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시간 1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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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하빌리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뉴스를 보다 보면 드라마 보다 더 비현실적인,

때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싶은 일들이 전해진다.

가정폭력이라든가 그로 인한 살인사건까지

극적인 사건들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마주하는 여러 사건들을 바라보면

생각하는 '일반적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모습이

고정되기 마련이다.

연약한 아이나 여성은 피해자로,

덩치가 크고 힘이 센 남성은 피해자로 말이다.


이번에 만나본 〈자비의 시간〉은

가정폭력 살인사건을 다룬 법정스릴러 작품인데,

내가 생각해 온 살인사건의 이미지에서

한창 벗어난 예외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재혼가정으로 이루어진 한 가족,

의붓아버지의 폭력에 지치고 두려움에 떤

16살 소년이 총으로 그를 살해하고,

그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을 담고 있었는데

흔히 피해자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어린 소년이 가해자로

그들에게 위협을 가하던

의붓아버지는 피해자로 나온다.


그 사건에 이르게 된 과정이 어떻든 간에

결론은 살인사건을 향하고 있고,

더욱이 보안관(경찰)이라는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 덕분에

이 사건은 여러 가지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누구도 살인을 저지른

이 어린 소년의 변호를 하려고 나서지 않고,

그의 국선 변호를 제이크가 맡게 되며

본격적인 사건에 대한 추적과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소년에 대한

재판이 이어지며 흥미로운 서사를 이어간다.


1권에서는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그리고 재판이 열리기까지의 과정을

2권에서는 본격적인 재판이 진행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인사건이라고는 하지만

기존에 수많은 폭력 아래 두려워했던 소년이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선택이었고,

뒤이어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들로

재판의 방향은 예상과 다르게 흔들린다.


주인공인 드루의 변호를 맡은

제이크가 담당한 또 다른 사건의 재판

이야기도 함께 펼쳐지면서

'신념'과 '정의'에 대한 생각을

읽는 독자들도 함께 해볼 수 있었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하지만 살인에 이른 것을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재판을 바라보고 판결을 내릴

배심원들은 재판이 진행되며 밝혀지는

증거와 심문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고,

읽으면서 나 역시 '무엇이 옳은 판결인가?'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배심원 제도로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진행하는 방법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변호사 출신 작가답게 현실감 넘치는 재판 신은

굉장히 디테일하면서도 스릴 넘쳤다.


AI의 발달로 앞으로 사라지게 될 직업 1위로

판사가 꼽혔다고 한다.

판례를 바탕으로 내려지는 판결 앞에서

우리는 '사람'이기에 이해하고

정상참작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소설 속의 이 사건을 AI가 판결하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어떤 살인에도 정당화가 성립될 수 있는지?

어떤 처벌이 과연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지?

줄곧 피해를 당하다가

마지막 탈출구 같은 느낌으로

선택한 범죄의 경우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정말 어려운 질문들이 연신 머릿속을 떠다녔다.


가장 냉철하면서도 가장 인간미 넘쳤던 제이크와

엄청난 사건 속에 휘말린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함을 느끼며 끝없이 빠져들게 했다.


법정 드라마라고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보다는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고,

가정폭력이라는 어쩌면 전 세계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소년범죄들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모든 이들이 처벌받아 마땅한 소년"범죄"자가 아니라

그저 "소년"범죄자인 경우도 있다.

그 판결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가야 할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잡아야 할

중심이 될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완전한 끝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길은

다다르고자 하는 그 방향으로

반드시 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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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벽
다이구 겐쇼 지음, 지소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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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라는 말이 있지만

마음을 다스리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인생이라는 파도 위에서

타인과 부딪치게 되는 여러 상황들,

그 속에서 방황하고 흔들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인데, 아무리 성인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자신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런 "감정 문제"들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고,

겉으로 표를 낼 수는 없지만 타인에 대한

질투나 시샘, 비교를 하며 혼란스럽기도 했다.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싶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심을 잡고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는데

불교, 부처의 말씀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세워져 있는 수많은 벽들을 넘어

괴로움의 원인을 타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며

감정의 변화를 분석하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감정과 마주하는 법을 다룬 책을 만났다.


73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고,

상담 대기자만 2500명이 넘는다는

일본 최고의 카운셀러로 꼽히는

다이소산 후쿠곤지의 주지 스님인

다이구 겐쇼가 지은 〈나라는 벽〉이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고민의 순간,

우리는 그 원인을 외부에서부터 찾는다.

나를 이렇게 고민하게 만든 원인을

나 아닌 타인이나, 외부의 문제로부터 찾으며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 그것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의 순간에 있어서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

외부가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


오해나 망상, 이기적인 기대나 타인과의 비교 등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벽'들이

이런 고민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문제에 있어서 자신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바깥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왜 그런 고민을 하게 되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 아닌

'내가 이런 고민을 하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로

타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답을 찾으려고 하기에

더욱 풀리지 않고, 이런 맹독성 감정들은

나를 더욱 괴롭게 할 뿐이다.


고민 상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다이구 겐쇼 스님은

우리가 가진 감정 문제에

불교의 핵심 개념을 적용했는데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고,

내면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감정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나 슬픔, 질투, 불안 같은 부정적 감정은

사람인 이상 완전히 없애기란 불가능하다.

다이구 스님은 우리들을 괴롭히는 불필요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적당히 받아들이고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알면 지금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곧 '마음의 벽'을 뛰어넘는 작업이며,

고민을 해결하는 사고방식을 배우고

아주 조금이라도 실천하다 보면

자꾸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과 사고 습관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한다.


불교의 사고법을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과 표현을 통해

고통을 제대로 마주하고 가뿐히 벗어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1장에서는 인간 내면의 세 가지 뿌리 감정인

'욕심', '분노', '무지'에 대해 설명하고,

이 감정들이 어떻게 고통의 근원이 되는지를

불교 경전과 함께 풀어낸다.


2장에서는 '분노', '질투' '슬픔' 등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들을 살피며,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감정의 방향을 바꾸는 방법은 어쩌면

내 마음속에 있는 벽을 낮춰주는 가장 기본적인

스킬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내 마음에 남았다.


3장에서는 '불안', '조바심', '절망' 등

마음이 현재가 아닌 미래와 과거에 매여 있는 이들에게

체념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데,

특히나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편인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고 도움이 되었던 파트였다.


4장에서는 욕심과 경멸을 넘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타인에 대한 시선과 더불어 평가를 하는 게 익숙한

이들에게 따끔한 충고가 될 것 같다.


마지막 5장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고민과 괴로움에서 슬기롭게 벗어나는 비결을

담았는데, 그 방법으로써 '명상'을 소개한다.


이처럼 다이구 겐쇼 스님은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고민과 괴로움 앞에서

바깥을 향하던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가져오고,

내 마음을 제대로 직시함으로써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뿌리는 불교에 두고, 부처의 말씀을 덧붙였지만

종교를 떠나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이들에게

많은 울림으로 다가갈 그런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다.


타인에 대한 시선 그리고 그들을 향한 평가가

익숙한 오늘날의 우리들인데, 그런 감정 자체가

타인과 비교해 스스로 느끼는 우월감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은 속내를 들켰다는 생각에

화끈거리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고,

시작을 알 수 없는 '불안'이라는 감정 앞에서도

이 불안함을 제대로 분석하고 파악하며

나 자신이 만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 읽기 시작할 때는

'불교 얘기라 지루하지는 않을까?'

'뻔한 마음 찾기 류의 얘기가 아닐까?'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마음의 구석구석을

거울로 비추어 바라보는 것 같아서

속 시원하기도 하고 비로소 해답을 찾은 것 같은 느낌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비롯됨을 알고,

올바른 마음의 중심을 잡기 위해

내 마음과 마주하며 직시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기둥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 모두 마음의 주인인 '나'를 제대로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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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기다릴게 넥스트
한세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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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이언트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실은 알고 있지만 마주할 자신이 없어

외려 숨겨두었던 마음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감정의 흔들림은 큰 파장을 남긴다.

특히나 작은 일에도 인생은 흔드는 것 같은

청소년기에는 마주치는 사람 하나

마주치는 사건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고스란히 생채기를 남기기도 하는데,

그런 상처들을 들여다보고

내 안의 마음과 마주하며

우리는 비로소 '성장'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전하지 못한 진심,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각자가 가진 부채감으로 기억하는 한 사람.

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어찌하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유서 대필'이라는 부탁을 계기로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각자의 기억과 느낌으로 남아있던 일상들을

남겨진 일기장과 맞춰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심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면서

비로소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웃음이 스며든 하루를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작가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으로

상처를 가진 채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고등학생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내 안의 마음과 마주하는 시간,

나와 너를 넘어 '우리'라는 세계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단단한 힘이

되어주고 치열한 분투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기의 마음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따스한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 유신이

같은 반 지원에게 '유서 대필'을 의뢰받으면서 시작한다.

유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영원.

유신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그토록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에게 쌍둥이 형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과거의 사고 이후 도망치듯 벗어났던 유신은

끝끝내 알지 못했던 영원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대필 조건으로 '영원의 일기장'을 받기로 하고

지원의 유서 대필 의뢰를 받게 된다.


영원의 일기장을 읽으며,

유신은 영원과 만났던 과거의 시간을 회상한다.

늘 친구들에게 인기 많고 밝은 줄만 알았던

영원에게 꼬리표처럼 따라왔던 외로움과

때로는 벅찼던 부모님의 기대, 쌍둥이 형과의 비교,

그리고 유신과 영원이 서로 전지 못했던 진심까지

유신은 영원을 알기 위해 일기장을 펼치지만

오히려 일기를 읽으며

영원을 더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 옥상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나눴던 소중한 추억들,

다른 이들 앞에서 내보이진 않았지만

사실은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던 상대에 대한 마음,

그리고 영원이 세상을 떠나게 된

그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이야기 등

유신과 지원은 각자 가진 자신의 부채감을

영원의 일기를 통해 깨닫고

서로에게 상처를 꺼내 보이며

그동안 외면했던 마음과 마주한다.


떠난 영원이 남긴 일기장은

유신과 지원을 새로운 친구로 엮는 매개체이자,

그들이 영원을 넘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마주하게 되는 역할도 한다.

'내가 무얼 해야 할지' '타인과의 갈등' 아래

혼란스러워하는 청소년기의 방황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흔들리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주변의 속도에 관계없이 나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도 된다'라고 작가는

얘기하고 있었다.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 시기에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우리는 지극히 '다 그맘때 면 겪는 일이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답답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비뚤어진 반항으로

오히려 관계가 엇나가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마음속에 가진 자신만의 부채감을 이겨내고

주인공들은 마음속 진심과 마주하며

비로소 성장이라는 길에 이르른다.

충분히 흔들리고 방황한 만큼,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쏟아낸 만큼

후련해진 마음은 그들을 비로소 웃게 한다.


몽글몽글하고 아련한 첫사랑의 마음,

흔들리고 방황하며 아파하던 상처까지도

너무나 아름답고 씩씩하게 그려낸 작가만의 세상은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또 그 시기를 지나 마음의 굳은살이 생긴 어른들에게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 주자며 대화를 건다.


옥상에서 만나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힘이 되었던 유신과 영원처럼

이 작품도 읽는 독자들에게 그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고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유신의 성장기도,

마지막까지 자신의 마음에 솔직했던 영원의 단단함도,

미안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던 지원의 용기까지

하나하나 너무나 소중했던 작품이었다.


옥상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큰 세상을 작게 만들어 보이며,

내가 직면한 문제 역시 티끌처럼 작은 문제라며

씩씩하게 일어나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다.

모두가 자신만의 옥상을 마주할 수 있기를,

그런 용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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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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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책읽는고양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나와 다른 이들에게서 '배움'이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직접 겪으며 배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책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언어와 종교, 성별을 넘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된다.
그것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배울지는
읽는 '나'에게 달려있으니
이렇게 '열려있는 선생'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다양한 장르와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많지만
대놓고 지식을 전달하는 학문을 다룬 책보다도
시간의 힘을 가진 인생 선배인 작가들의
넋두리 같은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대단한 지식이나 개념이 담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학교나 교육을 통해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늘 주변에 추천하는데다가
한 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닌 수시로 들춰보며
꺼내보고 싶은 작가의 책은 바로 소노 아야코이다.
1931년에 태어난 이 90대 작가는,
선천적 고도근시를 앓았을뿐더러
부모님의 불화 아래 자랐는데
이런 시간들은 그녀가 작가로 살아가는데
더욱 짙은 힘이 되어주었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편함에서부터
일반적인 생활이 어렵기에 선택했던 글쓰기,
그리고 글 속에 묻어나는 깊은 성찰은
세대를 건너띄어 지금을 살고 있는 손녀 뻘의 나에게는 
그 어떤 가르침보다도 깊은 위로로 다가왔다.
그래서 소노 아야코의 책들을 꾸준히 읽어왔고,
그런 그녀의 세계관에 푹 빠져 있었는데
최근에 소노 아야코 세계관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신간이 나와 기쁜 마음으로 만나보았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라는 제목으로
기존에 출간했던 책들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문장들을 모은 에세이이다.

소노 아야코는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서
타인과의 인간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를 비롯해
나이 듦,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한창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인간관계를 중시 여기는 젊은이들이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낄 때 공감할 수 있는
소노 아야코만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가볍게 툭툭 내뱉는 듯한 할머니 작가의 말은
때로는 잔소리같이 때로는 따스한 손길같이
그러면서도 재치 있는 유머를 느끼게 했는데,
이번에 만나 본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는
그녀의 책들 중에서 주요한 문장을 골라
'소노 아야코가 이런 말을 했다'라고 간단히 전하는
소노 아야코 세계관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관계, 삶, 인간, 신 4장으로 나누어
각 주제에 어울리는 문장들을
이전의 책들에서 골라내었다.
이미 읽어 알고 있던 문장들은 한 번 더 읽으며 반가웠고,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의 문장은 새로운 기쁨이 되었다.

관계와 삶을 통해서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인간 파트에서는 나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어떤 종교적 이야기는
마지막 파트에 담으며 인생을 투과하는
소노 아야코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인간관계에 대한 그녀의 통찰은
언제나 마음에 남는다.
타인의 시선 아래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은
때로는 그 때문에 무리하거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소노 아야코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그대로"
"무엇을 부러 더 하지 않아도 되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평가나 측정이 아닌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대를 버릴 것"이라는
얘기가 참 마음을 놓이게 한다.

어쩌면 내놓지 못한 속마음을
그녀가 대신 얘기해 줘서 거기서 오는 후련함이
소노 아야코의 글에 빠지게 하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 앞에서 이토록 담백한 사람이 또 있을까?
이토록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호쾌할 수 있을까?
소노 아야코를 볼 때면 살아온 시간이 가져온
단단함이라는 뿌리가 얼마나 나 자신을
튼튼하게 만드는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관계에 지치고 기대에 벅찰 때면
소노 아야코의 얘기를 떠올리며 중심을 바로잡는다.
삶이라는 흐름에서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며
올바른 시선으로 '나'를 곧추세울 수 있게 말이다.
그런 심호흡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그녀의 글은
나를 중심으로 여기 되, 스스로를 타자화함으로써
오히려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늘 기대 그 이상의 깨달음을 주는 나의 영원한 선생,
소노 아야코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압축한
<때로는 멀리 떨어져 산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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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망상 달달북다 11
권혜영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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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달달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북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던 학창 시절

반 아이들은 세 분류로 나눌 수 있었다.

청소년기에도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는 요즘과 다르게

'이성친구를 사귄다 = 노는 느낌' 이 강해서인지

드물었던 '이성친구를 사귀는' 파,

그리고 미지의 존재 같은 '연예인에 열광하는'파,

이성친구에도 연예인에도 관심 없는 나머지 부류.


그래서인지 연애나 로맨스를 떠올릴 때면

이성친구가 있는 아이들은 소소한 투닥거림이나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나에게 실망도 주지 않고 완벽한 모습으로 있는

'우리 오빠'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마냥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들만의 로맨스를 이어갔다.


실제로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이 없는

미지의 존재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감정은

팬덤 내에서도 '유사 연애'라는 워딩으로

폄하되기도 하는데, 연예인을 상상 속 애인으로 삼고

연애 감정을 가지고, 상상 연애를 하는 것을 이르는

이 말은 무언가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느낌이라

타인 앞에서 쉬쉬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비슷한 느낌으로 2014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Her〉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담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실체가 없는 상대와의 사랑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을 이번에 만나보게 됐다.


달달북다의 로맨스X비일상 시리즈인

〈애정 망상〉이다.


과거의 연애를 계기로 남자 울렁증이 생긴

주인공 '지나'에게는 타인에게는 밝히지 못하는

고막 남자친구가 있다.

바로 '세진'이라는 이름의 ASMR 콘텐츠가 그 상대인데,

실체도 상처도 없으면서도 연애의 감정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메리트이다.

퇴근을 하고 자신만의 루틴으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세진의 ASMR 콘텐츠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지나의 가장 큰 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나의 귓속으로 익숙했던

세진의 목소리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볼륨을 0으로 해놓고 재생도 일시 정지한 상태였는데

어리둥절한 지나에게 '세진'의 목소리를 한 그가 말하길,

자신은 지구로부터 2800만 광년 떨어진

다즐링이라는 소행성에서 온 왕자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지구라는 행성의

한국이라는 나라로 '아이돌'이라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떠났고, 그녀를 따라 여기에 오다

문제가 생겨 신체는 잃은 채 불시착했다는 것,

그래서 주파수를 이용해 세진의 목소리를 빌려

그녀에게 자신을 도와주기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지나를 무력화 시키는 '세진'의 목소리로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이 다즐링 왕자를 쫓아내기 위해선

그를 도와 이곳에서 보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인데,

하필 왕자의 요청은

'남자 염색체를 가진 신체의 일부를 구해달라는 것'

남자 울렁증을 가진 지나에게

가까이 지내는 남자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손톱, 타액, 터럭 같은 것이라 해도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던 와중에 지나의 유일한 친구인

가람에게서 남자친구와의 연애 상담이 들어오고,

지나의 집에 온 가람이 가지고 온

지난 연애의 기록 같던 티켓북에 있는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바탕으로 다즐링 왕자는 임시로 머물

신체 조각들을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들을 꼭 닮은 신체들을 보며

이것들을 결합시켜 만나고 싶어 하는 가람과 달리

자신이 무엇을 주지 않아도

상처도 주지 않고 실체도 없는 그래서 좋았던

언제나 곁에 있는 '세진'의 목소리를

미스터리한 다즐링 행성의 왕자에게

뺏기는 것이 싫었던 지나는

그들의 마지막 작전을 훼방놓기 시작한다.


과연 다즐링 행성의 왕자는 임시로 몸을 만들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지구를 떠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지난 연애를 오래도록 끌어안고 집착하던

가람은 자신이 원하던 과거 남자친구들의 결합체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 과정을 쫓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어떤 의미에서 애정은 망상과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지난 애정의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재 편집되고 기억되며,

이는 망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만남을 전제로 한 사랑하는 감정,

가장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로맨스에 대해

작가는 유난히 '리얼한' '누군가의 경험'이 담긴

애정 얘기 앞에 멈춰 서야 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

이 이야기의 시작을 써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이들에겐 가장 일상적인 사랑을

가장 비일상적이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과거의 연애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던 지나의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바램이

그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그저 상상과 망상으로도

채울 수 있는 '로맨스'적 포인트로 이끌었다.


자신과 비슷한 줄 알았지만 의외로 서로 다른 모습에

친해질 수 있었던 가람과의 관계처럼

연애에 있어서도 지나와 가람은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며

어떤 사랑이 더 나은가? 무엇이 더 옳은가?를

독자들에게 저울질하게 했다.


완벽히 혼자가 된 지나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낀다.

변함없이 자신의 곁을 채워주는 세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런 망상 또한 애정'이라고,

자신이 틀린 것은 아니라며 다시 일상을 되찾는다.


지나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일상적'이라 생각했던

애정이라는 것이 과연 정말 일상적인 게 맞는가?

어쩌면 연애 역시 망상과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로맨스 세상의 범위를 확장하며

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보편적이라 생각했던

애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했던

조금은 난해하지만 실험적이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시선으로 로맨스를 바라보고 싶다면,

〈애정망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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