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 귀남이부터 군무새까지 그 곤란함의 사회사
최태섭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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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 최태섭

여성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82년생 김지영'을 읽는다고 했다가 뭇남성들로부터 조리돌림을 당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무언가가 한참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조남주의 소설은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성적 차별이 없어야 된다는 대의에 동참한다고 믿어왔던 내가 단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누려왔던 많은 특권을 깨닫게 했고, 어머니, 누나, 아내, 딸에게조차 부지불식간에 특정행위를 강요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다는 이유만으로 '꼴페미'로 몰아붙이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국, 남자'는 군대 복무를 벼슬로,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가해자이니 입을 다물라고 하면서도 데이트와 결혼시에는 더치페이를 요구하는 이들, 즉 일하며 돈을 분담하는 여성을 바라면서도 동등하게 일하기 위한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입을 막는 이들의 의식구조가 축적되고 전개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여성을 경쟁자로 두면서 형성된 열등의식이 익명의 남초게시판을 중심으로 왜곡되고, 확대재생산되는 구조를 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많은 남자들에게서 카카오톡으로 '무개념녀', '억울남'들의 사연을 과장되게 담은 게시물 링크가 건네지고 있다.

저자는 "나는 이 남자들을 지배하는 제일의 악덕은 비겁함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덮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피하기 위해 더 나쁜 짓을 하고, 자신을 직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타인을 괴롭히는 비겁함 말이다"라고 분석한다.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지 않고 외국인, 성소수자,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까지 확장해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혐오와 조롱을 아무렇게나 표현하고 무리의 힘을 빌어 의견과 행동을 판단하고, 강요하는 글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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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진실 - 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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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진실' - 헥터 맥도널드

동일한 현상에 대한 정반대의 해석과 주장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현상이지만, 인터넷시대 이전까지는 BBC, 가디언(한국으로 치면 KBS, 한겨레)을 보고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던 시대였다. 그러나 나에게 어두운 바다에서 나아갈 방향을 보여줄 등대는 사라졌지만 곳곳에서 저마다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렌의 요정들은 넘쳐난다. 무엇이 팩트이며 진실인가, 나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하나.

'만들어진 진실'에서 저자는 팩트를 기반으로 한 주장이라하더라도 무엇에 가치를 두고 판단할 것에 따라 '경합하는 진실'이 있음을 간파할 것을 주문한다. "모든 스토리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어떤 팩트를 모아놓고 보더라도 하나 이상의 진실을 끌어낼 수 있다....나는 이것들을 '경합하는 진실'이라 부른다."

팩트에 기반한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처럼 '부분적 진실'이 있고 가족을 위해 행동에 나선다는 것처럼 스스로의 도덕성에 따라 판단되는 '주관적 진실'이, 브랜드나 회사, 화폐처럼 목적에 맞춰 새롭게 만들어지는 '인위적 진실'이, 종교적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처럼 영원히 진실이 발견되지 않는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

저자는 여러 개의 진실이 있다고 혼란해하거나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고 "여러개의 진실이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결과를 아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설명한다. 경합하는 진실 자체는 중립적이지만 이를 선택해 '진실을 가지고 우리를 기만하려는 자들'은 도처에 넘쳐 있다.

이 책은 이들의 수법들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오도하려는(misleading) 이들을 가려내고 어떻게 팩트를 수용하고 어떤 진실을 수용해야 하는지, 이를 위한 나만의 윤리적 기준은 어떻게 마련해나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스토리와 케이스가 넘쳐나 금세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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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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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 김혜진

60대 파견직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에게 딸은 가방끈은 기나 30대에도 시간강사로 전전하며 여자 파트너와 사는 한심하기 그지 없는 존재이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시간강사에서 일방적으로 해고된 동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당국과 투쟁하느라 보증금을 날린 딸(책에서는 본명은 나오지 않고 파트너와 부르는 이름인 '그린'으로만 불린다)이 파트너와 함께 엄마의 유일한 재산인 오래된 2층 집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모녀간의 갈등은 점점 고조된다.

엄마의 소원은 딸이 '남들이 다 그러듯이 번듯한 직업 가진 남자와 결혼해 아이낳고 편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딸은 7년째 동성 파트너 '레인'과 동거중이며 자기 일도 아닌 동료의 문제를 두고 학교랑 맞서 투쟁하느라 제 앞가림할 돈도 벌어오지 못한다. 딸이 투쟁하는 와중에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폭력이 발생하고 딸아이와 동료가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인공이 오래도록 돌봐왔던 요양원의 환자 '젠'은 가난한 이들을 오래도록 교육해온 사회운동가였으나 과거의 기억을 잃어가고 사회의 관심도 사라지면서 무연고 노인으로 어느날 갑자기 허름한 시설로 옮겨지게 된다. 치매에 걸린 노인을 생명을 지닌 존재가 아닌 정부 보조금을 타는 수단으로만 대하는 요양원의 처사에 항의하고 젠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주인공인 엄마도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이 소설은 현재 한국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두루 다루고 있다.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짧은 소설에 젠더간의 갈등,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폭력, 비정규직 문제, 취약한 노인요양 시스템, 치솟는 집값에 밀려나는 취약계층 등의 문제가 다뤄진다. 이야기 전개가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리하게 엄마와 딸을 화해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라며 잠을 청하는 엄마의 내일이 바로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딸과 그의 동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엄마는 더이상 딸의 행동을 나서서 말리거나 언어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수용하는 것, 아니 수용해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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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
정영목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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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퇴직하고 번역가로 사는 일을 검토해봤다. 창작 글쓰기는 재주가 없어 못 할 것 같으니 남의 글을 옮기는 번역은 그래도 해볼만하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셈이었다.

원서를 사서 한 챕터를 읽고 번역을 해보고자 컴퓨터를 붙들고 영어사전 찾기, 구글 검색 등을 동원해 가며 끙끙대다 접고 말았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우리 말을 찾다 보니 '차라리 내가 새로 쓰는 게 낫겠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글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의 문장력과 사고능력이 필수라는 점을 반나절만에 깨달았다. 순수한 독자로서 살아간다면 어줍지 않은 글을 출판하느라 베어질 나무라도 보호할 수 있어 작게나마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며 이내 헛된 꿈을 접었다.

개인적으로 번역가 정영목 선생의 이름은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을 읽으면서부터 기억하게 된 것 같다. 윌리엄 트레버를 처음 알게 된 '비온 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등 선생이 번역한 책들은 어색한 문장에 대한 거부감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정 선생이 번역이 아니라 직접 쓴 이 책의 1부는 그가 소개한 작가들의 작품론과 역자후기를 담고 있다. 필립 로스, 주제 사라마구, 어네스트 헤밍웨이, 존 업다이크, 이창래, 알랭 드 보통, 오스카 와일드, 존 밴빌, 코맥 맥카시, 윌리엄 트레버, 커트 보니것, 블라디미르 나브코브 등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알라딘의 장바구니에 책들이 쌓여버렸다.

2부는 영화, 만화, 드라마, 문학 등에 대한 감상문이나 생활 이야기들로 이전에 발표한 글들이 묶여있다. 잔잔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그 자신의 글은 번역가 이전에 작가로서 정영목의 글쓰기가 얼마나 탄탄한 지를 느끼게 해준다. 번역이 단순한 기능직이 아닌 또 하나의 창작행위이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줄 아닌 이만이 이 어렵고도 지루한 작품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된다. 2부를 읽다 보니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를 탄 소년'이 보고 싶어졌고 미드 '브레이킹 배드'는 넷플릭스에서 찾아 시즌 1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고 있던 새로운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끄는 이 책을 읽고 나니 올 겨울을 즐겁게 나게 해줄 나만의 콘텐츠 선물 리스트가 하나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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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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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차를 타고 다닐 때는 주로 '팟캐스트'를 듣는다. 시작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었다. 오래 전에 업로드가 끝난 이 팟캐스트를 3달여만에 다 듣고 난 뒤 이것저것을 찾아 들어보다 요새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몰아서 듣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의 방송분을 찾아서 듣다가 "영화평론가, 방송인, 작가 등으로 불리는 이동진은 어떻게 책을 읽길래 통찰력도 좋고 설명도 이렇게 잘 할 수 있나"라는 궁금증이 들어 찾아 읽었다.

 

스스로 1만7천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그가 강조한 것은 목적을 위한 읽기가 아닌 자신의 재미를 충족하기 위해 읽고, 깊게 파기보다는 넓게 읽기를 지향하며, 자신이 가는 곳 어디에나 책을 두고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다는 것이었다. 재미를 위해 읽는다는 점에서는 나도 비슷하나, 다양한 분야의 책을 넓게 읽는 것은 내가 실천할 수 없는 지점이다.

 

평일 저녁 일로 갖는 술자리가 많고, 근무시간에 책을 접하기 어려운 나로서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찾아 읽기에도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설가 이승우를 제외하고는 전작읽기를 해본 작가가 없다고 하는데 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절판을 중고로라도 구해서 읽어야 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동시에 다양한 책을 읽는 것도 나로서는 도무지 해낼 요량이 없다. 금세 잊어버리는 기억력 탓에 소설책을 읽다가도 다음날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 앞 부분을 다시 읽어야하는 나로서는 한 권의 책을 다 끝내거나, 중간에 덮어버리지 않는 한 다른 책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어지간해서는 한 번 손에 잡은 책은 끝내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잘 넘어가지 않는 책도 자꾸 붙들고 있는 스스로를 미련하다 싶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랴.

 

책 마지막에 실린 500권의 추천도서 중에는 제목도 들어보지 못한 책이 태반이어서 부족한 나의 책 읽기 수준만 확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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