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와 꽃수레

 

 

 


            

 

 

 

꽃수레(딸의 애칭)의 재능,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한 가지 발견했다.

음악 신동도 미술천재도 아니다. 살림영재.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일에 능하다.

집에서 물고기(구피)를 키운다.

점싹이라는 새끼 물고기 한 마리가 제법 커서

세 마리를 더 사다 넣었다.

그랬더니 수레는 황점싹. 이등싹. 박납싹. 김흥싹 등등

무슨 고전동화에 나오는 첨지 같은 이름을 붙여서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고 보살폈다.

구피 사총사는 더욱 날랜 몸놀림으로 물속을 유영했고

새끼를 순풍순풍 낳기 시작했다.

어른 4마리, 새끼 26 마리. 총 30마리로 식구가 늘었다.

이 기적의 드라마. 총연출은 오롯이 꽃수레다.


식탁에 잔멸치 볶음이 나오면

두 손을 귀에다가 나팔처럼 모으고 어항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잠시 후,

“뭐라고 점싹아? 엄마, 이 멸치는 점싹이의 사촌 형이래”

라는 대사를 친다.

백화점 생선 코너에서 고등어를 보면

또 집에 있는 납싹이와 교신을 시도한다.

“이 고등어는 20억 년 전 죽은 납싹이 조상이래.”

저녁을 먹고 나면

“엄마, 흥싹이가 배고파 죽겠대. 자기만 먹지 말고 나도 밥 좀 주래”

하고 물고기 밥을 꺼낸다.

이제는 새끼 까지 생겨서 일손이 더 분주하고 말이 더 많아졌다.

수시로 어항을 들여다보는 바람에

그 작은 것들 몸통에서 지느러미가 나오고 꼬리가 생기는

아주 미세한 차이까지 잡아낸다.

핸드폰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자랑하고

납싹이의 옆모습, 앞모습, 뒷모습,

위에서 본 모습, 아래에서 본 모습 등

성장과정을 그림으로 남긴다.


꽃수레가 이렇게 재미나게 구피를 키우는 것을 지켜본 친구 한 명이

덥석 어항을 샀다.

그 집에 놀러갔더니 <토끼전>에 나오는 대궐 같은 어항과 수초에

우린 모녀는 기가 죽어버릴 정도였다.

한 달 후.

친구네 물고기 이십여 마리가 몰살했다는 비보가 들려 왔다.

우리는 새끼를 또 낳았다고 했더니

그 화려한 어항을 우리 집에 갖다 주었다.

이틀을 방치하다가 수레의 등쌀에 못 이겨 납싹이들을 옮기기로 했다.

어항이 커서 바가지로 물을 날랐다.

몇 번 왕복하니 귀찮아서

 “니 물고기니까 니가 물을 나르라”고 수레한테 떠넘겼다.

“알았어 내가 할게”

라며 흔쾌히 바가지로 물을 나르던 수레.

지도 힘들었는지 바가지를 들고 쩔쩔매면서 푸념하듯 내뱉는다.

“에유. 납싹이들 죽기 전에 큰 집에서 호강 한번 시켜줄라고 했더니

이렇게 힘이 드네!”


웬 할머니가 들어앉은 듯 구성진 대사에 나는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큰 집에 살고 싶은 자기 욕망을 투사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꽃수레는 신바람이 나서 중얼중얼

 “조금만 기다려라”

“다 돼 간다”

며 납싹이와 활발히 교신했다.

저것이 어린 아이일까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나중에 작은 수족관을 운영하거나

작은 동물을 돌보는 일을 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가 화초를 아주 잘 키우셨다.

죽어가던 화초도 살려내던 엄마 덕분에

우리 집은 늘 식물원을 방불케 했고

동네에서도 ‘화초 잘 되는 집’으로 유명했다.

난 화초도 못 키우고 애완동물도 별로다.

사람 아닌 것에 좀처럼 마음을 주지 못하는 무정한 여인이다.


살아있는 것을 돌보는 그 성가신 일을 즐기면서

창작의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 꽃수레.

이박삼일 휴가 가서도 안절부절

‘납싹이들 다 굶어 죽으면 어떡하느냐’

수시로 근심이 서렸다.

속초에서 회를 먹을 때는

“등싹이 증조할아버지의 친구 분”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지 오빠한테

“만날 똑같은 레퍼토리 반복 하냐. 시시하다. 지어내지 말라”

는 구박을 들어가면서도 꿋꿋하다.

옷을 입은 채 바다에 철퍼덕 앉아서는

“납싹이 고향이라 더 아늑하다”며 싱긋이 웃는다.

자기가 구피라도 된 양

물 속에서 파도에 밀려갔다 밀려오며 좋아라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좀 ‘이상한 아이’로 보일 지도 모를 대사들을 연신 남발해가면서.

꽃수레가 앞으로 얼마나 더 납싹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물고기가 되어 바다에 몸 담글까를 생각하니

잠시나마 영어수학 선행진도를 걱정하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자기 삶을 예술로 만드는 방편으로서의 공부라면

아이와 대화하면서 천천히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2년이 흘렀다.

꽃수레의 지극한 돌봄으로 구피는 백여 마리로 증식했다.

어항도 두 개로 늘었다. 정말 번식력 왕성한 녀석들이다.

많이씩 태어나고 몇몇이 죽었다.

고만고만한 구피 무리에서 용케도 초기멤버 4마리를 찾아

안색을 살피던 꽃수레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파워포인트로 ‘납싹이가 늙어가고 있다’는 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보니 그 녀석들이 어쩐지 생기를 잃어가는 듯도 보였다.

유행가 가사대로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며칠 간격으로 납싹이와 흥싹이는 운명을 달리했다.

딸도 울고 나도 울었다.

모녀가 등 돌리고 앉아서 휴지로 코 풀어가면서 눈물 훔쳤다.

구피의 평균수명이 2년이라 각오는 했었지만 막상 죽으니까 서운했다.

그리고 관행대로 제사를 지내주었다.

구피의 제사.

처음 지내던 날이 떠오른다.

하루는 아주 작은 새끼가 죽자 제사를 지낸다고 수선을 피웠다.

식탁 위에 양초 켜고, 휴지로 싼 시신을 놓고,

물고기 밥을 접시에 소복이 담아 제사상을 차리고는

나더러 백팔 배를 같이 하자고 권했다.

얼결에 따라하면서 숨차고 웃기고 찡했다.

모녀의 몸뚱이가 접혔다 펴지면서

거실 바닥이 채워졌다 비워졌다를 반복했다.

‘오십일 배.. 오십이 배.. 오십삼 배..’

물고기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나는 그 다가옴에 응답한다.

마침내 사유 돋았다.

어항 물갈기가 귀찮다고

물고기 없던 시절로 돌아가길 바랐던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반성했다.

내 안에 사는 것들이 다 사라지면 나라는 개체도 해체되겠구나.

인간은 항상 자기 아닌 자에게 열려 있을 수밖에 없구나 등등.

납싹이 새끼의 사망이 함께-있음의 존재론까지 뻗어가자

푸푹 웃음이 났다.

“엄마, 너무 작은 생명이 죽었는데 절하려니까 웃겨?”

“아니, 아니...”

 

 

- 계속 -

 

 

 

 

 

* 위의 글은 에세이 『올드걸의 시집』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글: 은유 

1971년 서울 태생. 사람과 사건 많은 도시에 살면서 생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자랐다. 사보, 웹진, 잡지, 책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글을 쓰는 생활밀착형 작가다.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R’ 에서 글쓰기강좌와 시(詩)세미나를 진행한다. 그밖에 ‘고양여성민우회생협’, ‘생기랑마음달풀’, ‘도봉여성센터’ 등에서도 여성들과 글쓰기수업을 함께 했다. 웹진 ≪위클리 수유너머≫에<올드걸의 시집>을 연재하면서 독자들로부터 “몸에서 맴돌던 바로 내 얘기”라며 호응과 지지를 얻었다. 덕분에 그동안 서랍에 고이 감춰뒀던 글을 꺼내어 세상에 내놓게 됐다. 지은 책으로는 MBC <남극의 눈물> 송인혁 촬영감독과 낸 사진에세이『황제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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