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 내 방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법
김상권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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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낙망하고 낙심하는 이유는 문제가 너무 커서가 아니다. 그대 힘이 너무 나약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대가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내 아빠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기도했는데 응답이 안 될 때, 믿음으로 살려는데 가슴 아픈 일이 생길 때, 그대가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내 아빠로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무 멀리 느껴지는 것이다.

신약에서 말하는 `눈에는 눈으로의 삶`은 형제가 나에게 행한 대로 나도 행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신 대로 나도 행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결론이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운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내가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바로 `눈에는 눈으로의 삶`인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눈의 들보를 빼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보지 못하는 나의 눈에 들어간 들보를 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분의 용서를 헤아리는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고, 어떻게 사랑하셨으며,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셨는지를 다시 헤아리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바로 그 헤아림으로 나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적어도 외식하는 인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주님은 당신을 원하시고, 그래서 늘 함께 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대가 어떤 짓을 하던 주님의 사랑을 덜하게 할 수 없다. 그대가 어떤 헌신을 하던 주님의 사랑을 더하게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대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지금 그대로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덜하거나 더할 재산이 없다. 기억하자, 그것밖에 안 되는 나를 주님은 그래도 원하셨다는 사실을.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무리 그대가 俗되어도 聖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아무리 아픔이 많고 상함이 많아도 그분의 유하시는 은혜로 인해 신기하게도 회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세상을 더러운 곳이나 상종하지 못할 곳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세상과 함께하고 세상을 위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은 목적으로 그대를 만나주시려는 것이다

백부장은 어떤 말씀이라도 괜찮다는 믿음이다. 내가 듣기 불편한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그런 믿음이 아니다. 나의 상황에 꼭 맞는 말씀을 듣고 전율하는 ㄱ런 믿음이 아니다. 예수께서 칭찬하신 `이만한 믿음`은 어떤 밀씀이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나는 살 것이라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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