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에서 죽다
고영범 지음 / 가쎄(GASSE)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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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친구로 알고 지낸 고영범 작가님이 희곡이 아닌 소설을 내셨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했다. 고 작가님은 몇년전 페북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전기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을 번역하신 뒤 아르테 클래식 시리즈인 '레이먼드 카버'를 쓰신 저자로 알게 됐다. 너무나 즐겁게 읽던 고 작가님이 1년여전 돌연 페북을 접으셔서 매우 아쉬워하다가 최근에 다시 재개하신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고 작가님이 페북을 접는 동안 '나는 다시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와 '별빛이 떠난 거리'를 번역하신 것도 모자라 생애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쓰신 걸 알게 돼 3권을 모두 함께 구매했다.


이 소설은 1975년 광복절 아침 새로운 사이클 자전거를 선물받은 국민학교 6학년생 진영이 서교동에서 살다 갑작스럽게 가세가 몰락하면서 낯선 화곡동으로 이사하고 겪어보지 못한 경제적 궁핍과 아버지의 투병, 어머니의 상점운영 등을 겪으며 고통스럽지만 본인을 지켜가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70년생인 나로서는 다소 낯설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우 친숙한 당시의 시대상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복원하고 있다. 또 당시 그 또래 남자아이가 지닐 법한 성인으로 대접받고 싶어 허세를 부리거나 아버지, 친구, 동생과의 비밀을 지키려다 어려움을 자초하는 일들이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함께 극사실적인 묘사로 다뤄진다.


76년 중학교에 입학한 진영이 겪은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과 부당한 대우에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는 상황은 82년에 강원도의 국경 접경지역에서 자라면서 겪은 나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을 하면서도 섬뜩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진영이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주변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꿋꿋하게 자라나길 기원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 시절의 진영을 어른이 된 내가 지금 만나게 된다면 '너의 잘못이 아니다'며 따뜻하게 안아주고(물론 진영은 질겁할 것이겠지만)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맘껏 사주고 싶다. 


그리고 평소 페북에서 보이는 고 작가님의 매우 쿨해 보이는 태도는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작가의 분신인 진영이 어릴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라는 점을 알고 '사람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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