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룸
김의경 지음 / 민음사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검색창에 ‘광명’이라고 입력하면 기다렸다는 듯 ‘광명 이케아’가 상위 연관검색어로 랭크된다.
70년대에 일본에 들어왔다 망한 ‘이케아’가 2000년대 이후 크게 성공하며 한국에까지 사업 확장을 시도했고, 당연한 결과로 한국인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아마 우리나라 역시 과거였다면 이케아가 이정도로 인기를 끌진 않았을 것이다.
과거에는 꼭 혼수가 아니더라도 가구만큼은 비싸고 좋은 걸 사서 한 평생 사용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내 집 마련 자체가 하늘의 뜬 구름 잡는 격인 요즘은 “고가의 가구로 50년 사느니 이케아로 5년에 한 번씩 바꿔 가며 살고 싶은데”(p.92) 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늘어났다.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가치관 역시 현시대 들어 급격히 냉소적으로 바뀌어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식으로 변해버렸고, 이런 개개인의 사상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이케아와 다이소가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케아 광명점의 큰 화재성은 단순히 가구 브랜드 하나가 새로 들어온 것이 아닌, 이 시대 젊은 층들의 냉소적인 사고관과 생활방식이 공식적으로 공표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최근 발표된 국내 단편집에 적잖은 실망을 거듭해서 의식적으로 ‘당분간 국내 소설은 읽지 말아야지’하며 피해오고 있었다. 특히 단편집은 더더욱.
그 와중에 우연히 도서관 ‘새로 들어온 책’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작가가 처음 보는 국내 작가임에도 누가 먼저 골라갈까봐 조바심을 내며 잽싸게 뽑아 들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린 것은 오로지 ‘왠지 모를 끌림’이라는 이유 하나 였다.
내 육감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라, 이 책 역시 첫 끌림에 보답이라도 하듯 꽤 괜찮은 여운을 선사해줬다.
단편집임에도 공통된 소재로 각각의 이야기들이 펼쳐져 단편집 특유의 ‘갑자기 시작된 엉뚱함’이 없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같은 장소가 다른 이야기에서 계속 등장해 흥미로웠다.
첫 이야기인 ‘물건들’에 다이소가 중요한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는 걸 제외하고는 모든 이야기들에 이케아 혹은 이케아 가구가 등장해 같은 공간에 서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각 단편의 인물들이 서로 만나는 지점은 없지만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보듯 자연스레 연결되는 느낌이 상당히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이케아 또는 다이소의 값싼 쇼핑을 즐기는 현시대 사람들의 불안과 행복, 가치관을 담백하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한 작가의 통찰력이 마음에 들었고, 금방 술술 읽히면서도 소소한 감동이 전해지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숨은 보석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