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구하기
조나단 B. 와이트 지음, 이경식 옮김 / 북스토리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거물급 재벌 총수가 구속되면서 한편에서는 경제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경제보다는 정의 실현이 우선이라는 데 목소리를 모았다. 학자도 말했다. 


정의는 사회 질서의 전제 조건이지. 이 토대 위에서만 상거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단 말이야. 정의를 세우지 않고는 아무리 상거래 체계를 구축하려고 해봐야 말짱 헛일이지. p162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자유 무역을 부정하고 반이민정책을 펼치며 자진해서 고립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열광했지만, 그 맞은편에선 걱정과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학자도 경고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든, 지정학적인 조건에서든 시장이 한정되어 있을 때는 사람들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네. p147


학자의 눈은 이미 몇 세기 앞을 향해 있었지만, 물리적 시간 앞에서는 무기력할 뿐이었다. 겹겹의 세월은 그의 입을 막았고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학설은 편집되어 지금의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미 죽고 없는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따서 조합한 엉성한 캐리커처에 의해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지배를 받는다는 말씀이시죠? p222


'애덤 스미스 구하기'는 이런 현상을 안타까워한 지식인의 양심과 경각심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내 철학을 난도질해서 그 가운데 자기들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 선택한 거야. 그리고 내 이론과 사상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왜곡한 거야. p322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수십 년 간 관련 공부를 하며 경제학자라는 타이틀까지 단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리 없는데 왜 학자의 이론이 아전인수 격으로 이용되는 것을 묵과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곳의 경제 수석은 윗분들 수족 노릇을 하느라 바쁘니 예외일 테지만.



이야기의 또 다른 한 축이기도 한데, 연구비를 받아 기업에 유리한 논문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고 4대강 사업에 대한 연구 발표가 상이하게 달랐던 경우도 있으니 침묵의 의미를 모를 바도 아니다. 또한 단어를 해석하는 이들의 온도 차이와 '국부론'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의 간과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환생한 애덤 스미스는 그의 학설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 때문에 누명을 쓰고 목숨까지 위협받는다. 이야기 대부분은 애덤 스미스와 번스 교수의 영적 대화를 통해 '국부론'이 '도덕감정론'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편집된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할애된다. 



설정 중에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부분이 있는데 애덤 스미스가 빌린 몸이 블루칼라인 트럭 정비사라는 점이다. 편견에 사로잡힌 작가의 시선이 불편하다. 또 위협을 가하는 POP(피플 오버 프로핏)라는 단체가 '그린피스의 경제 분야 버전'이라 설명하는데, 이 단체의 행태를 보면 테러리스트가 따로 없다. 경제학자들에게 그린피스가 이런 이미지인가 싶어 의아했다. 



아메리카 대륙 횡단 여행을 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조금 더 현실 속 사건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소설 속에서 풀어낸 쉬운 이론 설명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와 닿는 정도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 번스 교수가 좀 더 공격적으로 반박하는 태도를 취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랬다면 경제학과 인연이 깊지 않은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을 것이고 책장을 덮은 후에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독자의 폭이 조금은 제한되지 않을까 싶은 부분이다.




그의 이론이 세상에 나온 이후로 이론은 이론대로 학자는 학자대로 수많은 도마 위에 올려졌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었을 수도, 본질이 흐려졌을 수도,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이용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여전히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경제 학자가 될 수도 없고 모든 이에게 국부론과 도덕 감정론 통독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를 구할 수 있을까. 소설 속 번스 교수처럼 결국은 경제학을 연구하는, 그 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의 양심을 믿어 보는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는 것이 애덤 스미스를 구하는 길이자 자신들을 구원하는 길일 것이다.


경제학은 도덕철학으로 처음 출발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네. 도덕성을 상업이라는 영역에 적용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도덕성 그 자체부터 탐구해야 한다는 말일세.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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