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위한 애도 수업
김현수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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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매일 힘듭니다.”로 시작하는 말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물론 말만으로 끝나는 책은 아니었다.

책은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연이은 사회적 참사, 학교 안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죽음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배려하고 사회적 지지로 나아갈 수 있을 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교사와 청소년의 마음 치유에 애쓰고 계신 김현수 교수님과 현직 교사인 위지영, 이윤경, 김대운선생님이 참여하여 함께 펴낸 책이다.


1부 슬픔과 애도 이해하기

-슬픔 이해하기/애도 이해하기/ 함께하는 애도/정상적인 애도 반응/ 발달 단계에 따른 슬픔과 애도/ 상황별 애도


2부 슬픔과 애도 실천하기

-슬퍼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의 말/ 학교 구성원 사망 시 애도 과정과 학교의 일/ 학교와 관련된 죽음이 발생했을 때 업무의 흐름 파악하기/ 죽음과 애도에 관한 교실 대화 나누기/ 애도 상담


슬픔에 ‘항복’해야 한다.p33

슬픔에 항복하고, 슬픔을 받아들여야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p43

충분히 슬퍼하지 않으면 결국 슬픔을 다룰 수 없게 됩니다.p43


애도의 여정에서 동반자가 해야 할 일


-애도자의 고통에 동참한다. 고통을 억지로 없애지 않는다.

-애도자와 함께 있는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마음으로 함께한다. 머리로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애도자의 애도 과정에 증인이 되어 준다.

-앞장서려 하지 말고 애도자와 나란히 걷는다.

-침묵한다.

-차분함을 유지한다. 분주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애도자의 혼란과 혼동을 존중한다. 질서와 논리로 통제하지 않는다.

-서로 배운다.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새로운 마음으로 대한다. 과거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섣불리 적용하지 않는다.



제발, 내가 슬픔을 극복했는지 묻지 말아 주세요.

나는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겁니다.


제발, 그 아이가 여기보다 더 나은 곳에 있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 아이는 내 곁에 없으니까요.


제발, 그 아이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아직도 그 아이가 왜 아파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발,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도 아이를 잃었다면 모를까요.


제발, 내 마음이 좀 나아졌냐고 묻지 말아 주세요.

사별의 아픔은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발, 그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은 당신의 아이가 몇 살에 죽으면 괜찮을 것 같은가요?


제발, 실은 우리에게 극복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저 당신의 마음도 아프다고만 말해 주세요.


제발, 당신이 내 아이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렇다고 말해 주세요.

그저 내가 내 아이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들어 주세요.


제발, 내 아이를 잊지 말아 주세요.


제발, 내가 마음껏 울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리타 모란, 부탁입니다



마음을 담고, 전하고, 모으는 과정에 대한 자세하고 구체적인 설명과 예시가 나와 있어 힘든 상황에 있는 애도자와 그를 지지하는 동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책이다.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읽고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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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길 - 양세형 시집
양세형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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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양세형씨가 시집을 냈다.

정말 궁금했다. 그의 말맛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글맛은 어떨까? 더군다나 시라니. 


“시라는 것에 대해 잘 모릅니다.


400점 만점 수능시험, 저는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었지만 88점을 받았습니다. 

사람도 삶도 여전히 답을 알아맞히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88편의 글을 용기내어 담아봅니다.”


출사표처럼 쓰여진 서문에는 겸손함, 재치와 함께 세상에 존재하는 평가방식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그의 재능이 담겨있다. 


<아빠가 해주는 

삼겹살김치볶음 먹고 싶어요>


걷다가 그냥 걷다가 

보고 싶어 눈을 감았어요.

오늘은 어제보다 더 반갑네요.


오늘은 약속을 취소해야겠어요.

계속 보고 싶어서

눈을 뜰 수가 없네요.


저를 그렇게 보고 싶어 눈을 감았나요?


이젠 저를 계속 바라보고 있겠죠?



<아빠와 아들>


비 오는 걸 유난히 좋아했던 아빠

비가 오면 먼지 낀 창을 한참 보셨죠.


신기하게 저도요,

비가 오면 창을 한참 봅니다.


그리고 떠올립니다.

아빠가 창을 바라보는 모습을요.


혹시 할아버지가 비를 좋아하셨나요?



「1부 지치고 괴롭고 웃고 울었더니」에는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워하는 시들이 가득 차 있다.. 꾸밈없이 써내려간 시를 읽으니 우린 누구나 자기 안의 작은 아이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신 없는 번호지만

지울 수가 없다.


“여보세요”를 듣기 위함이 아니다.


그냥.

그냥..

그냥…

-아빠 번호, p38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내 핸드폰에도 지우지 못한 아빠의 번호가 있다.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로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2부 내 힘이 되어줘」에서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고


「3부 짝짝이 양말, 울다 지쳐 서랍에 잠들다」에서 어른이 된 그 아이가 사랑을 겪고


「4부 인생에도 앵콜이 있다면」의 그 아이는 개그맨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세상을 살아낸다.



<코미디 빅리그>


듣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의 웃음소리요.


언젠가 잃어버린 저의 웃음은

당신의 웃음소리로 채워집니다.


듣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의 박수 소리요.


언젠가 잃어버린 저의 자신감은

당신의 박수 소리로 채워집니다.


듣고 싶은 게 있어요.

당신의 함성 소리요.


언젠가 잃어버린 저의 희망은

당신의 함성 소리로 채워집니다.


당신의 웃음은요,

당신의 박수는요,

당신의 함성은요,


우리를 꽃피웠답니다.


그런 우리는요,

당신을 꽃피우려 했답니다.


무대 위에서 바라보는 그대님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밭이랍니다.



재미있는 양세형씨를 양세형 시인님으로 따뜻하고 깊게 만난 경험이다.

특히 책의 곳곳을 꾸미고 있는 박진성 작가의 조각 작품이 시를 한층 더 다정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 시집을 덮는 순간, 내 안의 작은 아이가 토닥토닥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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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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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잠자리에 들면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은 죽는다 .당신은 죽고 내일 아침부터 다른 사람이 당신의 삶을 대신 산다. 그는 여러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모든 희망, 꿈, 두려움, 소망을 기억한다. 그는 자신이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전날 밤 잠자리에 들었던 그가 아니다. 당신은 겨우 오늘 아침부터 존재했을 뿐이고 오늘 밤 눈을 감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달라지는 점이 있을 까? 달라진 점을 눈치챌 수는 있을까?p19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키7이다.

미르가르드라는 행성을 떠나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 니플하임에서 소모품 역할을 하는 작업자인 익스펜더블.

익스펜더블은 항성 사이를 이동하는 동안 우주선 외부를 수리하거나 개척지 동식물에 노출되거나 필수 의약품 임상 실험에 참여하고, 적대적인 토착 생명체가 있으면 전투에 투입되는 등…새로운 개척지를 찾는 우주선에서 온갖 위험한 상황에서 기계보다 인간의 몸이 훨씬 더 오랫동안 견딜 수 있고 기계로는 할 수 없는 의학 실험 등에 필요하고 기계보다 교체하기 훨씬 쉬운 존재이다. 그야말로 소모품. 


미키 반스에서 시작해 미키2, 미키3,..6번의 죽음을 경험하고 일곱 번째 생을 사는 미키7.

이야기는 미키7이 일곱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다행히 크리퍼(개척지 생명체)에게서 벗어나 살아 돌아왔지만, 손실 처리된 자신 대신 재생 장치에서 복제된 미키8이 침대에 누워 있다.


미키7과 미키8은 공존할 수 없다. 둘 중 한 명이 죽거나 모두를 속여 둘이 공존하거나.

그렇다면 모든 기억과 인격을 똑같이 가지고 있는 미키7과 미키8은 같은 존재인가? 다른 존재인가? 


에잇은 왼손을, 나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우리는 손을 모아 쥐고 동시에 외쳤다.

“하나……”

“둘……”

“셋……”

“가위, 바위, 보!”

보를 말하기 전까지 나는 바위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나라는 사실이 생각났고, 그렇다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보자기를 내야겠지? 에잇이 이생각도 하고 있을까? 내가 보자기를 낼 거라 생각하고 가위를 낼 수 도 있다. 그럼 바위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결정을 바꾸기에는 늦은 마지막 순간이 왔고 내 손은 아직 주먹을 쥐고 있었다.p63


학교에서는 전쟁에 여러 이유를 붙였기에, 나는 인종이니, 종교니, 자원이니 정치 철학이니 하는 으레 시민전쟁의 원인이 되는 문제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료에 따르면, 이 전쟁이 시작된 이유는 까마귀와 비슷하게 생긴 토착 조류에게 지각이 있다면 그들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하는지, 먹을 만하다면 양념에 재웠다가 그릴에서 한 시간 동안 구워야 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p209


어이없으면서도 공감이 간다. 


서로 만나게 되었을 때 개척민들은 끊임없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성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시간. 시간이 열쇠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다.p372


책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 분쟁, 차별과 배제 등을 베이스로 상상을 나래를 끝간 데 없이 펼친다. 

곧 봉준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다고 한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가 봉감독의 손에서 어떤 영화로 탄생할 지 자못, 정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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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답게! 자기방어 수업 발견의 첫걸음 6
박은지(데조로)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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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방어의 궁극적 목표는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어릴 적 합기도를 비롯해 다양한 격투기를 배웠다. 다양한 생명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 2011년부터 자기방어 교육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초등학생부터 80대까지, 장애나 질환이 있는 사람을 포함하여 활발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자기 방어 수업의 세 가지 열쇳말로 ‘자기’, ‘방어’, ‘훈련’을 제시한다. 


  1. ‘자기’ 자기 발견을 뜻한다.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투명하게 몸과 마음을 바라보는 시간

  2. ‘방어’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연습

  3. ‘훈련’ 지난 경험을 떠올려보고 지금의 내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해보고 호신술을 배움.


책은 ‘자기방어 수업’의 교재이다. 한 단원씩 마무리가 될 때마다 연습을 할 수 있는 워크숍이 친절하게 실려 있다. 앎을 연습함으로써 지식의 체화가 가능하게 해준다.



1부 자기: 발견하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는 시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몸과 소통하여 나에게 숨겨진 힘을 찾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침착하게 대응하는 연습을 하는 시간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들의 ‘만들어진’ 몸을 보고 비교하며 몸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몸을 바꾸지 않는 사람은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정상과 보편을 나누는 기준이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사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비교는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들거나 혹은 ‘교’만하게 만든다. 이런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비교를 계속하는 장치로 TV와 같은 대중 매체 그리고 SNS가 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11778.html


페이스북 내부 연구진은 지난해 3월 내부 게시판에 올린 프레젠테이션 자료에서 “10대 소녀의 32%는 자신들의 몸에 대해 불만을 느낄 때 인스타그램이 더 비참하게 만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인스타그램에서의 비교는 젊은 여성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묘사하는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인식에 인스타그램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다.

앞서 2019년 연구에서는 “10대들이 불안과 우울 증가의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을 지목했다”며 “이런 반응은 연령대와 상관 없이 일관되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는 영국 사용자 중 13%는 자살 충동 원인으로 인스타그램을 지목했다고 밝혔다. 미국 사용자 중에서도 6%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다양한 이용자들의 게시물을 모아서 보여주는 ‘둘러보기’ 페이지가 이용자들을 유해한 콘텐츠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 연구도 있었다._2021.9.15. 한겨레신문



2부 방어: 우리를 지키기


직감을 이용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각 상황별 대응방법을 알려주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

자기 방어 훈련의 목표는 위험하거나 취약하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기술을 연습하고, 자신감을 높이는 것이다.



3부 훈련: 반복을 통해 능숙해지기

문제를 마주하고 경계를 세우면서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고 공동체에서 함께 협력하여 방어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


자기 방어 기술은 결투에서 승리하거나 남을 해치기 위한 기술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기방어는 나를 잘 돌보고,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평소 체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고, 잘 먹고, 자존감을 갉아먹는 고정 관념과 편견을 뽑아내세요. 일상을 건강하게,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 가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상황이 있다면 실제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세요. 힘껏 바람을 불어 막연한 두려움을 날려 버리는 겁니다. p145


스스로 힘을 가진 자가 되세요. 건투를 빕니다.


자기방어 수업이 필요하고, 친절하게 구성된 책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방어가 필요한 사회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래서 저자의 마지막 말인 “스스로 힘을 가진 자가 되세요. 건투를 빕니다.”라는 말이 왠지 슬프게 전해졌다.(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책의 삽화는 건강하고 당당한 캐릭터들이 자신을 지키는 씩씩한 장면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든든한 언니가 이렇게 지켜주려고 애쓰고 있으니!

부디 다들 아프지 말고 잘 살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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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 1 베어타운 3부작 3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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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책을 만났다.


『베어타운』, 『우리와 당신들』에 이른 『베어타운』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말을 너무 많이 하고, 노래를 너무 크게 부르며, 너무 자주 울고,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를 너무 많이 사람하는 그대들에게”


작가의 시작 글. 그대들은 책 속의 인물들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나이기도 하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앞 문장이 뒷 문장을 끌어당기고, 뒷 문장을 읽으며 앞 문장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대단한 이야기꾼에게 사로잡혔다. 


“단순하게 생각해.”

종종 인생의 어느 시점에 조언으로 사용되는 말, 베어타운과 헤드의 하키에도 적용되는 충고. 하지만 그 말은 ‘일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지 말라’는, 악한 의도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어린 여자아이의 입을 막고 그의 존재를 마을에서 제거함으로써 마을을 평온하게 만들고자 하는 소시민들의  ‘악의 평범성’을 보여준다. SDS!. 쏘고, 덮고 쉿!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많다. 베어타운과 헤드의 얽힌 관계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 편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전, 첫 장부터 인물관계도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우리는 도울 수 있는 경우에, 도울 수 있을 때,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는다.p41


사람들 말로는 나이를 먹으면 지혜로워진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경험만 쌓일 뿐이다. 그 결과 지혜로워지기보다는 시니컬해질 가능성이 더 크다. p53


위기가 닥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잠결에서조차 가장 중요한 걸 찾게 되어 있다. 타인의 숨결, 같이 박자를 맞출 타인의 맥박, 아이들 아빠가 어쩌다 한 번씩 딸이나 아들의 등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한다. 숨을 쉬지 않을지 모른다고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부모 노릇에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p61


우리는 어릴 때는 떠나보낸 사람을 생각하며 슬퍼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자기 자신을 생각하며 더 슬퍼한다. p195


여기 사는 우리 이야기는 모든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같다. 우리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는 당연하게도 거의 없다. 이야기들이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따름이다. 해피엔드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고 제발 거기만은 아니길 바라는 바로 그곳에서 끝나는 이야기도 있다. p323


“저는 작가보다는 우화나 동화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집어 든, 오직 당신 한 사람만을 위해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을 주고 싶습니다. 베어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강인한지, 자발적으로 척박한 곳에 살면서 그 자부심을 얼마나 누리는지, 그 사람들이 숲속에 살며 어떤 생각을 하고 마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위너』를 읽었을 때, 제가 이 이야기를 위해 저의 모든 것을, 100퍼센트를 바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_프레드릭 배크만


마지막 책날개의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야 그가 원했던 것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전히 그의 이야기에 빠져 있던 시간이었다.

남은 2권으로 따뜻한 겨울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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