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시지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2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조이스 캐럴 오츠.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체력과 함께 감정 소모가 많다. 서사가 긴 그녀의 장편을 끝가지 종주하려면 산을 오르듯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주인공들의 갈등에 휘말려 감정소모가 고갈됨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농밀한 감정표현에 몰입하다보면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는데, 그건 직접 읽어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체험이 될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표현을 글로 모두 쏟아낸 듯.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여운이 깊게 남았다. 소감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가족의 사랑이 위대한 승리를 이끌었다.’라는 문장이다. 칠년 동안이나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고 극적인 해피엔딩의 결말로 이어지는, 이 가족의 분투기는 ‘가족의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다. 그 다음으로는 ‘성장’과 ‘용서’라고 단어다. 크레시다의 성장은 이 소설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부모한테 사랑을 못 받는다고 스스로 느끼면서 언니 줄리엣을 시기하는 독특한 캐릭터로서 언니의 피앙세인 브렛 킨케이드를 사랑한 나머지 상상할 수 없는 끔직한 세계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가족과 브렛 킨케이드를 비극으로 몰아갔고 상실의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픔의 늪에서 벗어나면서, 아니 벗어났고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 육체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을 함께 이루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용서인데,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크레시다가 말했다. 언니 날 용서해줄래?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용서할 게 어디 있어.‘
그녀의 말처럼 줄리엣은 동생을 미워하면서도 마지막에서는 용서를 했다. 가족의 사랑이 미움을 잠재우고 용서로서 승화하는 장면을 보면서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이 소설은 긴 서사 속에 다양한 주제가 나오는 게 특징이다. 가족, 전쟁, 종교, 심리, 철학 등 소설의 주제가 될 만한 내용들이 마치 종합세트처럼 쫙 펼쳐진다. 가족의 갈등은 기본이고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 이를 극복하기 위한 종교와 철학의 사상과 개념들, 그 중에서 인물간의 심리묘사는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표현의 집합체라고 부를 만큼, 주인공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네들의 속내를 엿듣는 것 또한 이 책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소설 속 사건의 전개 또한 시간 순이 아니고 경계선이 없이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교차된, 거기에다 화자가 장마다 바뀌는 형식의 플롯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독서의 지루함을 없애주면서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는 점이 장점이다. 그렇지만 2부 ‘도피’장은 과연 이 많은 페이지가 필요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너무 길어 이 소설의 흥미를 잃게 하는 단점도 보였다. 하지만 새버스 맥스웨인이라는 인턴을 투입시켜 한 소설 안에 두 개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주었고, 끝에 가서는 이 사람이 저 인물이었구나 하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이 또한 작가의 탁월한 필력이 아닌가싶다.
에필로그를 보면 ‘나의 새로운 삶. 내가 되찾은 인생. (중략) 수감되어야 할 사람은 크레시다다.’라는 문장에서 크레시다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용서받은 사람만이 회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과거는 잊고 그녀의 새로운 삶, 되찾은 인생에 권투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