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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한 줄 - 선인들의 묘비명을 통해 읽는 삶의 지혜 30
이하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7년 3월
평점 :

요즘 의학도 많이 발달하였고, 세상도 과거에 비해 좋아졌으며, 수명도 점차 늘어나고있어,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게 되어가는것같다.
죽음이란 나한테 아직은 멀리있으며, 나한테 오지 않을것이며, 아직 올려면 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데 띠지를 보고, 이 책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안 다음, 저자의 나이를 보면, 아직 저자는 이러한 생각을 가질정도의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저자는 처음부터 말해준다.
그리고 그 부분을 읽게 된다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삶과 죽음과 묘비명에 대해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는 계기를 준다.
저자는 열여섯살에 맹장염에 걸린적이 있다. 하지만 가족과 생계에 부담을 줄까봐 그 아픈것을 꾸욱 참고 지내왔다. 그러다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고말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아버지의 등에 업혀 응급실에 실려가게되었고, 대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저자는 중환자실에서 옮겨져 깨어난다.
사실 난 복막염이 위험한건 알고있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을꺼란 생각은 해본적이 없어서 다시 그 위험성을 이 책을 통해 배우고 깨달았다.
중환자실에서 보름동안 지내야했던 저자에게 수술로 인한 아픔보다도, 병실에서 왔다 조용히 사라지는 빈자리를 보는게 더 아팠다.
멀쩡한 신사같은 분이 들어오시고, 점차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몇일도 안되서 비워지는 자리.
어린나이에 병실에 있으면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해 애틋하면서 더 깊이있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인생의 마지막 한 줄이라는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의 그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서른명을 뽑았다.
그 서른명의 선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생애에 대해 자세하게 적혀져있으며, 선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 볼 수도 있다.
마지막 순간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묘비명을 왜 그렇게 적었는지, 묘비명에 담긴 뜻과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적혀져있다.
처음에 각각의 선인들의 명언이나, 묘비명이 크게 적혀져있으며 주제처럼 시작한다. 그리고나서 묘비명의 선인의 생애를 시작으로 마지막에는 묘비명에 대해.
그리고 저자도 자신의 생각이나 느낀점등을 같이 말하고 공유한다.
단순하게 묘비명만 띡하고 적혀져있지도 않고,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서도 나와있어서 위인전을 읽는것같은 기분도 느껴졌다.
읽으면서 지금 살아가는 삶이라는게 영원히 지속되는것도 아니며, 죽음에 대해서도 너무 부정적이게 다가가기보다는 다른 이면을 바라보도록 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30명의 인생 선배이자, 멘토분들의 묘비명을 보면 하나같이 다 각자의 인생과 삶에 비춰져 적혀져있기에 많은걸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살고있는 세상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있게 만들며, 그동안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내 묘비명을 어떻게 써야할지를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내 인생을 통틀어 마지막 한 줄을 남겨야하는데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보니, 두가지가 떠올랐다.
먼저, 첫번째로 그동안 살아온 내 삶에 대해 다시 천천히 되새겨보고, 되돌아보는것이다.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책 속에 나온 인생선배들의 이야기와 묘비명을 통해 배우고, 익히고, 깨달은것들을 내 삶에 적용시켜보는건 어떨까 싶다.
p64~ 일단 시작하자. 그리고 반복하자.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아는 선인들도 있었고, 모르는 선인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묘비명도 와닿고,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와 묘비명이라서 궁금하기도 해서 읽어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상실의 시대라는 책으로 학교의 도서관에 비취된 순간부터 많이
접하고,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권이상은 읽어본 작가이기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작품을 보면 그의 글쓰기와 문장력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다들 그를 보고 천재가 아닐까하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는 천재가 아니다. 노력으로 지금의 경지에 오른것이다.
글쓰기와 달리기를 보면 어떤가. 서로 별로 연관이 없어보이고, 다르다고 생각이 들것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이 둘은 서로 다른 행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글을 더 잘 쓰기위해 하루도 쉬지않고 펜을 잡고 굴린다. 그리고 습관도 바꿔버리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몇시간이고 글을 썼고, 오후에는 달리기를 했다.
왜 달리기를 했냐면,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라고 한다. 난 놀라고 말았다. 글에 대한 열정, 글을 잘 쓸수 밖에 없는 이유가 타고남이 아닌, 노력에 노력을 더한것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크게 충격으로 왔다. 그를 세계의 반열에 올려놓은 상실의 시대란 책도 이러한 행동과 실천, 그리고 노력덕에 나오게 된것이다.
우리는 시작하는것을 주저하며 망설인다. 시작한다고해서 큰일이 나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 실패를 두려워서 그런게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실패할지, 성공할지, 아니면 반만 실패하고 반은 성공할지 그 누가 알겠는가. 아무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묘비명에 마지막에 적힌 문장을 보면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말한다.
이게 과연 무슨 말일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는 글쓰기와 달리기를 동일시하였다.
글쓰기도 달리기처럼 한문장씩 쓰는것을 멈추지 않았고,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쉬지않고 써내려간 글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거인으로 만들어진것이다.
나도 처음에 책을 읽고 설명하라면 머뭇거려도 말이기에 어떻게든 잘 말할 수는 있지만, 글로써 써내려가기에는 솔직히 힘이 들었다.
머릿속과 입에서는 맴도는데 그냥 적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리고 처음 시작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도 몰라서 여러번 고치고, 수정하고
다시 쓰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좌절하거나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글쓰는것에 지레 겁을 먹고 시작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이야기도 할 수없다고 말한다.
공감하는 말이다. 일단 시작해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