무얼 잘하는지 모르는

주변의 다른 여성들에게 이름을 물어주며,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해 주는 과정은

타인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의미를 찾아주는

해결사 같은 모습으로 굉장히 멋있었다.


어린 나이의 주인공이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들여다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이만큼 성장하는 과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청소년 소설인지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뿐더러

조선시대라는 배경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도

소설을 통해서 과거로 함께 여행을 하면서

색다른 배경 같은 우리나라의 매력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다시 미래로 돌아온 주인공이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찾고,

나를 찾기 위해 오늘의 현재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고민스럽고 답답한 아이들에게

방향 표시 등 같은 느낌으로 다가갈 것만 같다.


소설을 읽으며 이름을 찾아 헤맸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극히 한국식으로 해석한

본격 타임슬립 소설의 즐거움을

모두가 함께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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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간식은 뭐로 하지 - 달달해서 좋은 만남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반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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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밥 사이, 때로는 밥을 건너띄고 먹기도 하는

간식을 참 좋아한다.

무언가 색다른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

밥과 다른 느낌의 음식을 여유롭게 즐기는

그 시간이 입뿐만 아니라 기분적으로도

굉장히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지금이야 아침 간식부터 시작해서

점심 급식, 오후 간식까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원에서 먹는 음식이 여러 회차에 걸쳐

참 다양하기도 한데

내가 어렸을 때는 어린이집은 없고

고작해야 학교 가기 전 일 년 정도 유치원을 다녔다.

점심시간은 일주일에 한 번(수요일),

나머지 요일에는 점심을 먹기 전 수업이 끝났는데

매일 출출할 무렵 간단한 요깃거리가 나오는

'간식시간'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자

기다림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아침 일찍 수업을 시작해서

활동을 하다가 간식시간이 다가오면

선생님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물론 직접 연주하신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설레는 마음으로

모둠별로 모여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노래가 끝나고 눈을 감고 있으면 모둠별로 1명씩

선생님이 목걸이를 걸어 '간식 당번'을 정해주는데,

이 간식 당번은 선생님이 있는 앞쪽에 나와

간식을 타서는 모둠 아이들에게

하나씩 전달해 주는 그날의 임무가 주어진다.

아이들인지라 한 번에 한 명씩,

간식 당번이 주는 순서대로 간식을 받기 때문에

'뭔가 제일 먼저 받고 싶어' 라든가

'나 제일 큰 걸로 줘!' 하는 아우성이 나오기도 하는데

워낙 수줍을 많이 타기도 하고

친구가 많지 않았던 나는 늘 거의 끝에서 두 번째

혹은 마지막에 다다르는 경우가 많았다.


쌍둥이인 동생과 같은 모둠일 때는

서로 물어볼 것도 없이 제일 먼저

가장 크고 좋아 보이는(그래봐야 다 같은 간식)

간식을 제일 먼저 놓아주었고


지금은 소보로 빵이라 불리는 곰보빵은

빵 겉의 소보로만 먼저 떼어먹고

누더기가 된 남은 빵은 봉지에 담아

가방에 넣어서 싸가기도 하고

(당시 소보로 빵을 싫어해서 먹지 않았다고 하니,

엄마가 버리지 말고 싸오라고 간식표를 보고

비닐봉지를 넣어주심)

귤이 나오는 날에는 아이들 모두 손에 굴려 귤을 깐 다음

간식 쟁반 위에 귤을 한 조각씩 펼쳐놓은 뒤

'돈가스처럼 먹어야지' 하면서

썰어놓은 돈가스를 먹는 듯 귤을 먹기도 했었다.


대단한 간식은 아니지만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는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고

간식표는 미리 집에 보내는 안내문에 있을 텐데

(엄마가 미리 알려주지도 않은 데다가)

오늘 간식은 뭐지? 하면서

교실로 배달되는 간식 상자를 눈여겨보며

그날의 간식을 상상해 보는 게 너무 좋았다.


미혼 여성의 일상을 담은 만화와 에세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마스다미리가

이번에는 본격 간식, 음식 이야기로 찾아왔다.

얼마 전 읽은 《런치의 시간》을 통해서는

코로나 시대를 보며, 점심 한 끼를 통해

하루의 행복을 담고 여행 대신 만끽하던

다양한 점심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이번에는 《오늘의 간식은 뭐로 하지》를 통해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하고 따스한

간식과 음식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연도별로 분류된 글은

그녀가 먹었던 간식에 얽힌 추억들에 대해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익숙한 때로는 새로운 간식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그 맛을 상상하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나 책의 서문에 있었던

그녀가 직접 찍었던 간식들은

"꺄악" 하고 탄성을 자아내게 했는데

마스다미리 특유의 귀여운 그림까지 더해지니

더욱 특별한 간식 이야기로 다가왔던 것 같다.


지친 하루, 심난한 기분

때로는 기쁘거나 의미를 더하고 싶은 날

나에게 작은 행복을 선사하고 싶다면

'간식'보다 좋은 게 또 있을까?

마스다미리가 간식이라는 이름을 빌려 전하는

일상의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아도

행복이란 이토록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만의 확고한 입맛을 드러내는

마스다미리의 간식 취향도

'어쩌면 조금은 나와 비슷한 면도 있네' 하고

즐겁게 간식처럼 읽을 수 있었던 그런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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