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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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무는 시대,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


이상한 '그'들이 건네는 이야기에 나는 그만 멀거니 눈만 끔뻑일 따름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행동, 사회가 만들어내고 은연중에 자리한 나의 편협한 상식으로는 도통 그들을,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버거웠다. 우유에 피를 섞어 마치 삼국지의 세 장수가 그러하듯 도원결의의 상징 삼아 핑크빛 액체를 들어마시는 두 여자가 있었고, 그들은 이내 죽음을 향한 호기심에, 자신이 죽은 뒤 남은 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지레 그려보며 몸을 맡기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한 명은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긴다. 두 사람이 나눠마신 피 우유, 그러니까 핑크빛 그것은 분홍이라는 색에 지닌 여성스러움이나 설렘이라는 무조건 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생각을 뒤집어 끈적끈적하고, 불길함을 띠는 요소로 둔갑했다. 색에 지닌 편견을 깨부수고 인간을 이해하는데 안성맞춤이 되는 기준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아뿔싸, 이상한 사람들은 고작 두 여자로 그치지 않았다. 배 속에 들어선 아이를 유산하고 일상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그 기억이 잊혀질 거라는, 쉽게 말하고 함부로 뗘들어대는 주변에 비하면 그녀는 꽤나 정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내 눈에 밟힌 건 사산한 아이의 몸 조각조각을 환영으로 보고, 어느 순간 수족관에서 문어가 자기 촉수를 하나하나 뜯어먹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모습이다. "부서진 몸을 먹어치우고 세포 하나하나를 소화시킨 뒤 새로운 시작을 맛보아야 한다"는 그녀의 독백처럼 그녀 나름대로 아이를 유산한 슬픔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겠다.


힘의 방향은 여전히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흐르는 걸까

남편과는 별거 중이며, 딸의 경멸을 사는 여자가 있다. 그녀를 향한 딸의 그것은 보편같은 경멸과는 결이 사뭇 달랐다. 이는 그녀가 벌인 일과 관련이 있었다. 남편이 아닌 남자를 만났고, 그와 잠자리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그녀였다. 이에 남편은 그녀를 바람 핀 여자로 비하하고, 딸은 더이상 어머니를 예전처럼 대하지 않는다. 딸이 어머니를 그렇게 대한 건 바람을 피워서가 아닌 더이상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답답한 모습 때문이었다. 만약 반대의 경우라면, 그러니까 남편이 아내와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다면 쥐 죽은듯 조용히 사는 그녀와는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까. 작금의 시대에서 어디까지가 바람이고, 그것을 누가 행하는지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달라지는 걸까.

이해되지 않는 일을 억지로 이해해보겠다며 발버둥 칠 필요는 없지만 그런 일을 마주했을 때 한 번쯤은 이해해보려는 시도가 생각의 저변을 확대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처럼 작품성 짙은 문학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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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para Writing Passion Lv.3 Parapara Writing Passion 3
변선호 지음 / 마치모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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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집은 어순으로 짓습니다."

영어가 입에 익는 모습을 꿈꿔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상상하고 있죠. 그 꿈에 한 발짝 다가서고자 노력을 게을리하진 않았습니다. 외려 전공한 일본어만큼 많은 수고를 들였습니다.

쉐도우 리딩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문장을 덩어리째 외우기도 했지요. 원어민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받아쓰고, 따라 읽기도 했습니다. 재미는 없어도 맺을 결실을 기약하며 꾸역꾸역, 그렇게 하루 치 분량을 겨우내 완수하곤 했습니다. 기실 성과도 있었습니다. 공인 영어 능력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거두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영어가 입에 붙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그때 이 책을 만났습니다. 책에서 요하는 커리큘럼을 따라 아주 작은 수고를 들였을 뿐인데 어순이 자연스레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억지로 쉐도우 리딩을 하겠다고 진을 빼지 않아도 음성 파일을 따라 문장이 입 밖으로 술술 새어 나오더군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표현을 완벽하게 익힌다고 하여 제 꿈에 완전히 다다르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이 책을 읽어내려갈 생각입니다.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고, 영어 어순에 익숙해지리라 확신을 받았거든요.

영어 공부,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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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디어리스
권오경 지음, 김지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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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욕망을 부추긴다.
욕망이 향하는 곳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쌓아올린 그것을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결핍을 인정하고 자신을 갈고닦아
나를, 주변을, 채운다. 행복에 가까운 것으로.
어느덧 결핍이 자리한 곳은 더 이상 결핍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결핍이 불러일으킨 욕망이 이로운 방향으로 향할 때,
그 모습이란 자기 발전이라는 비슷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반대로 흘러갈 때,
욕망이 만들어내는 그것은 저마다 사뭇 다르다.

괴물을 빚어내고,
집착으로 변모하고,
광신을 낳는다.
나와 주변을 모두 불행으로 물들인다.

여기 등장인물들이 보인 욕망의 형태는
어둡고, 섬뜩했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한 피비와
구원과도 같은 신앙을 저버리고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으려는 윌

그들 모두,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어떠한 결핍을 마음속에 지닌 채
남들처럼,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한다.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그 둘은 우연한 만남 한 번에 서로에게 이끌리는데
아마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한 자신의 결핍을
상대는 어렵지 않게 들여다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들 모두
서서히, 그리고 은연중에
자신을 괴롭혀 온
결핍의 존재를 인지한다.
이때부터 그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어머니의 부재가 낳은 결핍과 사이비 교주 존 릴과의 만남이 더해져
피비는 그가 이끄는 기독교 기반 사이비 종교 모임인 ‘제자’에 가입한다.
그 모임에서 그녀는 어머니를 여윈 자신의 결핍을 점점 더 선명하게 확인해가고,
그럴수록 남자친구인 윌에게 의지하는 대신
존 릴과 어울리는 빈도를 높인다.
그녀가 자신의 통제에서 점차 벗어나자 분노와 질투에 휩싸인 윌은
그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집착으로 바꾸며
둘의 관계를 구렁텅이에 빠뜨린다.

신앙이 자리한 곳을 피비로 채우려는 윌과 그럴수록 제자에 깊숙이 스며드는 피비의 모습이 날이 갈수록 극명하게 드러나며 둘은 어쩌면 상반된 선택을 내리는 듯 보였다.

끝끝내 피비를 포기하지 못하는 윌과
테러를 자행하는 피비.

어쩌면 인간은 자신의 결핍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데 애를 먹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결핍이 자리한 곳을 욕망으로 채우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 그 욕망이라 함은 너무도 다양한 모습을 띠어 예측을 벗어나기에 인간을 이해하는 게 더욱 힘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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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어둠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 / 모모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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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감과 아쉬움이 입에서 새어나온 한숨에 뒤엉긴다.

수록된 단편 모두 두 감정 사이를 오고가며 단편집의 균형을 맞춘다.

정작 표제인 열린 어둠은 자못 실망스럽다.

살해 동기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건 물론

선생인 마사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살인의 전모를 밝히는 과정은 억지스럽기 그지없다.

책의 제목이자 마지막 순서에 실린 이 단편은

그렇게 나의 기대감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편집의 묘미는 수록된 단편 가운데 하나라도

자신의 눈을 사로잡을 때 느낄 수 있다.

그 단편이 주는 재미와 반전에 놀라고, 인물 간의 감정선에 흠뻑 빠지다보면

책을 향한 인상이 완전히 뒤바뀐다.

 

그렇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이중생활

열린 어둠이 피운 아쉬움의 연기를 끝끝내 지워내고 만족감의 불씨를 새로이 피워냈다.

사랑이 자리한 곳에 증오라고 할 수밖에 없는 어두운 감정만이 남아

두 사람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지만

되레 상대를 향한 증오 덕에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감정 역시 사랑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까?

 

한편, '이중생활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누군가를 배신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자

다른 이들을 끌어들인다.

슈헤이에서 비롯된 삼각관계로

다른 두 사람은 괴로움이 절정에 달하고,

각자 상식에서 벗어난, 끔찍하고, 예상치 못한 일을 저지른다.

내가 느낀 괴로움을 상대에게 전가하고자

저지르는 모든 일들이 너무도 섬뜩했다.

 

누군가를 향한 악의는 머지않아 살의로 이어질 수 있다.

살인의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악의를 품은 대상이 바라는 건 상대가 자기 이상으로

괴로움을 느끼길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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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환대
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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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리고 우리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끊어지거나 헤어지는 걸 두고 상실이라고 말한다.

상실을 경험한 누군가는 우리에서 혼자가 되고,

같은 고통과 슬픔을 겪은 이들이 모여

다시 우리를 이루기도 한다.

 

우리가 우리일 때, 삶은 흘러간다.

그리고 그 우리는 끈끈하고, 결속력이 강해

어떠한 풍파에도 쉬이 깨질 수 없다.

분명 나는 그렇게 믿었다.

 

상실이 주는 아픔과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에 파묻혀

혼자서 기나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삶은 흐르지 않고 정체된다고 믿었다.

내 안에서 우리의 인상은 그만큼 강렬했고,

그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랬다.

 

소설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들여다보고,

경험한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나는, 이 소설에서,

공동의 상실이 같은 상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상실을 겪고 홀로 남은 누군가가

다시 우리가 되고자 애쓰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몇 번이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였던 시절을 지우진 못했다.

함께 본 아름다운 풍경도 혼자일 땐 평범했고,

함께 나눈 기억을 없던 것으로 돌릴 수 없었다.

 

우리에서 혼자가, 혼자에서 다시 우리가 되었지만

다시금 우리가 되었을 때, 이전과 같을 의미일 수 없었다.

 

같은 계절을 보낸 우리,

그 계절을 함께 보낸 것을 분명히 기억하는 우리

어느덧 다른 계절을 맞이하고,

멀찍이 떨어지게 되었다.

누군가는 멀어진 거리를 새로운 우리로 채우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홀로 남아 우리였던 기억으로

삶을 이어간다.

 

삶이 계속되는 한 상실은 여러 번 우리를 찾아와

물을 것이다.

우리였던 것과 새로운 우리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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