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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소설은 어렵습니다만 - 살면서 만난 소설적 순간들 ㅣ 저도 어렵습니다만 5
한승혜 지음 / 바틀비 / 2022년 5월
평점 :
가끔 친구들이 '요즘도 소설 읽냐'고 묻는다. 50대 초반을 넘어 중반으로 가는 아재들 가운데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들 대부분이 '소설 마지막으로 읽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소설 읽다 보면 도대체 공감이 안 가서 조금 읽다가 내려놓는다', '소설 읽어 밥이 되냐 돈이 되냐'는 말로 아직도 읽는 책의 8할이 소설을 차지하는 내게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그럴 때마다 '재미있으면 됐지, 책에서 뭔가를 새로 배워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냐'는 말로 짧게 댓거리를 하지만 이내 주제를 돌려보린다. 어쩌다 재미있는 소설 좀 추천해달라는 말에서는 말문이 막히고 만다. 소설의 재미란 뭘까, 어떤 매력이 사람을 끌어들일까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페이스북에서 팔로어로, 칼럼의 애독자로 좋아하는 한승혜 작가의 '저도 소설은 어렵습니다만'의 출간 소식에 반갑게 책장을 펼쳤다.
목차를 펼쳐보니 이 책에 소개된 가해자들(정소현), 음복(강화길), 파친코(김민진), 보내는 이(최은미), 나를 보내지 마(가즈오 이시구로), 최선의 삶(임솔아), 시간의 궤적(백수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앤드루 포터), 너라는 생활(김혜진),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연년세세(황정은)는 이미 읽은 작품들이고 미친 아담 3부작(마거릿 애트우드), 나이트 워치(새라 워터스), 로드(코맥 맥카시)는 책은 사두었지만 아직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작품들이었다. 이 책에서 처음 접하는 작품들도 여럿 있었지만 그래도 절반 가까이는 읽었거나 읽으려고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작가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너무나 궁금했다.
저자는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과거와 추억을 떠올리며 자신과 다시 만나거나 현재의 고통을 견뎌내거나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논리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던 타인의 행동과 말과 돌이킬 때마다 이불킥을 하게 만들거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던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고 대담하게 고백한다. '파친코'를 읽으며 대학에서 만난 재일동포 유학생들의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내면을 돌이켜보고, '연년세세'에서는 내내 불편했던 할머니와의 과거 일화를 떠올리며 그들을 이해해보려 한다. '모래의 여자'을 읽으며 반복적인 일상의 고통을 이겨내보려 애쓰는 자신을 위로한다.
인간의 심리를 명쾌한 논리로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딱딱 들어맞는 사례들과 분명한 해법에 절로 무릎을 치기도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며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라는 공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소설은 읽을 때 등장인물들의 생뚱맞아 보이기도 하고 공감이 되지 않는 말과 행동들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많지만 시간이 지날 때마다 '아 그때 그는 이런 마음이었구나'라며 뒤늦게 가슴을 뭔가가 치고 가기도 한다.
이 책을 덮으며 이제는 누군가 소설을 왜 읽냐고 묻는다면 '나를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답하려고 한다. 조금이나마 덜 후회할 수 있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그리고 2,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지레 눌려 펼쳐보지 못한 '미친 아담'의 1권 '오릭스와 크레이크'를 저자의 강력한 추천에 힘입어 펼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