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감정이라는 소음에 시달리는 것과 감정의 진공 상태에 빠지는 것, 이 중 어느 게 더 고약한 일일까? 


백조가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을 수 있는 것은 물 밑의 수 없는 발버둥 덕분이다. 하늘의 여유로움을 그대로 담은 수면은 수면 밑, 살아있는 것들의 분주함을 담지 못한다. 잔잔한 수면만 보고 그 아래 사정을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앞서 던진 물음에 대한 답 또한 그렇다. 단면만을 보고 선뜻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런데 한 편의 소설, 이름도 낯선 병명 '알렉시티미아'를 앓는 한 소년의 이야기기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가능케 한다. 


소설 <아몬드>는 편도체에 문제가 생겨 감정이 결여된, 그래서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 소년과 그 주변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들이 겪는 각기 다른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간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p19)


독특한 인물과 상황 설정, 반복되는 작은 반전들, 그리고 언어유희까지 길지 않은 소설이 더 짧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가속의 연료로 충만한 소설을 오랜만에 만났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윤재가 있고 그 맞은편에는 이수가 있다. 그리고 이 중간쯤에 도라가 있다. 감정의 양극에 위치한 윤재와 이수가 서로를 끌어당기며 가까워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적인 윤재, 동적인 도라, 과격한 이수. 감정에 질량이 있다면 윤재는 너무 가볍고 이수는 너무 무겁다. 이 사이를 달리는 도라는 경쾌하다. 꿈에 대한 고민을 하고 이 온도 차이로 부모님과의 갈등을 겪는 도라의, 평범한 10대의 모습이 이야기에서 특별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이들의 고민이 감정의 질량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겉모양이 어쨌든 무게가 어떻든 둘은 하나에게 강도가 다른 진동을 일으키고 크고 작은 균열을 만든다. 


*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내가 운다. 그런데 또 웃는다. (p217)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이 소설의 장르가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청소년 성장물로 흐를 수 있게 하는 조력자이다. 이들의 조건 없는 사랑과 온기 어린 관심이 키워낸 예쁜 괴물을 통해 사이코패스나 흉악범같은 진짜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짐을 작가는 명확히 하고 있다.


*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이 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p146)


때론 감정에 일렁이기도,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공감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은 행복한 일이자 살아가는 이유를 명확히 해준다. 나눌 수 없는 기쁨과 성공은 곧 빛을 잃고 의미는 급속히 퇴색해 버린다. 감정은 분명 신이 주신 축복이자 선물임이 틀림없다. 


'감정표현불능'이라는 낯선 단어로 '공감'과 '성장'의 낯익은 이야기를 하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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