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려령의 소설은 감칠 맛이 난다. 재미있는 흐름을 타다 다시금 긴장하게 만드는 전개가 기분 좋게 한다. 정치가 진유철과 소설가 하도연의 만남, 그것도 신비한 느낌의 이스탄불 사랑의 시작은 어쩌면 편안함과 아기자기한 소풍놀음인지도 모르겠다. 정희의 등장과 마치는 글에서의 안톤 체호프의 귀여운 여인에 나오는 올렌까로 상징되는 바짝 달라붙는 삶이 진정 사랑의 심호흡을 목도리는 짓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사랑은 혼자 세워 주고 그 독자성과 연대성을 긴장감 있게 유지하는 것이다.
젊은 엄마 비베케와 아들 욘이 하룻밤새 겪었던 일을 소설로 서술하고 있다. 비베케가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청년 톰과 우연찮게 만나 데이트를 하고 욘도 집을 나와 근처 소녀와 만나고 내일이면 맞을 아홉살 생일 전야를 또다른 놀이공원 여자와 만나 그녀가 쫓는 톤을 이유없이 따라갔다. 소년의 막연한 두려움과 비베케의 제대로 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헌배해서 그려지고 있다.
김원영 변호사의 글을 처음 읽었다. 중증장애인이 자신이 당한 존재적 체험을 실격이라 표현했다. 사회는 그리고 성장했던 시간 외부적 현실은 혐오와 배제가 주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주체의 시각으로 나를 세우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변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장애를 수용한다는 것, 장애를 가진 당사자도 존엄한 존재이고 한 사회 속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져야한다는 것을 세세하게 배울 수 있었다.
독특하고 생뚱맞은 그럼에도 재미있는 김금희 소설을 봐왔었다. 이번 소설집은 한편은 차분하게 응시하는 모습을 보게된다. 무엇을 잡을 수 있음에도 세상의 자연스런 흐름이라 생각하고 놓아준다. 그대로 받아주는 것이다. 노숙하고 있는 아버지를, 손자의 돌잔치에 초대받지 못했슴을, 그대로 수용한다. 어쩌면 그것이 소외된 현실을 살아가는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지 않을까 한다.
철학자 김진영의 항암치료 기간을 통과하여 죽음의 목전까지의 기록이다. 아주 간단한 일기부터 약간의 내용이 담긴데까지 마음을 비우고 쓴다. 비타 노바를 자주 외치며 새로운 인생을 염원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정갈한 아침에 피아노 소리처럼 명랑하게 울려퍼짐으로 세상에 유익을 줄 수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