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정치의 시대 - 기본소득과 현금지급이라는 혁명적 실험
제임스 퍼거슨 지음, 조문영 옮김 / 여문책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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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서 청년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발표가 있던 날 극과 극의 반응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시대상을 반영한 합리적인 분배 정책이라며 반색을 표하기도 했고 포퓰리즘이라며 날을 세우고 불편한 기색을 넘어선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정책에 찬반 여부를 답해야 한다면 찬성에 손을 들고 싶다. 자연을 훼손하고 망치는데도 정부 예산을 조 단위로 쓰는데 사회 기반이 되는 청년들에게 약간의 도움쯤 주면 어떤가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반대하는 이들은 어떤 것을 우려하고 어떤 것이 마뜩잖은지가.

물론 이런 반응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과 고정관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노동력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절대적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사지가 멀쩡한 젊은이들이 일하지 않고 공돈을 받는다는 것은 불합리한 일에 가깝고 이해 불가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또한, 어릴 적부터 세뇌아닌 세뇌를 받아온 탓도 있을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지 물고기를 그냥 줘서는 안 된다'는 그 출처도 알지 못하는 말을 자연의 섭리 마냥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아온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 의존이 성인 남성 시민의 온전성에 위협이 된다는 생각은 서구 사상에서 오랜 족보를 갖고 있다. p104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어제의 옳음이 오늘의 그것이란 보장이 없을뿐더러 자연의 섭리라는 것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니 좀 더 유연한 사고와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부의 재분배 방식은 어떠한 것이며 이것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분배에 대한 무시와 가치절하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적 실재에 깊이 뿌리박힌 편견이라는 점을 인정할 시기가 왔다. p107

책 <분배정치의 시대>는 이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남아프리카의 '현금 지급'과 '기본 소득'이란 새로운 분배 정책을 통해 이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흘러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같은 고민을 하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선사할 것이다.

얼마 전 물의를 일으켰던 고위 공무원의 개, 돼지 발언을 인용해 도발적으로 포문을 여는데, 부모의 재산도 실력이라는 헛소리를 부끄럼 없이 입에 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습 경영을 당연시하는 재벌들이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보다 절실한 책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낯선 사회, 경제 용어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어려운 단어와 서술어 선택을 한 번역)이 접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불특정 다수라기보다는 특정 소수를 위한 느낌이 강하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사람들,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영역 안에거 누구나 동등한 정치를 통해 주장할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참된 의미다.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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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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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감정이라는 소음에 시달리는 것과 감정의 진공 상태에 빠지는 것, 이 중 어느 게 더 고약한 일일까? 


백조가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물 밑의 수 없는 발버둥 덕분이다. 하늘의 여유로움을 그대로 담은 수면은 수면 밑, 살아있는 것들의 분주함을 담지 못한다. 잔잔한 수면만 보고 그 아래 사정을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앞서 던진 물음에 대한 답 또한 그렇다. 단면만을 보고 선뜻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런데 한 편의 소설, 이름도 낯선 병명 '알렉시티미아'를 앓는 한 소년의 이야기기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가능케 한다. 


소설 <아몬드>는 편도체에 문제가 생겨 감정이 결여된,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 소년과 그 주변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들이 겪는 각기 다른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간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p19)


독특한 인물과 상황 설정, 반복되는 작은 반전들, 그리고 언어유희까지 길지 않은 소설이 더 짧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가속의 연료로 충만한 소설을 오랜만에 만났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윤재가 있고 그 맞은편에는 이수가 있다. 그리고 이 중간쯤에 도라가 있다. 감정의 양극에 위치한 윤재와 이수가 서로를 끌어당기며 가까워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적인 윤재, 동적인 도라, 과격한 이수. 감정에 질량이 있다면 윤재는 너무 가볍고 이수는 너무 무겁다. 이 사이를 달리는 도라는 경쾌하다. 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이 온도 차이로 부모님과의 갈등을 겪는 도라의, 평범한 10대의 모습이 이야기에서 특별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이들의 고민이 감정의 질량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겉모양이 어쨌든 무게가 어떻든 둘은 하나에게 강도가 다른 진동을 일으키고 크고 작은 균열을 만든다. 


*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내가 운다. 그런데 또 웃는다. (p217)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이 소설의 장르가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청소년 성장물로 흐를 수 있게 하는 조력자이다. 이들의 조건 없는 사랑과 온기 어린 관심이 키워낸 예쁜 괴물을 통해 사이코패스나 흉악범같은 진짜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짐을 작가는 명확히 하고 있다.


*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이 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p146)


때론 감정에 일렁이기도,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공감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은 행복한 일이자 살아가는 이유를 명확히 해준다. 나눌 수 없는 기쁨과 성공은 곧 빛을 잃고 의미는 급속히 퇴색해 버린다. 감정은 분명 신이 주신 축복이자 선물임이 틀림없다. 


'감정표현불능'이라는 낯선 단어로 '공감'과 '성장'의 낯익은 이야기를 하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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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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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의 작은 동물들을 찾아 왕진 다니는 수의사의 모습은 분명 낯선 풍경이다. 그런데 이런 허구 속, 만들어진 이야기에서나 그려질 법한 그림이 '헤리엇'이 있어 진짜 풍경이 되고 에세이 속 진솔한 이야기가 된다.

동물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기쁨과 위안뿐만 아니라 슬픔과 고통도 공존한다. 겹겹이 쌓이는 시간은 후자의 감정에 더 무게를 두고 기울어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세월에 마모된 몸은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고 병원 문턱을 넘게 되는 일이 많아지는데, 금전적인 이유에서든 아니면 생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든 이 문턱은 동물들에게 더 높고 불안하다. 작은 동물 친구들에게 관대한 마을 사람들이 있어, 생명 앞에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마음을 지닌 수의사 헤리엇이 있어 이야기 속에선 이 문턱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농부들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개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개를 키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에게 그런 속내를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하지만 나는 농장에서 키우는 개들이 대부분 반려견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p191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수의사를 만나는 행운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동화 속 왕자님 이야기만큼이나 멀고도 멀다. 한 생명의 생과 사 앞에서 진심과 열의를 다한,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움직인 무도회의 밤은 기적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날 밤은 수지의 새끼가 태어난 밤일뿐만 아니라 내 결혼 생활이 태어난 밤이기도 하다. (중략) 그 당시 우리 수의사들이 환자들을 대하던 태도가 그립기도 하다. 작은 시골집 거실에서 새끼를 낳는 암캐 옆에 줄곧 붙어 앉아 밤을 지새우는 것은 예사였다. p137

시간은 심술 맞기도 해 속도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반려동물을 주인에게서 먼저 빼앗아가기도 하고 반려동물만을 남겨 놓기도 한다. 비극은 떠나는 것은 떠나는 대로, 남겨진 것은 남겨진 대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팻로스'가 그저 일시적인 상실감이나 우울함에 그치지 않고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고, 홀로 남겨진 반려견이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기도 한다.

애완견의 영혼이 없어 자신이 죽은 후에 다시는 볼 수 없을까 불안해 하던 스터브 여사는 반려견을 키우는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심지어 걱정까지도.
하지만 이런 걱정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헤리엇의 말대로 세상엔 아직 인정이 있고 많은 핼러데이와 브로드위 여사가 있으니 말이다.

때론 그의 솔직함이 지나쳐 속마음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부분에선 적지 않게 당황하기도 했지만, 악의 없음의 또 다른 표현이니 이마저도 정겹게 느껴진다. 병원에 술병이 나뒹굴지언정 무관심은 없었고 불평의 말을 속으로 내뱉었지만 애정의 손길로 표출되었다.

그가 전하는 따듯한 말 한마디 그리고 그가 만난 희망과 기적이 위안의 시간을 선물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옆에서 벗어 놓은 옷처럼 널브러져 자고 있는 저 녀석을 트리키로 키울 것인지 아니면 팁으로 키울 것인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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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
우석훈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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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입력해주세요"오늘 한 푼 벌면 내일 애들한테 두 푼 나가고......"


어느 해녀 할머니가 했다는 이 말을 보면 경제학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자식이 생긴다는 건 마이너스 경제의 시작이고 밑지는 장사 그 자체이다. 물론 한 생명을 놓고 플러스, 마이너스를 따진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슬프게도 아이와 부모가 살아갈 시간은 현재, 현실이고, 현실은 그 더하고 빼는 행위가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다.


옛날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 아이는 자기 먹을 것을 쥐고 태어난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국가의 도움 없이는 한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는 것이 말처럼 그리 녹록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오죽하면 아이들을 '돈 먹는 하마'라고 할까 싶다. 우스갯소리겠지만 서글프게 들린다.


아이를 낳는 순간, (아니 책에 따르면 낳기 전부터) 돈 들어갈 일이 많아져 이미 마이너스 경제가 시작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불안과 불안정을 단 몇 초의 자식들 미소로 해소하는 부모들은 정말 초인이고 신에 닿아 있는 새로운 인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저자는 책에서 프랑스의 육아 정책을 예시로 들고 있는데 정말 먼 나라 먼 이야기이다.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나라가 키우는 것이 프랑스라고 하니 외계 어느 별 이야기가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솔직히 정부를 믿고 사람들에게 "아이 낳으세요."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지금도 또 앞으로도 정부가 육아를 전폭적으로 지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p41)


경제학자의 육아법에는 뭔가 특별한 돌파구나 해결책이 있는 것일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별다를 것도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능력 이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고 현행 정책의 맹점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읽히는 수가 거의 없어 보인다.


평균적으로 살아가면, 한국에서 평균적으로 아이들에게 더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된다. 아무리 벌어도 모자란다. 그걸 해주지 못하는 부모는? 그만큼 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돈이 없거나, 미안하거나, 그중 하나에 반드시 속하도록 구조가 설계돼 있다. (p272)


건강한 첫째, 조금 아픈 둘째를 키우며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남들도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오는 위로와 위안에 한숨 돌리고 아이를 위한 최선의 육아법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면 이 책은 역할을 다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블로그에서 많은 정보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보니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육아 관련 이야기들이 그리 새롭지만은 않다. 그러다 보니 육아 관련 정보 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양수 검사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고 유모차를 선물할 때 고민하지 않게 되었으며, 아이와의 추억을 어떻게 만들고 남길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무엇이든 넘치는 아이로 키우기보다는 부모와의 추억으로 유년기를 가득 채운, 타인의 부족함에 나의 것을 나눌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분명 방법은 있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바람과 방법에 대한 서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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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이경식 옮김 / 북스토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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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거물급 재벌 총수가 구속되면서 한편에서는 경제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보다는 정의 실현이 우선이라는 데 목소리를 모았다. 학자도 말했다. 


정의는 사회 질서의 전제 조건이지. 이 토대 위에서만 상거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단 말이야. 정의를 세우지 않고는 아무리 상거래 체계를 구축하려고 해봐야 말짱 헛일이지. p162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유 무역을 부정하고 반이민정책을 펼치며 자진해서 고립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열광했지만, 그 맞은편에선 걱정과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학자도 경고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든, 지정학적인 조건에서든 시장이 한정되어 있을 때는 사람들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네. p147


학자의 눈은 이미 몇 세기 앞을 향해 있었지만, 물리적 시간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이었다. 겹겹의 세월은 그의 입을 막았고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학설은 편집되어 지금의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미 죽고 없는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따서 조합한 엉성한 캐리커처에 의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지배를 받는다는 말씀이시죠? p222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이런 현상을 안타까워한 지식인의 양심과 경각심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내 철학을 난도질해서 그 가운데 자기들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 선택한 거야. 그리고 내 이론과 사상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왜곡한 거야. p322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수십 년 간 관련 공부를 하며 경제학자라는 타이틀까지 단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리 없는데 왜 학자의 이론이 아전인수 격으로 이용되는 것을 묵과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곳의 경제 수석은 윗분들 수족 노릇을 하느라 바쁘니 예외일 테지만.



이야기의 또 다른 한 축이기도 한데, 연구비를 받아 기업에 유리한 논문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고 4대강 사업에 대한 연구 발표가 상이하게 달랐던 경우도 있으니 침묵의 의미를 모를 바도 아니다. 또한 단어를 해석하는 이들의 온도 차이와 '국부론'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의 간과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환생한 애덤 스미스는 그의 학설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 때문에 누명을 쓰고 목숨까지 위협받는다. 이야기 대부분은 애덤 스미스와 번스 교수의 영적 대화를 통해 '국부론'이 '도덕감정론'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편집된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할애된다. 



설정 중에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이 있는데 애덤 스미스가 빌린 몸이 블루칼라인 트럭 정비사라는 점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작가의 시선이 불편하다. 또 위협을 가하는 POP(피플 오버 프로핏)라는 단체가 '그린피스의 경제 분야 버전'이라 설명하는데, 이 단체의 행태를 보면 테러리스트가 따로 없다. 경제학자들에게 그린피스가 이런 이미지인가 싶어 의아했다. 



아메리카 대륙 횡단 여행을 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조금 더 현실 속 사건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소설 속에서 풀어낸 쉬운 이론 설명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와 닿는 정도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번스 교수가 좀 더 공격적으로 반박하는 태도를 취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랬다면 경제학과 인연이 깊지 않은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을 것이고 책장을 덮은 후에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독자의 폭이 조금은 제한되지 않을까 싶은 부분이다.




그의 이론이 세상에 나온 이후로 이론은 이론대로 학자는 학자대로 수많은 도마 위에 올려졌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었을 수도, 본질이 흐려졌을 수도,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이용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여전히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경제 학자가 될 수도 없고 모든 이에게 국부론과 도덕 감정론 통독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구할 수 있을까. 소설 속 번스 교수처럼 결국은 경제학을 연구하는, 그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의 양심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는 것이 애덤 스미스를 구하는 길이자 자신들을 구원하는 길일 것이다.


경제학은 도덕철학으로 처음 출발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네. 도덕성을 상업이라는 영역에 적용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도덕성 그 자체부터 탐구해야 한다는 말일세.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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