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게임 - 포춘 500대 기업의 협상교과서
체스터 L. 캐러스 지음, 김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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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와 부동산 등의 재테크, 세제관련 노하우 등 직장인들이 사석에서 업무를 제외하고 나누는 이야기는 주로 돈에 관련된 것이다. 아니 어떤 면으로는 업무보다도 돈에 대한 지식 공유가 이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이런 관심은 결국 연봉과 직결된다. 자신이 얼마를 받고 있으며 그것이 동종업계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인가, 하는 의문은 예사로 연봉협상제가 정착된 기업에서는 바로 옆자리 동기와의 연봉 차이를 숨기거나 캐내려는 눈치가 그리 특이할 것 없는 현상이 되었다. 이유인 즉 베블렌이 말한 ‘지위 이론’이 연봉을 기준으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리 밝히자면 이 글에선 <협상게임>(21세기북스. 2007)이라는 신간에 대한 내용을 담고자 한다. 그런데 왜 서두를 연봉과 지위 이론을 들먹이며 시작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현상게임이 거창하고 공식적인 테이블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이 말하는 것은 협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흔히들 ‘연봉 협상제’라는 단어를 익히 사용하고 있으니 연봉과 협상의 밀접함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문제이다. 헌데 우리는 이 단어 조합의 익숙함과는 달리 협상의 실체를 인식하고 있지 못한다.

국내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일부 IT관련 벤처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등을 제외하고는 연봉협상제가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말이 연봉 협상이지 연공서열에 익숙한 기업문화는 이 협상의 과정에 과거 급여제의 기준을 둔다. 즉 전년도 프로젝트 참여시간이나 근무기간을 반영하는 등의 구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평가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비슷한 근무기간을 가진 이들이 같은 직급과 십만 원단위까지 같은 연봉을 얻는 결과를 보여준다. 자신이 직접 능력에 맞은 연봉 자체를 제시하시 못하는 현실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협상의 요점이 숨어있다. 업계 평균의 연봉을 받는 직종, 직급의 인사가 대부분 이를 보편적 기준으로 삼기에 협상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자신의 몸값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과 그 액수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연봉 협상’이라는 단어를 익숙한 개념으로 받아들이면서 실제로 자신은 협상테이블에 앉지도 못하는 흔한 현상이다.

결국 이런 문제는 협상의 메커니즘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 책의 저자가 <협상게임>이라는 자신의 저서를 ‘현대의 분석적 사고방식을 협상의 실제와 결합한 최초의 책’이라 평한 이유도 이것에 있다. 저자는 협상가로서 자신의 실제 경험을 도태로 곳곳에서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이 간과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인식하고 행하지만 종종 발생하는 오류를 수정하고자 한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대표적인 협상게임은 앞서 언급한 연봉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오류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대표적으로 우리가 협상 임할 때 상식처럼 여기는 힘의 논리에 따른 성과 예측이 그것이다. 당신이 계약을 위해 협상테이블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계약은 유형의 생산품일 수도 무형의 기술일 수도 있다. 우선 이 계약에는 돈을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다. 구매나 도급이 갑이고 판매나 하도급이 을로 엄연한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또는 앞서 자본에 의한 힘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협상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라고 해도 그 협상에 유용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쪽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빈번하다. 자본이나 정보 등  힘을 기진 쪽이 협상에서 우위에 있을 수는 있지만 결과적인 이득은 그 우위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위를 선점한 쪽이 무지하고 동기부여가 된(보다 의지가 강한) 쪽에 관용을 베풀어 실제적 이득은 역전되는 경우가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와 같은 협상의 실체를 분석한 후, 이것을 응용할 개념적인 근거와 구체적 방안이 소개된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분석과 응용이 특정한 직업군에 한정되고 미국을 무대로 하기에 국내 실정과 다소 맞지 않는 다는 점이다.―전자의 단점은 그 직군의 독자에게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분석적 사고를 기반으로 엮인 책이기에 글의 흐름이 버거울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쉬운 현상이 개념화되면서 어려워지고 있다.

이렇게 독자에 따라 이 책에 대한 판단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현재 기업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협상에 대해서 어려움을 느낀다거나 자본과 정보, 지위에 따른 힘의 논리로 움직이는 협상테이블의 세상에서 유능한 협상가가 되고자 고민하는 독자라면 얼마간 의미가 있는 책이 될 것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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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한다
카르멘 포사다스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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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어느 요리사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비밀. 천장에 숨어 작은 구멍을 뚫고 얻은 닌자의 비밀처럼 의도적으로 엿들은 것도 아니고, 그것을 남들에게 공공연하게 떠벌리지도 않았지만 비밀의 당사자들에게 그는 명백한 위험요소이다.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이 요리사는 비열한 인간으로 비춰진다. 그의 멋들어진 콧수염은 볼썽사나운 치장이고 표정 없는 시선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거슬린다.

<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 한다>(웅진지식하우스. 2007)는 제목에 언급된 ‘모두’의 비밀을 알고 있는 출장전문요리사 네스터의 죽음을 파헤치는 추리소설이다. 모두가 그들 죽이고 싶어 하고, 그는 죽었다. 하지만 이 죽음의 정확한 진상은 소설의 끝에 가서야 밝혀진다.

추리소설이기에 이 책의 기본적인 즐거움은 살인자와 그 동기를 알아내는데 있지만 ‘비밀’이라는 소재로 인해 단순한 사건과 사고의 틀을 벗어나는 색다른 맛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네스터에게 비밀을 들킨 자들과 그것을 궁금해 하는 자의 심리이다.

남의 귀에 들어간다면 창피 당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생의 파멸을 야기할 만한 비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비밀을 가진 자라면 그것을 꽁꽁 숨겨놓고 노심초사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들, 섬뜩한 치부를 가진 이들은 되레 그 비밀이 탄로 나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와 같은 심정에서였을까. 아니면 만천하에 치부가 드러나 고립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다 지쳤기 때문일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비밀을 알고 있는 네스터로 인해 자신이 판 함정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어둡고 추한 과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사회에서 성공해 부와 명예를 쥐고 있는 그들을 순간순간 나약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요인이다. 때문에 그것은 단순히 불안함에 그치지 않고 자신감 넘치는 인생을 좀먹기 시작한다. 이때, 그 곪다 못해 썩어가는 비밀을 한 남자에게 들킴으로써 그를 제거 하겠다는 단순하고 열정적인 목표에 몰두하게 되고 이전의 나약한 모습은 간데온데없어진다.

결말이 정해지고 일련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아귀가 맞는 구성의 추리소설의 경우 종종 터무니없는 반전으로 독자를 실망시키곤 한다. <모두가 네스터를 죽이고 싶어 한다> 역시 그러한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문제는 그 연결고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이다. 소설은 상상력의 발현이기에 자유롭지만 항상 독자의 수긍을 얻어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조심스럽게 판단컨대 이 소설은 독자의 설득력을 얻기에 충분하리라 본다. 더불어 비밀을 지닌 채, 혹은 베일에 싸인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지닌 채 살아가는 ‘모두’의 모습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비밀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로 인해 ‘난 궁금한 건 못 참아. 절대 비밀 지킬게 나한테만 말해줘’라며 누군가를 조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비밀을 알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이건 절대 비밀인데, 꼭 너만 알아야 돼’하며 속삭이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이 소설의 중요한 비밀을 밝히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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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김씨의 나무 작업실
김진송 지음 / 시골생활(도솔)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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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철근과 콘크리트가 만난 살풍경한 성냥갑 속에 살고 있지만 어린 시절엔 흙냄새, 나무냄새가 물씬 풍기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TV를 틀면 하루 종일 만화가 나오는 채널이나 현란한 컴퓨터 게임이 없었던 그때, 개구쟁이들의 즐거운 놀이중 하나가 새총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 시절 새총은 단순히 새를 잡기 위한 도구가 아닌 소년의 자존심이었다.― 사실 이 새총으로 새를 잡는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잘 만들어진 새총을 가지기 위해 미묘한 경쟁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좋은 새총을 가지기 위한 조건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솜씨 좋은 아버지 밑의 아이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솜씨 좋은 아버지는 곧 솜씨 좋은 목수인 까닭이다.

물론 새총을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다고 해서 그 시절 아버지를 목수라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명절에 산소를 찾을 때마다 주변에 당신이 심었다는 나무 이름을 줄줄이 꿰고 나무라기보단 식물줄기에 가까운 개나리나무로 멋진 새총을 만들어주던 아버지는 나무의 품성을 아는 어른이자 목수임에 틀림이 없다.

이 책 <목수 김씨의 나무작업실>(시골생활. 2007)은 바로 그런 목수의 이야기이다. 목물, 곧 나무의 품성을 깨우쳐가는 목수 김진송. 그는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린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이전에 나무를 배운다.

흔히 목수라 하면 장인정신을 떠올리고 그것은 그네들의 고된 작업으로 탄생한 창조물로 귀결된다.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찍어내는 기성품은 흉내 낼 수 없는 유일무이한 목수의 흔적. 때문에 목수의 손을 거친 나무는 작품이라 불리고 세월의 흔적까지 더해져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가치 있는 물건을 빼어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목수를 말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올곧은 기개를 상징하는 소나무에서부터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나무. 이들은 나무라는 명칭으로 묶여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마다 성질이 다르다. 책상이나 의자를 만들어두면 평생을 써도 끄떡없는 나무가 있는가하면 힘없는 대패질에도 바스러지거나 뒤틀려 있어 도저히 쓸 수 없는 나무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베는 시기와 관리상태에 따라 같은 나무라도 판이한 성격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는 이렇게 개성이 강한 나무를 만나게 된 인연에서부터 각각의 성격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나무를 만지고 사는 인생을 말한다. 편리한 기계를 사용한다면 십수분만에 끝날 일에 하루를 바치기도 하고 서투른 욕심에 질 좋은 나무를 망치기도 하며 작가는 나무를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수많은 종류에 따라 품성이 다른 나무 이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고정된 진리란 없을 것이다. 또한, 단 한번으로 인생의 해답이 뚝딱 나오는 깨달음도 없을 것이다. 익히 그 성질을 알고 있어 익숙한 대패질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만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지는 나무처럼 말이다.

어쩌면 목수라는 업은 이렇게 변덕스러워 정답이 없는 나무의 비위를 맞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날이 변화하는 혼란스러운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 정답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에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비위를 맞추는 일은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수틀린다고 해서 토라져 이내 외면한다면 그것은 시도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하지만 그 고단한 길을 가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그 빈자리를 멀리보이는 장애물에도 몸을 사라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름모를 나무를 만나면 대패부터 잡고 보는 목수, 굳이 고된 노동을 자처하는 목수, 실패의 원인을 나무나 연장이 아닌 자신에게 돌리는 목수. 목수 김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차분해지고 숙연해지는 이유는 공장에서 찍어낸 반듯한 가짜 나무에 익숙한 게으른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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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사랑 - 다섯 영혼의 몽환적 사랑 이야기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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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문학의 한 장르인데, 그 안에 또 장르라니?

이것은 무식의 소치인가? 물론 문학, 그것도 소설이라는 한 장르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다루고 있는 주제, 발표 시기 등 여러 구분으로 가지 쳐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앞서 말한 장르문학. 요즘의 그것은 단순히 순수와 통속, 영미, 일본, 남미 등의 세계와 한국 등과 같은 명백한 구분이 아니다. 어느 한 범주에 속하지 않지만 특정한 미각에 몰두하고 있는 것. 요즘의 장르문학은 그런 외곬으로 고집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새빨간 사랑>(노블마인. 2007)은 그런 의미에서 온전한 장르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연애소설, 공포소설 등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것 참 난감하다. 앞서 장르문학에 대한 열변을 토해 놓고, 이 소설을 그 범주 안에 구속시키고 나서 단정 지을 수 없다니. 말에 어폐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을 포함한 것이 요즘의 장르문학이 아닌가 싶다.

최대한 단순히 감상을 정리해 몇 키워드로 이 소설을 규정짓자면, 글의 재료가 되는 소재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죽음, 성(sex), 공포, 원시적인 욕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만드는 감성.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이런 단어의 나열로 그 성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 모든 단편이 <미스테리즈!>(도쿄소겐샤)에 실린 것이라고 하니 어림잡아 특정한 독자를 위한 소설이라 단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시체에 성욕을 느끼는 자가 등장하고(영혼을 찍는 사진사), 고교괴담에 실릴 법한, 보이지 않지만 존재감 있는 유령이 등장하는가하면(유령소녀 주리), 앞서의 비정상적 성욕을 다룬 <영혼을 찍는 사진사>와 귀신의 존재를 다룬 <유령소녀 주리>가 섞인 듯한 단편(레이니 엘렌)이 등장한다. 뒤를 이은 네 번째 단편은 첫 단편을 읽으며 단련된 비도덕적 시각을 비웃듯 더욱 심화된 변태적 성욕을 다룬 <내 이름은 프랜시스>이다. 대망의 마지막? <언젠가 고요의 바다>는 앞서의 단편에서 느낄 수 있는 거부감이 스트레이트라면 5번째 단편은 그것을 희석시킨 칵테일 같은 느낌이다.

분명 이 소설은 뜨거운 감자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점잖은 감성을 뒤집는 감성을 단순히 포장으로, 그리하여 자극적 소재로 관심의 파도에 편승한 글로 치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도덕적 판단으로 이런 소재가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로 읽히는 현실을 개탄하는 독자가 꽤 되리라 판단된다. 솔직히 말해 나 역시 그 중에 한 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옮긴이의 조심스러운 후기를 보자. 역자 이규원은 이 단편들의 작가, 슈카와 미나토의 다른 대표작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작가의 소설이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그 수명을 다하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만은 아님을 말하고자 함일 것이다. 또한, 도덕적 판단, 즉 옳고 그름의 잣대를 내려놓으면 새로운 감각을 즐길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흑백의 구분이 모호한 시대가 아닌가.

평범한 일상이라도 이야기가 되는 것은 분명 소설의 괄목할만한 매력이다. 때문에 자극적인 소재는 되레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예술과 외설의 끝없는 전투가 승자는 없이 상흔만 남기듯, 이러한 가치판단은 허무한 뒷수습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새빨간 사랑>이다. 이 제목은 나눠보자면 ‘새빨갛다’와 ‘사랑’이라는 두 단어로 나뉜다. 판단컨대 ‘새빨간’이란 소재에 대한 대변일 테고, 사랑이라는 것은 추해서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 것이 인간의 욕망이고 그 욕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사랑’이라는 말 아닐까?

즐기고 아니고의 차이가 독자 개개의 판단에 달려있음이 분명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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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10년 대폭락 시나리오 - 일본을 통해본
다치키 마코토 지음, 강신규 옮김, 차학봉 / 21세기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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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지수가 1700포인트 선을 넘어서면서 은행의 예치금을 찾고 집을 팔아 주식 시장에 뛰어든다는 주변의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뭐, 꽤 오래전부터 주식시장은 지속적인 성장 일로에 있었으니 이 가파른 상승세가 그리 특이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불패의 신화, 재테크의 최종진화물이라 여겨지던 집, 그러니까 부동산을 팔아 주식을 산다니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올 해 들어 거칠 것 없이 치솟던 아파트 값이 주춤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자신들이 내놓은 묘안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말하고 투자가들은 적립식펀드를 위시한 개인투자자들의 위력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시기에 현명한 대처법은 뭐인고? 하니, 어떤 중계업자는 일시적 현상일 뿐이니 지금이 적당한 매수 시기라 하고 다른 편에선 장기적 가격하락에서 심할 경우 가격 붕괴로 이어질 수 있으니 어서 팔아 이익을 실현하라 한다. 부동산이라는 한 단어가 소비인구로써의 우리에게 최대의 화두인 만큼 그에 대한 의견은 동네 반상회에서 정책회의에 이르기까지 난상토론을 야기할 정도이다.

이때 시류를 탄 책이 있으니, 바로 <부동산 10년 대폭락 시나리오>(21세기북스. 2007)이다. 이 책엔 일본인 경제 애널리스트 다치키 마코토가 자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의 원인과 향후 흐름을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떠한가. 대체로 야비하고 이유 없는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감정적인 인식을 배제하고 보면 우리와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분산투자를 위해 일본펀드와 국내 적립식펀드를 동시에 투자해선 안 된다고 한다. 그만큼 증시현황이 연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부동산 과열 양상을 살펴보아도 그 접점을 군데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본과 우리 경제의 연동성과 공통점. 그것이 이 책의 시의성이다. 물론 현재 국내의 부동산 시장은 일본의 버블 붕괴 직전과 비교할 수는 없다. 떨어지는가 하면 오르고를 반복하며 강남 재건축아파트 등의 시세는 하루만에 1-2억의 차이를 오간다. 이런 까닭에 대부분의 진단은 부동산불패신화에 무게가 실려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보다 의미 있는 가치는 이러한 시의성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경제 애널리스트로 미시적인 경제현상을 넘어 거시적인 국가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서점 가에 난립한 수많은 재테크 서적처럼 돈 없어도 집은 사라든가 돈 안 되는 집을 팔아치우고 주식을 사라고 하지 않는다. 즉, 돈 꽤나 만진 애널리스트의 충고를 이 책에서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보다는 연금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와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을 지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꿈꾸는 국가의 존망을 걱정하고 있다. 나아가 부동산불패신화에 광신하는 우리의 문제점은 비생산적인 활동에 몰두하는 사회문제라고 말한다. 국내총생산에 포함되는 아파트 값의 허구는 정보가 지배하는 미래 사회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과거 일본의 버블 붕괴. 이는 우리네와 많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양상이 그네들과 꼭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도쿄를 중심으로 버블 붕괴 후에도 꾸준히 지가가 상승하는 것처럼 서울, 그것도 강남에 집중된 우리 부동산 투기의 모습은 일본의 초반 붕괴를 건너 띤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양국의 공통점으로 투기 전략을 찾겠다는 이유로 이 책을 받아들인다면 단지 흔해빠진 선진국 사례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부동산을 최고의 자산 가치로 여기는 풍조에 대한 의구심이다.

결국 포괄적이고 다소 도덕적인 가치판단이지만 작가는 부동산을 부의 축적의 도구로 택하는 것을 재고하라 한다. 더불어 미시적인 경제 현상에서 거시적인 흐름으로 눈을 돌리기 위해서 위정자는 물론 개인도 연구하라고 한다. 이것을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한다면 다소 맥 빠지는가?

일본의 경우 버블 붕괴는 국가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 여파에 허덕이며 현재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종래엔 예금봉쇄와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닐까싶다. 개개인 마다 투자의 방법이 다르고 그에 따라 판이한 선택을 내리겠지만 국가가 파산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렇다면 이 나라가 어떤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돈 벌 궁리를 떠나서 말이다.

덧붙이는 말 : 경제주체를 남성에 국한 시키는 경향이 있어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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