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라는 따뜻한 감각 - 몸의 신호에 마음을 멈추고
예슬 지음 / 들녘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이다. 그래서 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만큼 죽어간다는 것이고 잘 산다는 건 잘 죽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동전의 한 면은 쉽게 잊히고 부정된다. 신의 장난이든 신의 물음이든 인간에게는 가혹할 수밖에 없는 '그 날' 혹은 '그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환기든 상기든, 삶의 뒷면을 확인하는 순간은 고통이고 슬픔이며 원망이다. 책<고통이라는 따뜻한 감각>은 죽음이란 단어가 자극하는 모든 감각이 역전되는 순간순간의 기록이고 과정이다. 

* 정답은 없고 정해진 길도 없다. 하지만 삶 속엔 죽음이 스며들어 있고 삶은 결국 죽음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하고 지향하며 살고 싶다. 고유한 죽음이 환기하는, 고유한 나의 삶. (p86) 

'예슬'의 스물여섯 해는 또래들의 시간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난소에 20㎝의 종양이 발견되기 전까지 그녀를 둘러싼 시간은 모나게 튀어나오거나 눈에 띄는 색을 띠지 않았다. 

삶을 뒤흔드는 사건일수록 그 조짐을 평범함과 일상에 교묘히 감추고 있어 맞닥뜨린 이, 맞이해야만 하는 이는 충격과 당혹의 순간에 갇히고 만다. 얄궂게도 의사는 메스보다도 더 차갑고 날카로운 말로 환자를 현실로 끌어내고 현실은 일상을 강요한다. 
환자의 몸에 생긴 것이 혹이든 암이든 의사의 말은 여전히 건조하고 회사 일정에 있는 출장은 가야 하며 난소암을 앓던 동료 할머니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삶을 제동하는 위기와 위협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슬픔과 절망에 깊숙이 빠져 수면 위로 껌뻑이는 눈만을 보여주기도 하고 누군가는 발버둥 치는 고단한 헛발질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재생의 면모를 보여준다. 

* 종양 덕분에 내 인생이 변했다. 귀한 휴식을 얻었고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생겼으며, 몸의 신호를 살피는 마음 씀을 배웠다. 새로운 습관과 관계가 형성되고 나 자신이 좀 더 단단해졌으며 부드러워졌다. (p195)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그녀를 통해 차분하고 긍정적으로 전환되며 그동안 집착과 맹신으로 점철된 것들의 의미가 퇴색하고 진짜 중요한 것에 눈을 돌려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타인이 아닌 나에 집중하며 몸과 오늘이 걸어오는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고통이라는 따뜻한 감각>은 '예슬' 개인의 치유 일기인 동시에  우리들의 진단서이자 처방전인 셈이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어 한 마디 따라 쓰기 노트
박상용 지음 / 소라주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중국어 왕초보 학습자가 관용어를 공부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시중에 나와 있는 초급 교재 중에 관용어를 다루는 경우가 없을 뿐더러 낯선 한자와 발음, 성조만으로도 버거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어 한마디 따라 쓰기 노트>의 구성이라면 입문자도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체르니 100번을 치고 있는 사람이 30번이나 40번을 흉내는 낼 수 있는 정도랄까. 깊이는 따라갈 수 없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구성을 보면 이렇다. 관용어 한자가 획순과 발음의 한글 표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어원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자를 연습하기 위한 공간도 충분하게 주어지고 있다. 획순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잘 사용하지 않고 마음대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교정하거나 처음부터 바른 쓰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단지 한자를 예쁘게 쓰는 방법이라든지 처음 쓰여진 획은 삐쳐 나와 있다는 등의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이 빠져 있는 게 조금 아쉽다. 부수적이긴 하지만 한자를 쓰다 보면 좀 더 예쁘게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중국어 한마디 따라 쓰기 노트>는 중국어 병음 읽기가 익숙하지 않은 학습자에게도 문턱이 굉장히 낮다. 병음을 한글로 표시해 두어 책의 서두에 설명해 놓은 발음법을 먼저 읽어 본 후 한 권을 모두 공부할 쯤에는 발음이 굉장히 친숙해져 있을 것 같다.

어원 설명 부분도 딱딱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 주듯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어 거부감 없이 어린 아이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이전 책에서도 이런 구어체 설명이 참 좋았는데 이번에도 기획 의도와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그런데 이 관용어가 문장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다루고 있지 않아 궁금증이 생기는데 짧은 문장 한두개를 함께 수록했다면 완벽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바이두에서 좋은 문장을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입문자에게는 무리가 아닐까 싶다.

기획 의도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 비해 너무 겸손한 편집에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중국어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돕는 요소는 충분히 담고 있다. 앞부분만 손 때 묻은 초급 교재를 다시 펼칠 용기가 없다면 <중국어 한마디 따라 쓰기 노트>로 다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벌집 패턴 일본어 - 따라할수록 탄탄해지는
김미선 지음 / 소라주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외국어를 독학하다 보면 문법과 독해는 어느 정도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데 그에 비례하는 회화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재밌는 일이다. 어려운 문장을 술술 해석해 내고 외국인도 낯설어 하는 단어를 2만개 정도는 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외국에서 물한잔 얻어 먹기 힘드니 말이다.

외국어를 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닌 공부를 위한 공부로,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란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교재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초급 교재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독해와 문법에 치중된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벌집 패턴 일본어>가 더 눈에 띄는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말하기 훈련 방법이 낯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다. 처음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울 때 이런 방식으로(기본형의 어간과 어미를 나누어 활용하는) 선생님이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굉장히 유용해서 다른 외국어를 배울 때도 항상 애용하고 있다.

일본어는 어느 외국어보다 우리말과 유사성이 많아, 특유의 품사별 활용만 익숙해지면 노력에 비해 두세배의 결과가 나오는 언어란 생각도 든다. 단지 이 고비를 넘었고 지구력 있게 매일 매일 반복한다는 가정하에서 이긴 하지만, 독학으로도 도전의 문턱이 낮은 편이다. 문제는 품사별 활용이라는 고비가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점과 매일 매일이 말처럼 쉽지 않은 데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두가지 고충을 제대로 해결해 주고 있다. 저자가 의사였다면 정말 제대로 명의다.

짧은 시간 동안 많지 않은 내용으로 계속 반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혼자서도 충분히 난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코치해주고 있다. 단지 문법 설명이나 주요 사항을 박스로 묶어 놓은 부분이 형광색으로 편집되어 있어 눈에 피로감을 주고 형광등 아래서는 책에 거의 코가 다을 정도로 가까이 봐야 글씨가 보일 정도다. 조금 의문인 것이 왜 흰색으로 글씨를 채워 넣었는지 하는 것이다. 내용이나 취지에 비해 편집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런 소소한 불만 아닌 불만을 제외하곤 외국어 독학 그리고 의사 소통으로서의 외국어에 최적화된 책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괜찮아, 청춘이잖아 - 꿈을 꾸고 이루어 가는 우리 이야기
김예솔 지음 / 별글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물 언저리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소위 말하는 대학 간판을 하늘(S.K.Y.)에 걸지못해, 패배감이란 무게에 짓눌려 이도 저도 못하고 정체되고 고여있던 그때의 나에게 말이다. 같은 이유로 5월의 교정을 만끽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도 '괜찮아, 청춘이잖아'를 건네고 싶다. 그래서 가장 빛나고 멋진 20대를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도전과 경험은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된다. 이것은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건강하고 긍정적인 순환 고리를 형성하는데 이 고리를 만들어 준 저자에게, 고리 속 수많은 점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준 그녀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한 사람의 경험이, 한 권의 책이 이것을 너무나 쉽게 가능케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갈라파고스를, 자유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네덜란드 홍등가의 전경을, 소박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벨기에의 맥주 한 잔을, 멋진 노년을 기대하게 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헝가리를 눈을 감고 그려 본다. 어떠한 편견도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 어떤 장소가 좋은 여행지로 기억되는 건, 얼마나 마음을 여느냐에 달려있다. (p206)

미사여구로 분칠하지 않고 민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그녀의 글과 여행 사진을 도배하듯 꽉꽉 채우지 않아 여백을 준 구성이 여유롭고 편안하게 행간을 읽고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지금 당장 떠나라고 채근하지 않으며 속도 보다는 방향에, 풍경보다는 사람에 집중하게 한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녀는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며 '그런데 당신은?'이란 여운 짙은 물음을 남기기도 한다.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모두 '행복'이라는 정거장들로 가득한 삶을 거쳐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갈 것이다. 결국 모두의 정착지는 같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각자 자기 속도대로, 리듬대로 자기의 길을 갈 때 큰 행복이 찾아오는 게 아닐까?' (p123)

여행은 어쩌면 압축해 놓은 일생을 통째로 경험해 보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은 기대와 설렘일 수밖에 없다. 한 번뿐인 생의 유한성 앞에서, 흘러간 시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기력하기만 할 것 같은 인간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해서 그 회수와 깊이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상상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한다. 그리고 못난 어제의 나를 관대하게 끌어안고, 불안한 내일의 나를 토닥인다.

책날개 속 그녀를 설명하는 비범한 단어들은 '괜찮아, 청춘이잖아'도 그저 특별한 사람의 평범한 세계 여행기 혹은 자기계발서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며 그녀의 여행에 동행하다 보면 첫인상은 어느새 보통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더 특별한 세계 여행기로 역전되어 있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 - 미어캣에게 배우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술
존 코터.홀거 래스거버 지음, 유영만 옮김 / 김영사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고 한다.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에 머물며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진화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뇌에 변화는 위협이고 공격인 셈이다. 변화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순간 편도체는 방어 태세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키고 두려움을 분사하게 된다.

재밌는 일이다. 사회는 개인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그것이 생존 전략이라 가르치는데 정작 뇌는 이에 역행하도록 설계되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그런데도 개인은, 집단은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뇌의 설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엇인가'를 변화와 위기 관리의 우화로 풀어낸 책 <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 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상반되는 두 개의 미어캣 무리를 대비시켜 지향과 지양을 말하고 있다. 리더십과 친화력의 상징인 나디아, 아이디어 뱅크 에이요는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과거를 답습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무리와는 어울리는 미어캣이 아니었다.

*일단 자기들이 최선이고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면 그걸 뛰어 넘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들으려 하지 않는 것도 정말 싫어. 도움을 주려는 이들이 오히려 자리에서 밀려나고, 입 다물고 하던 대로나 하라는 말을 듣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 p69

그들은 이탈을 결심하고 새로운 무리를 찾아 나서는데, 이 여정에서 매트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꿈꿔오던 무리와 조우하게 된다. 새로운 무리의 수장인 제나의 민주적이고 유동적인 무리 운영 방식, 부드럽고 따듯한 카리스마가 이전 무리와 극명하게 대비되어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며 어디에 방점이 찍혀 있는지가 확실해진다.

무리가 커지면서 위기는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그 대응 방식에는 큰 차이를 보인다. 전자(이전 무리)의 경우 우왕좌왕하며 서로를 탓하기에 바쁜 반면 후자(이탈 후 무리)는 협력해서 묘수를 찾아낸다. 위기가 위기로 머물지 않고 기회로 역전된 것이다.

* 우리가 그렸던 이상과 비전 덕분이에요. 우라 모두가 그것에 대한 열정적인 믿음을 갖고 함께해온 덕이지요. 그리고 두려움을 모르는 에너지와 창의력도 한몫했어요. 여러 장애물과 시련을 이기고 동료들이 낙관적인 태도를 잃지 않도록 나는 그저 이따금씩 격려했을 뿐이에요. p122

지난 4년간 우리는 지양해야 할 무리 속에서 나디아와 에이요의 불안과 불만, 수많은 고민을 함께 했다. 그리고 힘들게 그 무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어떤 리더를 만나 어떠한 무리를 만들어 나갈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과 의지에 달렸다. 두 미어켓이 그러했 듯 말이다.

삽화가 포함된 길지 않은 이 우화는 익숙한 것에 대한 서술이다. 변화와 위기, 협력을 말하고 이상적인 리더상을 그리는 이야기가 새로울 리 없다. 하지만 너무 익숙해서 놓치기 쉬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선 전에 사전 경보와 청사진을 함께 제시하는 짧은 우화<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로 주의를 환기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