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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심재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평점 :
소설 <젠틀맨>이 <나의 토익 만점 수기> 이후 7년 만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여전히 재밌고 참신하고 아이디어가 반짝반짝 빛난다.
첫맛이 그리 좋지 않은, 목넘김은 그리 나쁘지 않은, 뒷맛은 달콤씁쓸한 느낌이 이전 작품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꽤나 닮았다.
그리고 여전히 그가 요리하는 재료는 범상치가 않다. 마약에 이어 사창가와 포주. 양쪽 모두 받아들이기 쉬운 소재는 아니지만 전자에 비해 후자는 더더욱 그렇다. 한쪽 성이 상품화되고 소비되는 방식이라든지 작가가 그 성이 속한 집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에서다. 이런 불편함과는 별개로 이야기 전개는 빠르고 흥미롭다.
시공간을 초월한다거나 화학적 도움을 받는 등의 특수한 장치 없이, 사회 가장 밑바닥의 삶을 살던 사람이 최고의 지성 집단에 편입될 수 있었던 건 플라스틱 한 장 덕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교 학생증.
+ 청량리에서 밥벌이를 하던 남자가 어찌어찌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 들어갔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스토리다. 그것도 뭔가 드라마틱하게 입학한 것이 아니라 그냥 들어갔다. (p10)
학생증 한 장이 가른, 사창가 포주(몸을 파는 여성들의 뒤를 봐주는 깡패 혹은 양아치를 이런 단어로 부르는지 정확하진 않지만)인 한 남자의 인생 전후반 전 이야기가 때론 웃음으로 때론 안타까움으로 희비희비를 반복하며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이전 소설에서 토익의 구성 방식 그대로 이야기를 진행해 가는 과정이 참신했다면 이번 소설<젠틀맨>에선 실제 사건을 인용하고 심재천 작가 본인을 연상케 하는 서술과 인물 설정으로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뒤흔드는 부분이 눈에 띈다. 재밌는 건 이 모호함이 낯선듯 익숙하다는 것이다. sns 속 보여지는 삶과 실제 살아내는 삶 사이,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혼란스러운,자기분열증을 앓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젠틀맨>에서 흥미로운 설정 또 한 가지는, 두 인물 사이의 사회적 계층을 극단적으로 나누는 동시에 바뀐 환경 속에서 이질감 없이 서로의 삶을 살아내는 인물들의 모습이다. 사람은 처한 환경에 따라 이런 사람이 될 수도, 저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오늘을, 단면만을 보고 한 인간을 규정하고 알은 채 하는 행위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증명할 뿐이다. 이전 소설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느꼈던 통쾌함이 이 설정에서 똑같이 느껴졌다.
이야기는 언뜻 보기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해피엔딩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의 변덕스러운 마음 위에 새겨질 내일은, 세상을 한쪽 눈으로만 봐야 하는 것만큼이나 불안정하고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