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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이력서 - 기음증, 공기연하증, 성대마비, 배에서 꼬르륵 등 호흡장애에 대한 최초의 이야기
Wooya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줄거리 소개
유년기의 상실과 자기검열이 몸의 호흡으로 굳어진 한 사람이, ‘경직적 호흡 장애’라는 이름 붙이기와 ‘신경발성법’이라는 방법 찾기를 통해 다시 자기 목소리를 회복해 가는 기록.
Review
우리는 언제부터 울지 않게 되었을까.
wooya의 '나의 작은 이력서'는 감정을 틀어막는 습관으로 호흡이 일부 굳어지는 증상을 보인다.
IMF 이후 생존을 위해 바빠진 부모의 빈자리, 사랑하는 존재들의 연쇄적 상실, 그리고 “정색한 표정만이 내 표정의 전부”였던 시절.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알아챈 이후, 그는 거울 앞에서 억지로 웃는 연습을 하며 스스로를 깎아낸다.
이것이 그의 '자기검열'을 통한 습관을 개선하는 버릇이 생겨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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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지나가다가 스치는 내 얼굴을 봤는데 내 표정이 너무 없고, 정색한 표정만이 내 표정의 전부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감정 없는 얼굴을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거울을 보면서 계속 웃는 연습을 했다. (...) 이때가 내가 처음으로 습관을 고쳐보기로 한 첫 걸음마였고, 이게 차후에 내가 습관을 고치는 버릇을 갖게 된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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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자기검열을 통한 깎아냄이 자기 비하로 귀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의 작은 이력서'는 반복되는 자기검열을 부족한 자신이 더 나아지기 위한 훈련으로, 상처를 부정하지 않되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다루는 법을 배운다.
이 책의 흥미로운 부분은 의사도 진단 내리지 못한 병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규정’한 데 있다.
저자는 의사도 진단 내리지 못한 상태를 규정한다. 그는 자신의 증상을 “경직적 호흡 장애”라 명명한다. 이름 붙이기는 통제의 첫 단계다. 명확한 이름이 있어야 비로소 다룰 수 있다. 그런 다음 그는 노래라는 꿈을 매개로 발성·자세·호흡을 다시 점검하며 ‘신경발성법’으로 이 호흡장애를 다루는 길을 찾는다.
여기서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대목은, 호흡장애가 일상에서 어떤 신호로 드러나는가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 증상을 기록한다
- 무의식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가며 굳는 긴장
- 배에서 자주 들리는 ‘꼬르륵’ 장음
- 눈부심, 그리고 ‘눈에 바람이 스치는’ 듯한 예민한 감각
- 잦은 트림과 방귀처럼 반복되는 위장 반응
이 신호들을 그는 ‘이상’으로만 두지 않고, 기록→명명→실험(발성·자세·호흡 교정)으로 전환한다. 즉 증상을 밀어내지 않고 관찰하고, 언어로 붙잡아두고, 몸의 기술로 다루는 방법을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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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깨트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이고 트레이너들은 그저 배우는 사람의 소리가 괜찮은지, 어떤지를 판단하는 것밖에 해줄 수가 없다.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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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에서 보이는 그의 단호함과 의지는, 훈련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유일한 권능인 자기 책임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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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깨달은 것이 있었다. 돈으로 인해서 사람들끼리 다툼도 생기고 서로를 미워하며 싸운다는 것을 말이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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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이력서'는 과거의 곤궁을 신파처럼 미화하지 않는다.
독자는 한 개인의 변형 과정을 따라가며, 상실→자기검열→명명→방법→반복 훈련이라는 성장의 패턴을 읽어낸다.
책의 중반부를 채우는 ‘발성의 구별법/자세/좋은 발성의 조건’ 같은 챕터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파헤치며 성장하는 방법의 체험·요령을 습득할 수 있는 매뉴얼로도 다가온다.
감정의 회복이 기술의 습득과 연관되어 있는데서 특히 유의미하다.
우리는 종종 마음의 문제를 마음으로만 해결하려 한다. 이 책은 반대로, 몸을 바꾸면 마음도 따라온다는 근본적인 이야기를 제시한다.
결국 이 기록은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인생을 통으로 들여다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당신은 어디에서 숨이 막히는가.
사회의 시선인가, 오래된 습관인가, 이름조차 없던 감각인가.
'나의 작은 이력서'의 wooya는 타인의 잣대를 거두고 자기 호흡으로 돌아오는 길을, 작은 이력서처럼 항목별로 남긴다. '나의 작은 이력서'는 소박한 제목처럼 미화된 성공담이 아니라 반복의 기록에 있다.
기술은 꾸준함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목소리는, 배워진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의 호흡은 오늘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이름 붙이고, 방법을 정하고, 매일 작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싶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