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 짜리 책장
김성민 외 지음 / 글로서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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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은 참 질릴 틈이 없는 게 좋다. 식당에 가면 한 가지 메뉴로만 배를 가득 채워야 하는데 단편집은 뷔페처럼, 혹은 코스요리처럼 질릴 틈 없이 제각기 다른 글들을 맛볼 수 있다. 더군다나 너무나 현실 같아 생생한 소설 이야기와 픽션처럼 이상적인 에세이가 버무려져 있으니, 샌드위치와 커피를 같이 먹는 듯한 편안함까지 들었다. 

신인 작가들의 이야기라지만 작가들 저마다의 글맛도 너무 좋았다. 유명 작가님의 강의를 수강하며 다져진 단단한 기반 위에 세운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이야기들이다 보니 흠잡을 데도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매끄럽게 읽혀나갔다. 300페이지를 넘는 책임에도 전혀 피곤한 감도 들지 않고 그저 '잘 즐겼다.', '잘 쉬었다'라는 기분이 글이 남기는 여운 속에서 떠올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은표 작가님의 [파리, 퍼즐]인데, 빨대로 숨을 쉬는 것처럼 답답하고 머리에 진득한 열이 오르는 현실에서 벗어나 나를 전혀 모르는 타지에서, 낯선 사람들의 낯선 이야기를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빠진 조각을 찾는 이야기가 너무도 좋았다. 고작 글을 읽는 행위만으로도 파리의 분위기와 낯선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기분 속에서 숨통이 확 트이며 바짝 긴장되어 굳어진 몸이 글과 함께 조금씩 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님이 글을 쓰는 플랫폼이 있다면 앞으로도 종종 찾게 될 것 같다. 

이외에 다른 작가님의 글들도 각자의 개성이 빛나 너무 좋았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아낸 주제와 사고방식, 목표들을, 글을 통해서 느끼고 있으면 글을 읽는 나와 9명의 작가님이 도란도란 모여 누군가는 위스키를, 다른 누군가는 칵테일을, 누군가는 오이가 빠진 김밥을, 누군가는 와인을 마시며 각자의 인상 깊었던, 그리고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던 소중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휴일마다 지긋이 읽어내릴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책장한 켠에 꽂 꽂아둔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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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고정진 외 지음 / 글로서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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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 저마다의 글 쓰는 스타일과 글 속 등장인물들의 말투, 세상에 대한 관점 등등 모든 것에서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싶은 놀라움이 생겼다. 작가가 등장인물들과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이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방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것이라는데, 그런 작가들을 한 데 모아놓으니 고요한 방 안에서 읽는 단편소설집임에도 정말 시끌시끌한 토론장처럼 느껴진다.

홀연히 사라진 아부지와 아부지를 찾기 위한 단서로 덩그러니 남은 아부지 차의 이야기.
항상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는 습관 탓에 미각을 잃어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셔벗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
목숨을 걸고 행복에 대한 갈피를 찾는 악마와 청년의 내기.
온라인 소개팅 앱을 만들고 이용하는 과정에서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인연'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사업가의 이야기 등등.

일상적인 소재를 창의적으로 표현한 이야기부터 정말 치밀한 상상력으로 구현한 SF 디스토피아 세계관까지. 딱 '네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다 준비해 봤어'라고 말하는 듯한 소설집이었다.

거칠고 솔직한 이야기들. 그리고 그만큼 '이것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하는 메시지들이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었기에, 책을 읽고 나면 정말 깊이 공감하고 머릿속에 맴도는 글이 하나쯤은 꼭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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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의 법칙 - 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23가지 이야기
모건 하우절 지음, 이수경 옮김 / 서삼독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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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는 책의 이상향, 그리고 책을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지식과 지혜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책이다. 


책은 그 제목처럼,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 허구헌날 나오고 트렌드가 바뀐다 한들 사람들이 모여 만든 사회이고 세상인 이상 변하지 않는 '근본' 원리, 그리고 특성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것들만 툭툭 던져주고 끝나버린다면 이렇게 400페이지까지 나오긴 커녕 4페이지면 충분할 것이다. 대신 이 책은 그 근본 원리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역사의 기록들을 '딱 재밌을 정도로'만 보여주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안내한다. 


꽤나 두터운 책임에도 질릴 틈이 전혀 없다. 분명 카테고리는 [경제경영서적]임에도 심리학에도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고, 현대의 SNS 등 각종 미디어로 인해 생기는 정신없이 빠른 속도감의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도 갖고 있다. 그리고, 책 속에서 '인상적이다'라고 생각되어 메모해두는 문장도 그 어떤 책들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았다. 


나 한 사람이 살아가며 갖게 되는 의문들과 고민거리들, 그리고 머리통이 쪼개질 듯 아플 정도로 스트레스를 주는 온갖 사건사고들과 전 세계에 이르는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써먹을 수 있고, 어떻게든 활용할 수 있는 지혜덩어리다. 이 책은 꼭 집에 소장해놓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책이고, 주변 지인들도 꼭 읽어 주었으면 하는 책이며, 만약 이 책을 정말 재밌고 인상깊게 읽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재미, 유익함 등의 요소를 포함해 정보적으로도 필요한 건 정말 다 갖고 있는, 왜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지 금세 알 수 있는 책. 


최근 영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도 비춰지는 한국의 저출산, 우울증, 분열, 파편화 등의 주제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여러 조사와 생각을 이어가며 글을 쓰고 있는데, 이 책 또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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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로 웹툰 만화 제작하기 - 스테이블 디퓨전·미드저니·챗GPT
김한재 지음 / 성안당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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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챗 GPT를 이용해 아이디어를 얻고, 더욱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번역하는 것을 넘어서 AI를 통한 이미지와 영상 제작, 그리고 오디오 제작에도 높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직접 써보기 전에는 다재다능하고 쓰지 않으면 바보가 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효율의 도구로 느껴졌는데, 직접 공부하고 사용하다 보니 이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라는 게 느껴졌다. 


이미지 제작을 예로 들면, 분명 '퀄리티가 높은 이미지'를 제작하는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문제점은 '내가 바라는 이미지'를 제작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퀄리티가 뛰어난 이미지를 제작한다 한들, 지금 내가 바라고 필요한 이미지가 아닌 다른 형태를 던진다면 아무 소용 없다. 마치 경력이 전혀 없지만 전공 공부만은 완벽하게 해온 신입 사원을 보는 느낌이다. 시킨 일은 정말 잘하는데, 묘하게 내가 일하는 방식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신입사원이 업무에서 '쓸모가 있기' 위해, 어떻게 일을 지시해야 잘 알아먹고 행동할지를 알아내야 한다. 아무리 답답하고 열받더라도, 이 신입사원은 몇 시간씩 걸릴 일을 분 단위로 해치우고 어쨌건 준수함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내는 능력자니까. 


책에서는 스테이블 디퓨전, 미드저니, 니지저니. 총 3개의 AI 툴을 다룬다. 책을 읽고 직접 사용하며 느낀 각 AI 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스테이블 디퓨전은 원하는 퀄리티의 이미지를 제작하기는 어렵지만 숙련된다면 그만큼 정교한 작업을 자유로이 할 수 있고, 미드저니와 니지저니는 초보자도 퀄리티 높은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지만 동일한 캐릭터로 여러 이미지를 제작하기 어렵다던가, 아무리 자세히 명령 프롬프트를 제작해도 일부 누락되거나 말을 잘 알아먹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책은 이런 각기 툴의 장단점들을 보여주며 AI 툴의 명령 프롬프트를 어떤 키워드들을 활용해,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정말 자세히 적혀있다. 마치 사전을 쓰듯이 책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작업을 하며 필요한 페이지를 찾아보며 일하기엔 정말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다만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직접 느껴보기도 한 점으로, 모든 과정을 AI만 활용하면 또 효율이 떨어진다.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복 작업은 AI에게 맡기고, 그 이상의 섬세한 작업은 사람이 하는 게 훨씬 효율이 높다. 마치 빠릿빠릿한 신입사원이 열심히 조사하고 정리한 자료를 통해 경력이 높은 선임이 새로운 기획을 만들고, 강조와 배제를 통해 더 효과적인 작업물로 만들듯이 말이다. 


AI 이미지 제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리고 AI 이미지 제작을 시도해 보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AI 때문에 자신이 희망하는 직종이나 이미 가진 직업이 위태롭다 생각되는 사람이라면 직접 AI 툴들을 공부하고, 직접 사용해 보면서 어떻게 해야 시대의 흐름에 녹아들어 바라는 일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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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예술 : 해석과 감상 - 래퍼 테이크원의 정규 2집 《상업예술》에 대하여
이선화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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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을 하는 친구가 책을 보곤 진짜 명곡이 담긴 앨범이라며 그대로 곧장 1시간 너머 앨범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친구가 힙합 음악들에 관심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 건 처음 봐서 더욱 놀랐다.

책은 테이크원의 <상업예술> 앨범을 만들고 있는 수록곡 하나하나의 가사들을 뜯어보고, 노래하는 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감정에 빠져 있는지 이야기하고 그 하나하나의 트랙들이 듣는 이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지, 해석과 감상을 쓴 작가 본인의 경험에 빗대어 풀어낸다. 


최근 인문학, 철학, 자기 계발, 소설 등의 책들을 꽤 읽었지만 이 책만큼 수많은 메모를 남긴 책은 없었다. 그간 쓴 메모 평균치의 2배 가량이 된 것 같은데 그만큼 삶과 사람에 대해, 그리고 테이크원의 앨범 <상업예술>이 주로 다루는 '사랑'과 '인격적인 성장'에 대해 진리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자신의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자 하는 이상과 그런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을 옭아매는 현실 속 돈의 문제. 그리고 이 둘 모두를 갉아먹는 너무도 사랑하지만, 가난한 예술가로서는 쫓는 것만으로도 폐가 터져버릴 것 같은 연인. 이것만으로도 노래 속 이야기에 빠지기 매력적인데 <상업예술> 앨범 속 트랙 하나하나가 갖는 감정은 행복과 좌절의 스펙트럼의 끝에서 끝까지 너무도 강렬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서평을 쓰면서도 <상업예술> 앨범을 계속 듣고 있었다. 잠시 작업하다가 진이 빠지면, 테이크원의 라이브 무대 영상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감정을 이토록 적나라하게 내걸어낸 이 앨범은 '이게 진짜 예술작품이다'라고 다른 음악들에 호통치는 듯하다. 남들 다 하는 인기 많은 것들만 따라 하는 것들이, 음악을 내고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티끌만큼도 들어가지 못하고 듣는 이에게 노래에 대한 어떤 기억도 남기지 않는. 노래를 만든 이에게 어떤 호기심도 들지 않는 것들이 감히 자신과 같은 음악이라 하는지 묻는 것 같다. 


서평의 끝자락에 이르고 나니 초점이 <상업예술> 앨범과 테이크원에서 이 해석과 감상 책을 쓴 작가님께로 옮겨간다.

나는 과연 우연히 들은 한 음악이 내게 전율을 느끼게 했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글을 쏟아내지 않고는 터져버릴 것처럼 안달이 나서, 몇 날 며칠 동안 글을 주구장창 쓰고 그 글이 음악의 원작자에게까지 인정받고 책까지 출판하게 되는, 이토록 큰 감정과 표현력을 가질 수 있을까. 책을 쓴 '작가 이선화', 글의 소재가 된 앨범 '상업예술', 상업예술을 만든 '테이크원'.

책을 이루고 있는 어느 하나 경외심이 들지 않는 것이 없는 책이다. 


https://blog.naver.com/jisikinn_moon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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