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헤리엇의 개 이야기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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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의 작은 동물들을 찾아 왕진 다니는 수의사의 모습은 분명 낯선 풍경이다. 그런데 이런 허구 속, 만들어진 이야기에서나 그려질 법한 그림이 '헤리엇'이 있어 진짜 풍경이 되고 에세이 속 진솔한 이야기가 된다.

동물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기쁨과 위안뿐만 아니라 슬픔과 고통도 공존한다. 겹겹이 쌓이는 시간은 후자의 감정에 더 무게를 두고 기울어져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세월에 마모된 몸은 여기저기 고장 나기 시작하고 병원 문턱을 넘게 되는 일이 많아지는데, 금전적인 이유에서든 아니면 생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든 이 문턱은 동물들에게 더 높고 불안하다. 작은 동물 친구들에게 관대한 마을 사람들이 있어, 생명 앞에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마음을 지닌 수의사 헤리엇이 있어 이야기 속에선 이 문턱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농부들은 일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개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개를 키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남에게 그런 속내를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하지만 나는 농장에서 키우는 개들이 대부분 반려견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p191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수의사를 만나는 행운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동화 속 왕자님 이야기만큼이나 멀고도 멀다. 한 생명의 생과 사 앞에서 진심과 열의를 다한,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움직인 무도회의 밤은 기적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날 밤은 수지의 새끼가 태어난 밤일뿐만 아니라 내 결혼 생활이 태어난 밤이기도 하다. (중략) 그 당시 우리 수의사들이 환자들을 대하던 태도가 그립기도 하다. 작은 시골집 거실에서 새끼를 낳는 암캐 옆에 줄곧 붙어 앉아 밤을 지새우는 것은 예사였다. p137

시간은 심술 맞기도 해 속도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반려동물을 주인에게서 먼저 빼앗아가기도 하고 반려동물만을 남겨 놓기도 한다. 비극은 떠나는 것은 떠나는 대로, 남겨진 것은 남겨진 대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팻로스'가 그저 일시적인 상실감이나 우울함에 그치지 않고 트라우마로 남기도 하고, 홀로 남겨진 반려견이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기도 한다.

애완견의 영혼이 없어 자신이 죽은 후에 다시는 볼 수 없을까 불안해 하던 스터브 여사는 반려견을 키우는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심지어 걱정까지도.
하지만 이런 걱정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헤리엇의 말대로 세상엔 아직 인정이 있고 많은 핼러데이와 브로드위 여사가 있으니 말이다.

때론 그의 솔직함이 지나쳐 속마음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부분에선 적지 않게 당황하기도 했지만, 악의 없음의 또 다른 표현이니 이마저도 정겹게 느껴진다. 병원에 술병이 나뒹굴지언정 무관심은 없었고 불평의 말을 속으로 내뱉었지만 애정의 손길로 표출되었다.

그가 전하는 따듯한 말 한마디 그리고 그가 만난 희망과 기적이 위안의 시간을 선물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옆에서 벗어 놓은 옷처럼 널브러져 자고 있는 저 녀석을 트리키로 키울 것인지 아니면 팁으로 키울 것인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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