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걸의 시집] 그와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우리가 첫 만남을 가진 날, 대화의 주제가 ‘첫사랑’이었다.

신천역 새마을시장 포장마차.

그는 첫사랑의 여자와 7년 연애 끝에 헤어졌으며, 독신으로 살 거라고 말했다.

사랑하던 여자가 부모 의견에 따라 다른 데로 시집을 가버렸으니

혼자 살면서 지순한 사랑을 지키고 싶은 눈치였다.

근래 보기 드문 순정파 남자가 귀엽고 참신하게 다가왔다.

여자보다 남자가 더 편하고 커피보다 술이 더 좋았던 나는,

여러모로 ‘관계 진전’의 부담이 전혀 없는 그와 자주 만나고 있었다.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편안한 술친구로서 주거니 받거니

술병의 높이에 비례해서 돈독한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심지어 단둘이 7일 간 강원도 절로 여행을 가서도

해와 달이 된 오누이처럼 한방에서 도란도란 얘기만 나누었다.

해 뜨면 밥 먹고 공부했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강철군화』 같은 책들을 읽고 토론했다.

손 한 번 잡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사이가 아니라서

그에게 못할 말은 없었다.

그렇게 두 해를 넘겼다.

우리의 이상한 우정은, 결혼과 동시에 이상하게 끝났다.

 

 

 

 

 

그와 더는 술을 마시지 않게 됐다.

가족의 배치 안에서는 알코올의 향이 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신혼 때 서로에게 '사기 결혼'이라고 정의 내렸다.

술이 끊기자 말도 끊겼다.

‘술은 말의 예비자이며 말의 부피를 불리는 희안한 공기이다’ 라고

김현은 말했으되, 그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당연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평생 나눌 얘기를 ‘우정의 기간’ 동안 이미 나누었는지 모른다.

새삼 그가 궁금하지도 않았고

다행히 그 역시 나에게 꼬치꼬치 묻지 않는다.

나의 니체에 대해 나의 눈물에 대해 그는 잘 모른다.

내가 공부하러 가는 날, 공연 보러 가는 날, 친구 만나는 날만 챙긴다.

아이들을 위해 일찍 귀가해야 하므로 안다.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 공산-부부라서 행복하다.

그가 나를 속속들이 알고자 했다면 난 조개처럼 침묵하지 못했을 것이다.

끝내 하지 않은 말 간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저마다의 감춰진 깊이를 가늠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  계속 -     

 

 

 

 

     * 위의 글은 에세이집 <올드걸의 시집>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글: 은유 

1971년 서울 태생. 사람과 사건 많은 도시에 살면서 생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자랐다. 사보, 웹진, 잡지, 책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글을 쓰는 생활밀착형 작가다.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R’ 에서 글쓰기강좌와 시(詩)세미나를 진행한다. 그밖에 ‘고양여성민우회생협’, ‘생기랑마음달풀’, ‘도봉여성센터’ 등에서도 여성들과 글쓰기수업을 함께 했다. 웹진 ≪위클리 수유너머≫에<올드걸의 시집>을 연재하면서 독자들로부터 “몸에서 맴돌던 바로 내 얘기”라며 호응과 지지를 얻었다. 덕분에 그동안 서랍에 고이 감춰뒀던 글을 꺼내어 세상에 내놓게 됐다. 지은 책으로는 MBC <남극의 눈물> 송인혁 촬영감독과 낸 사진에세이『황제처럼』이 있다.  

 

   <알림>  

 

 

『올드걸의 시집』의 은유 작가와의 만남-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꾸는 존재에게, 시(詩)가 왔다”

 

사랑, 결혼, 육아, 일로부터 수시로 울컥하는 여자들에게~ 

시는 삶을 어떻게 구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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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 4층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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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04-22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묘한 인연이 부부로- 그 안의 내용이 더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