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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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인간. 이 불가무한 관계를 과연 누가 말끔하게 청산할 수 있을까. 인간이 노동이라는 고통의 굴레를 진지 오래되었으나 현재 우리 삶의 어느 현장에서도 그 가치는 추락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거창한 이념을 떠나 과거 봉건제를 뒤엎은 이유도, 자본주의를 뒤엎은 이유도 좀 더 평등하게 잘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혁명(공화국, 사회주의 등)이 발기되었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그건 어디까지나 윤회를 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럼 우린 왜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 것일까.

 

이 물음에 답을 하려면, 먼저 인간의 속성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터이다. 인간의 욕망, 타인 위에 우뚝 서려는 인간의 탐욕은 그 종점이 어디인지 모르게 하염없이 치솟기만 한다. 그게 우리네 현실이고 자본주의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의 현주소다. 무서운 얘기지만 신자유주의는 인간을 잡아먹는, 끝없는 생산의 노예로 인간을 선택한 악마와도 같은 존재다. 우리 인간의 운명 또한 자본주의를 선택한이레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시시포스의 굴레처럼, 무한궤도를 도는 다람쥐처럼.

 

현재 코로나19로 인간의 행동을 금했더니, 바로 증빙된 게 하나 있다. 사장경제의 맥이 끊어져 돈과 생산의 흐름이 막히다보니 자연히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인간 없는 세상이 원래 지구가 원한 것처럼 자연이 그 주인이 되어가는 현상이 보인다. 뿌연 황사와 매연으로부터 맑은 공기의 질이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도시에서는 좀체 보이지 않던 동물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는 게 그 증거다. 이와는 반대로 정부는 시장의 흐름을 원래대로 복구하기 위해 재난지원금을 마구 뿌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끝없는 생산을 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굴레라고 할 수 있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생산만을 강조하고 노동의 숭고한 의미를 잊은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철도원으로서 삼대를 이끈 가족사를 빗대어 노사분규, 노동투쟁, 무산계급 등 다소 진부하다고 느껴지는 구어(여기서 말하는 구어라고 하면 한때 유행처럼 번져갔던 옛 세대에서 자주 쓰였던 단어를 의미한다.)들이 나오는데, 이걸 1대 이백산부터 4대 이진오까지 이어져 오는 어느 한 가족의 연대기를 보면서 퇴색해 가고 있는, 아니 진부하다고 생각한 단어들을 다시 떠올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여기에는 과거의 사회병폐가 고스란히 지금도 잔존하고 있고, 오히려 더 심각하게 부풀려 역사의 딜레마를 덧씌우고 덧씌워 장악하려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음을 상징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진오는 굴뚝농성을 시작으로 자신의 조상들로부터 이어져오는 노동의 의미를 큰 할아버지 이백산, 할아버지 이일철, 작은 할아버지 이이철 그리고 아버지 이지산의 역사적인 경험을 우리에게 신랄하게 전해준다. 일제 강점기 때 식민으로서 노동의 착취를 이백산과 이일철, 이이철의 목소리로 들려주면서 노동의 고통과 숭고함을 부각시키고, 이이철이 사회주의에 물들면서 노동투쟁을 이끄는 대목에서 가제본의 막이 내린다. 실제 원본은 육백페이지가 넘기 때문에 뒷이야기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또한 꿀 팁이 하는 있는데, 르 끌레지오의 혁명가족사와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가족사를 비교하는 것도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가족 구성원들이 화자가 되어 파란만장한 인생을 이끄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전쟁과 노동이라는 주제 면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이념의 문제를 논하지 않을 수 없는데,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등 무수히 많은 이념들이 나오지만, 진정 인간을 위한, 인간의 행복을 위한 이념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어느 한 특권계층(봉건제, 공상당, 파시즘, 나치즘의 일부 계층 등)의 노리개로 전락한 경우가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셈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실수를 두 번 다시 할 필요가 없음으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면 도달점은 없을까. 이 세계에는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진정한 사회주의는 없을까.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모델이 맞는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분단체계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들 한다. 통일이 되어야 이념전쟁에서 벗어나 유럽 그 이상의 복지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수긍하면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 다음에 시간을 가지고 변화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온 우리의 결과다.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끔씩 나아져간다.” 황석영의 말이다. 혁명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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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2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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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체력과 함께 감정 소모가 많다. 서사가 긴 그녀의 장편을 끝가지 종주하려면 산을 오르듯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주인공들의 갈등에 휘말려 감정소모가 고갈됨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농밀한 감정표현에 몰입하다보면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는데, 그건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체험이 될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표현을 글로 모두 쏟아낸 듯.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여운이 깊게 남았다. 소감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가족의 사랑이 위대한 승리를 이끌었다.’라는 문장이다. 칠년 동안이나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고 극적인 해피엔딩의 결말로 이어지는, 이 가족의 분투기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다. 그 다음으로는 성장용서라고 단어다. 크레시다의 성장은 이 소설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부모한테 사랑을 못 받는다고 스스로 느끼면서 언니 줄리엣을 시기하는 독특한 캐릭터로서 언니의 피앙세인 브렛 킨케이드를 사랑한 나머지 상상할 수 없는 끔직한 세계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가족과 브렛 킨케이드를 비극으로 몰아갔고 상실의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픔의 늪에서 벗어나면서, 아니 벗어났고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 육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을 함께 이루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용서인데,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크레시다가 말했다. 언니 날 용서해줄래?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용서할 게 어디 있어.‘

 

그녀의 말처럼 줄리엣은 동생을 미워하면서도 마지막에서는 용서를 했다. 가족의 사랑이 미움을 잠재우고 용서로서 승화하는 장면을 보면서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이 소설은 긴 서사 속에 다양한 주제가 나오는 게 특징이다. 가족, 전쟁, 종교, 심리, 철학 등 소설의 주제가 될 만한 내용들이 마치 종합세트처럼 쫙 펼쳐진다. 가족의 갈등은 기본이고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와 철학의 사상과 개념들, 그 중에서 인물간의 심리묘사는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표현의 집합체라고 부를 만큼, 주인공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네들의 속내를 엿듣는 것 또한 이 책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소설 속 사건의 전개 또한 시간 순이 아니고 경계선이 없이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교차된, 거기에다 화자가 장마다 바뀌는 형식의 플롯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독서의 지루함을 없애주면서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점이 장점이다. 그렇지만 2도피장은 과연 이 많은 페이지가 필요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너무 길어 이 소설의 흥미를 잃게 하는 단점도 보였다. 하지만 새버스 맥스웨인이라는 인턴을 투입시켜 한 소설 안에 두 개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주었고, 끝에 가서는 이 사람이 저 인물이었구나 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이 또한 작가의 탁월한 필력이 아닌가싶다.

 

에필로그를 보면 나의 새로운 삶. 내가 되찾은 인생. (중략) 수감되어야 할 사람은 크레시다다.’라는 문장에서 크레시다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용서받은 사람만이 회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과거는 잊고 그녀의 새로운 삶, 되찾은 인생에 권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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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불을 - 한 걸음만 버텨줘
정회일 지음 / 열아홉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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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을 원한다. 주도적으로 이끌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은 유토피아에 가깝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먼 시선으로만 보는 사람에겐 아직 먼 얘기겠지만 몸소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디지털노마드, 1인지식기업 등으로 인생2막을 시작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다. 성한 몸도 아닌 상황에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계기가 된 것은 독서를 통한 긍정적 사고였다고 말한다. 다독의 효과였을까. 독서는 뇌를 깨우고 사고의 깊이를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잠자고 있던 생각들이 툭하고 떠올라 예상치 않은 일을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만든다.


“질문이 곧 답을 찾게 합니다. 풀 수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자신만의 질문을 찾고, 문제를 풀어내면서 우리는 성장하게 됩니다.”


저자의 말처럼 독서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뜬금없는 질문이 난공불락의 길을 시원하게 뚫어주곤 한다. 그때 우리는 성장하게 된다. 고통 끝에 낙이라도 있어야지, 꼬인 매듭을 푸는데 신이나지 않겠는가.


사실 꿈을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대로 꿈을 접거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주춤거릴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자신의 선택한 길을 후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마냥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에서 걸어가고 있나요? 아니면 당신에게 계속 자극과 도전, 그리고 조언을 주는 곳에 뛰어들고 있습니까? 누가 먼저 불러주지 않습니다. 본인이 선택하고 도전하는 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내 길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위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이 책의 저자처럼 독서를 통한 긍정적 사고로 인생2막을 두들기는 것도 좋을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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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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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해결사 깜냥 환생한 뿡이

 

1년 전 고양이 뿡이를 입양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의 막내로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한 고양이었다. 그런 뿡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두 달이 되었다. 슬픔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문득 스치고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가슴에 뭔가 아련한 아픔이 남았다. 그러나 뿡이는 늘 우리 곁에 있었다. 누워있으면 배로 올라와 머리를 비비는. 그 모습이 생생이 떠올랐다.

 

그러한 슬픔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뿡이를 우리 집으로 입양할 쯤에 시골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저녁 무렵이었다. 뒤뜰마당 정자 어디선가 애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났다. 엄마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다. 간신히 그 애기 고양이를 구출해서 보니, 싸늘하게 식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그 고양이가 커서 엄마 고양이가 되어 어여쁜 아기들을 여섯이나 낳았다. 그 중에 둘은 이미 죽었고 나머지 넷과 함께 우리 집으로 잠시 오게 되었다. 인연이란 이런 것일까. 그 중에 하나를 다시 입양하게 되었다. 황토색의 작은 몸. 눈에 밟혔다. 뿡이가 환생해서 돌아왔다고 해도 다들 믿을 만큼. 우리 가족에겐 큰 선물이 될 터였다.

 

이 책을 그쯤에 받았다. 뿡이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뒤로 한 채, 이 책을 읽어 나갔다. 고양이 해결사라. 삭막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일을 해결하는 고양이 깜냥이. 근사했다. 만약 그런 고양이가 우리 곁에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파트에 갇힌 고양이 신세가 아니라 오히려 아파트에 갇힌 인간들의 메마른 감정에 활기를 불어 줄, 소통의 해결사 말이다.

 

동화라고 해서 어린이들만 볼 게 아니라 어른들도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와 같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에 손을 번쩍 들어 한 표를 행사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 냄새 나는 고양이 깜냥이. 환생해서 다시 우리 가족의 품으로 올,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은 새끼고양이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반가워, 뿡이,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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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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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슬픔이 오면 누구나 아프다. 죽음의 그림자가 일상에 먹구름을 몰고 온다. 그것도 갑자기 오는 슬픔은 난처하기 그지없다. 당황스럽고, 어찌하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뚫고 나갈지, 긴 터널의 순간이 원망스럽기까지 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다. 벌써 돌아가신지 30년이나 됐다. 이 책에서처럼 아버지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겐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하루하루 일에 몰두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점점 소홀해졌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틈은 영영 메꿀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픔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 사이는 벌어질 때로 벌어져 있었고, 가족이라는 한 울타리에 있었지만 남처럼 인식하며 살지 않았나싶다. 세월이 흘러 그때를 다시 떠올려본다. 아버지?

 

얼마 전에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1년 반 가까이 키운 이라는 고양이가 죽었다. 죽음은 갑자기 다가왔다. 예상치 못했고 준비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 우리 가족은 슬픔의 심연 속에 빠져 들었다. 지금도 새벽이 되면 이가 옆에 있는 것처럼 그 빈자리가 허전하다. 알람시계처럼 여섯시가 되면 침대로 올라와 두 발로 내 목에 기대면서 나를 깨웠다. 하물며 동물도 이럴진대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그것도 가족의 한 사람이라면 상실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소홀해진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아직까지 이런 생각을 깊게 해보지 않은 탓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틈새를 조금씩 메꿔갈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삶과 상실에 관한 고찰, 노년의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보며 든 감정을 섬세하게 기록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둘 잃어가며 언젠가 필연적으로 다가올 죽음이라는 운명의 무게를 실감하고 중년이 되어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저자의 진솔한 고민이 담겨 있다. 여든둘의 나이에 세 번째 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이언 맨처럼 힘있게 누구보다 활기찬 일상을 보내는 아버지 앞에서 저자는 나이에 관한 고정관념을 서서히 버리고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저자는 아버지와 관을 만들면서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만한 생각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죽음이 찾아오길 기다렸다는 사실을 저자는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사랑을 베풀었던 어머니가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늙어감과 죽음이라는 운명에 초연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저자는 차츰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매일 살지만, 매일 조금씩 죽어 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떠난 후에도 곁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우리를 살게 한다. 이 느낌은 소중한 이를 떠올릴 때마다 각별한 마음으로 되살아난다. 영혼의 집짓기는 삶뿐 아니라 죽음도 함께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고 오은 시인은 이 책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오은 시인의 말처럼 아버지는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볼 수는 없지만 매 순간 느껴지니 말이다. 삶에 겨웠던 아버지, 이제 편하게 지내세요. 저도 잘 살게요.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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