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사냥
차인표 지음 / 해결책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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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미 인어를 고아 만든 기름을 마시면 천 년을 무병장수할 수 있다고 한다. 몹쓸 병에 걸려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사람도 인어 기름 몇 방울만 마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거리를 활보할 정도라고 하니 탐내지 않을 이 어디 있으랴.

욕망으로 대변되는 그 기름 앞에 마을 사람들은 순리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저간의 사정도, 나름의 오래 살아야 할 이유도 기름을 탐하는 이상 결국에는 욕망으로 수렴했다. 아아, 예부터 욕망만 좇은 이들은 하나 같이 어떻게 되었던가.

예나 지금이나 인어 기름을 탐하는 이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저자는 시대 배경과 장면을 바꿔가며 은근하게 드러낸다. 통일신라 효소왕 재위 시절과 20세기 초의 모습을 번갈아 드러내며 말이다.

통일신라를 지낸 공랑이 20세기 초 공 영감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 맞으리라. 기실 홀로 살아남은 공랑이 어미 인어의 기름을 홀로 독차지하여 1000년 넘게 삶을 이어왔으리라. 마지막 기름 한 방울을 폐병에 걸린 영실에게 먹여 그 아비인 덕무에게 자그마한 욕망 하나를 심었다. 이 기름을 먹으면 다 죽어가는 딸이 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나온 그것.

한편, 공 영감은 욕망의 얼굴을 대변하고, 어쩌면 욕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어 기름을 먹은 공 영감의 얼굴은, 처음의 그것과 다르게, 극의 후반부에 치달을수록 더더욱 추악하게 변해간다. 욕망도 처음엔 번듯한 모양을 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악독하고 추악한 본모습을 내비치니 공 영감과 다를 게 없었다.

극의 결말, 덕무와 영실이 내린 선택은 위의 질문에 훌륭한 답안이 돼 주었다. 명확한 교훈, 흡인력, 뛰어난 가독성. ‘재밌다’라는 말이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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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트라우마 - 삶의 면역을 기르는 자기 돌봄의 심리학
멕 애럴 지음, 박슬라 옮김, 김현수 감수 / 갤리온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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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작고 일상적인 일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 활력과 열정, 잠재력을 고갈시키는 것 역시 작고 일상적인 일이다.” (p10)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뻐끔뻐끔 줄담배를 피우던 어느 날이었다. 옆에서 나란히 담배를 피우던 친구가 나를 향해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퍼붓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을 만난 게 후회되느냐”,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그 사람을 만나지 않을 거냐등등. 나는 조금 시간을 두고 대답한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뭐라고 말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타임머신처럼 과거의 어느 순간들을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나는 몇 번이고 그 기계를 작동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기계를 사용하고 또 사용하여 전문가처럼 능숙하게 운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지우고 싶은 과거도, 상처받은 순간도 많았던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시간의 힘에 의지해 그저 묻어두었을 뿐이었다. 과연 시간의 힘은 위대했다. 부서지고, 흩날리며 그 크기를 작디작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라지진 않았다.

 

스몰 트라우마는 이처럼 사라지지 않는, 하지만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작은 상처를 말한다. 부서진 돌이 바람이나 날씨의 변화로 커다란 퇴적암이 되듯 작은 상처가 모여 정신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수 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수면 장애, 섭식 장애, 완벽주의, 불안, 가면증후군 등 이 밖에도 무수히 많은 작은 트라우마가 홀로, 때로는 연합하여 나를 완전히 멈춰세울 수 있음을 알고는 정말이지 놀랐달까.

 

한편, 누적된 스몰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AAA 접근법을 제시한다. 인식하고, 수용하고, 행동하는 것. 인식한다는 건 발견한다는 것이고, 행동한다는 건 말 그대로 스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인데 수용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아 헤매던 나에게, 친절한 저자는 어느 시점이 되어 수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수용이란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우여곡절과, 좋고 나쁜 것을 기꺼이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여정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므로 수용은 절대로 체념과 같지 않다.” (p52)

 

저자가 제시하는 스몰 트라우마 해결책에 따라, 특히나 나를 옥죄는 불안과 완벽주의, 그리고 수면 장애 편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수면 효율 수면 제한 수면 조정으로 이어지는 수면 장애 해결책과 부정적 사고 패턴에서 벗어나게 하는 ASK 질문법은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지 치료와 접목해 활용할 수 있어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츨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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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허먼 멜빌 지음, 박경서 옮김 / 새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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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바틀비 #도서협찬

1. 필경사 바틀비

필경사란 문서를 베껴 쓰는 일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말 그대로 쓰고 또 쓰는 지루한 노동의 연속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변호사인 '나'는 처리할 서류가 늘어나면서 필경사 한 명을 더 고용했다. 예상했겠지만, 그 신입이 바로 바틀비였다. 그는 어느 사무실 직원보다 성실했고, 끈기있게 맡은 업무를 이행해 간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부득이하게 그에게 자잘한 업무 하나를 부탁한다. 그때부터였다. 어떤 지시에도 그가 안 하는 편이 더 좋겠다고 이야기한 게.

안 하는 편이 좋겠다고 반복해서 되뇌던 그가 맞이한 결말. 그건 예상치 못한 파멸이었다. 파멸보다 더한 파멸적인 단어가 존재했더라면 나는 그 단어를 쓰고 싶을 정도. 어째서 그가 안 하는 걸 택했는지 그저 어림짐작해 볼 따름이다. 그는 꺼져가는 촛농, 아니 어쩌면 다시는 불이 붙지 않을 초와 같지 않았을까. 그는 여기(사무실)에 오기 전부터 이미 희망, 행복, 믿음 등을 인생에서 지워 버린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명확한 교훈 앞에 독자인 나는 이렇게 외친다.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

2. 꼬끼오! 혹은 고결한 베네벤타노의 노래

들어보시오! 경쾌하게 울어 젖히는 수탉의 소리를 들었다.

지독한 빚에 시달리던 '나'는 그 소리의 출처를 찾아 한 번 두 번, 그렇게 귀를 쫑긋 세웠다. 내 피를 끓게 만드는, 예사롭지 않은 울음소리를 지닌 녀석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녀석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궁금해진 '나'는, 녀석을 찾아 마을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아! 힘을 솟아오르게 하는 녀석의 울음소리. 그 소리에 의기양양해진 나는, 수시로 찾아와 독촉하는 빚쟁이를, 평소라면 주눅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테지만, 호기롭게 끌어내 쫓아버렸다. 다시 그 수탉을 찾아 길을 나섰고, 어느 부유한 신사의 집에 그 녀석이 있을 거라 짐작해 찾아갔다. 하지만 그의 집에서 본 닭들은, 소유주와 너무도 비슷하게, 뚱뚱했고 누런 색을 띤 생명체에 불과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장작을 패러 오는 한 인물에게 빚을 갚고자 그의 오두막집을 찾아간다. 거기서 우연히 발견한 그 녀석. 가난하지만 조용하고 예의 바르며 근엄했던 제 주인을 닮아 고귀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아, 어쩌면 그것은 제 주인의 인품과 성격을 그대로 내비치는 매개물일지도 모르겠다. 고상한 성품은 부와 지위, 어떠한 아름다움에서도 나오지 않음을, 이따금 그런 성품을 지닌 이를 만나 자신 역시도 고결함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saeumbooks 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세계문학 #허먼멜빌 #단편소설 #새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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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일기 - 시간 죽이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2
송승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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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오늘 얼마만큼의 시간을 죽였던가.

구글에 '시간 죽이기'라고 검색하면 wasting time 즉, 시간 허비라는 말로 그 의미를 대변한다. 하지만 '죽이다'라는 말 속에는 마음이나 의식 속에 남아 있지 않도록 잊다라는 의미도 녹아 있다는 사실. 결국 '시간 죽이기'란 시간을 잊고, 나를 잊는 무아경에 이른다는 의미를 내포하는지도 모르겠다.

2. 나는 무언가의 오덕후이자 마니아이고 싶었다.

어느 분야에든 열정과 흥미를 지닌 이들은 주변에 강렬한 열기를 내비치는 듯하다. 이따금 남이 보기에 무용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향한 그들의 크고 작은 노력과 집착은 이내 무용한 것을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바꾸곤 한다. 그리고 내 마음에까지 불씨를 지핀다. 자신이 빠져 있는 그것에 새로이 의미를 더하여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실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샤먼킹을 보고 죽음의 핵심을 속속들이 짚거나 투르 드 프랑스를 즐겨보며 도핑 문제를 논하는 저자에게 흠뻑 빠졌다고나 할까. 아아,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시간을 죽이고, 누군가를 위한 덕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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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세계 - 미국의 100개 팩트로 보는 새로운 부의 질서와 기회
스콧 갤러웨이 지음, 이상미 옮김 / 리더스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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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크고 튼튼하다 자부한 미국이라는 선박이 지금, 바다 한가운데 어딘가에서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습니다. 이기주의, 정치 갈등, 부패라는 위기의 파도에 휩쓸려 수많은 암초를 만난 까닭인데요. 이러한 미국의 슬픈 현실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 세계 모두가 비슷한 위기에 직면한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걸까요?

1. 미국이 마주한 수많은 암초 가운데 하나는, 세금 감면에서 비롯된 부의 고착화입니다. 세금 감면은 개인과 기업이 빠르게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정작 부를 축적하는 대상은 전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거대 기업에 한합니다. 일례로, 아일랜드의 법인세는 한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세금 감면을 원동력 삼아 연 평균 7퍼센트 성장을 구가하는 '켈틱의 호랑이' 아일랜드에서 정작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외치는 국민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는 애플 같은 거대 기업이 아일랜드의 감면 정책을 적극 활용해 겉으로 보이는 성장률 수치만 올렸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감면 혜택을 오로지 거대 기업만이 누릴 때, 부는 재투자되지 않고 다른 대상과 격차만 벌릴 따름입니다. 이에 저자는 일회성 부유세를 주장하며 부유한 가구나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2. 미국이 만난 두 번째 암초는, 소셜 미디어 회사의 성장이 촉발한 여러 사회 문제입니다. 소셜 미디어는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는데요. 소셜 미디어 사이트가 실제로 검열하는 건 오로지 '우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사회적 관심사나 통합, 행복은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외려 많은 이들을 분노와 선정성으로 점철된 콘텐츠로 유혹하며 끊임없이 미디어에 노출되도록 하지요. 그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곳에서 그들은 막대한 광고 수입을 벌어들입니다. 물리적 제약 없이 다양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무색하게, 소셜 미디어는 분노와 분열을 유발하고, 직접 대면이라는 상호 작용 빈도를 줄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독과 불안, 우울을 울부짖는 데 소셜 미디어 회사의 책임이 없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3. 미국이 만난 또다른 암초는,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진정 도움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나 정작 많은 사람들의 실질소득은 제자리걸음입니다. 게다가 대학등록금과 청년 평균소득의 갭은 더욱이 커져만 가고, 부모 세대에 비해 청년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되레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 캥거루족과 은둔형 외톨이 청년이 매년 늘고 있는 건 마냥 묵과할 수 없는 문제겠지요. 이를 두고 일부 사람들은 "요즘 청년들은 근성이 부족하다", "편한 것만 좇으려 한다"라고 비판합니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고려치 않고 자기 세대와 경험에 비추어 쉬이 비판만 늘어놓는 건 왠지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왜 청년들이 분노를 늘어놓는지, 무엇이 청년을 구석으로 몰아세웠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미국이 마주한 지금의 수많은 위기가 외려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주창합니다. 그리고 위기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걸 지향 또 지향합니다. 하지만 정작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기회를 찾아 큰 성장을 거둔 금융 및 기술 회사, 특히 빅테크 기업에는 매우 회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이 시장을 선점하여 큰 혜택을 누리되 되레 수많은 사회 문제를 초래한다는 사실과 그들에게 어느 정도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수긍합니다만, 저자의 분노가 일방적으로 이 같은 기업과 ceo들에게 쏠리는 건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한다는 나름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듯 보였습니다.

@woongjin_readers 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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