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 그가 구한 것은 동물원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The Earth)’였다!
로렌스 앤서니 지음, 고상숙 옮김 / 뜨인돌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도시 재개발이 이뤄지는 산동네에는  

살림도 제대로 못 챙기고 쫓겨나듯 떠나간 이들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았던 개들이 있었다. 

재개발을 위해 거주지를 철거당한 주민들을  '철거민'이라고 하듯이,  

어느 방송사에서는 그런 개들을 '철거개'라고 불렀다. 

철거개의 존재는 우리의 삶이 '인간'과 '인공'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는 마찬가지로 

도시와 도시민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 속에 

동물원과 동물원의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전쟁은 삶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전쟁이 파괴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상을 가지고 있을까? 

인명 피해나 건축물의 파손, 재산 피해 등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류의 찬란한 문화유적이 파괴되기도 하고, 

도서관의 지적 보고가 처참하게 유린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평시에는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생명체와 멀어져 버린 인간의 삶을  

조금이나마 윤기있게 해주는 역할로 각광받지만

전시에는 도시의 잉여존재에 불과할 동물원의 동물들. 그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단지 동물원의 동물 구조기만은 아니다.  

전쟁이 바그다드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고, 

그들은 전쟁을 어떻게 겪어내고 있었는지 민간인의 신분으로 생생하게 증언한다. 

로렌스 앤서니는 극단적이거나 전투적인 동물보호 운동가는 아니다. 

사람의 목숨과 생존이 경각에 처한 상황에서 

동물을 구조하는 일의 현실적 어려움과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목격한 것은 동물들만의 참상이 아닌 

동물들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인 셈이다.  

 

존경스러운 것은 그가 놀랄 만큼의 행동력과 기민한 판단력으로 

결국 동물권 복구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먹이를 구하고 우리를 청소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동물원 업무였고, 

그가 마지막까지 심혈을 기울인 것은 지속가능한 동물원의 운영 

-그로 인해 지속가능한 동물원 동물들의 삶-이었다.  

실천과 행정이 조화를 이룬 기가 막힌 프로젝트가 아닌가. 

그가 기본적으로 동물원 개념에 찬성하지 않는 야생동물 보호운동가임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 시민을 위한 동물원'이라는 현실적 재건 목표를 설정하고 

미군정과 세계 동물보호단체의 지원을 동시에 이끌어낸 일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점이 많을 듯 싶다. 

 

물론 이 책은 이라크 전쟁의 대의명분이 과연 옳았는가,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가와 같은 질문은 없다. 

동물들의 구조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후세인 정권의 잔혹무도함이랄지

전장에서 만나는 개인들의 행위와 감정이 있을 뿐이다.

아울러 책의 곳곳에는 동물들을 구조하고 먹이는 데에 

도움을 아끼지 않은 미군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동물을 사랑하는 미국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슴이 울컥해졌다. 

그들에게 동물은 보호와 연민의 대상이지만,

언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할지 모르는 이라크의 남녀노소 시민들은 모두 적일 뿐이다. 

 

그저 서로 죽이는 인간들. 

폭격와 파괴의 엄청난 공포 속에서 

동물원의 동물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우리는 과연 '인간'이라고, '인간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p.s. 구조기 자체도 흥미진진하거니와 번역도 매끄러운 편이어서 

단숨에 읽어내려가는 재미가 있다. 다만 관련 자료 사진이 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저자의 사진도, 동물원 사진도 없어서 그게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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