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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미덕의 공동체 - 일상을 구축하고 삶을 재건하는 우리들의 평범한 힘에 대하여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독후기)<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평범한 미덕 그리고 미래>평범한 미덕의 공동체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묻다>
우리가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는 흔치 않다. 공동체는 우리 두 눈에 보이는 것도, 애타게 찾아 헤맨 어떤 성취의 결과물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공동체에 속해 있다. 우리 스스로는 오늘날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 자체로 매순간 공동체의 일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만나는 가족, 친구, 조직, 사회 등의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은 모두 공동체라는 틀속에서 형성되고 기반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듯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과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묻는다.
"여러분의 공동체(나라)는 누구의/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사실 공동체는 당연한 것도 영원히 고정된 것도 아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화는 민족간 평등과 경제적 결속의 확산 과정 ,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료는 전쟁뿐 아니라 그간 힘의 질서가 세계를 지배해 온 시대의 종언이기도 했다. 한동안 열강은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를 경제적, 정치적 모태로하여 땅따먹기하듯 경쟁적으로 민족이 민족을 침략하고, 삶의 터전과 물질절 토대를 빼앗는 행동을 일사았다. 이는 마치 '공동체(나라)의 주인은 힘있는 자의 것'이라 부르짖는 시대와 같았다. 그렇게 제국주의는 폭주하는 기관차였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시대의 폭주도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끝을 맞이하게 되고, 이후 자연스럽게 탈제국주의 및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며 오늘날까지 민족간 '평등'이라는 규범을 전세계에 확산시켜왔다. 현대 사회는 힘 없는 약한 민족에게도 평등의 개념은 적용되고 있으며 그것은 전세계가 제국주의적 침략 논리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보편적 세계윤리가 경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윤리의 규범화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와 경제적 결속의 세계화가 이룩해 온 성과라고 볼 수도 있다. 저자는 현대 사회를 규정하며 상징과도 같은 자유민주주의와 초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누리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물질적 풍요의 핵심이라 말하고 있다.
<21세기 공동체, 함께 살기와 나란히 살기 사이>
현대 민주주의는 특정한 세력이 힘을 장악하고 폭력을 가하는 독재로부터 대중을 해방시켜나가고 있다. 이러한 제도와 규범은 민족간의 침략과 갈등을 획기적으로 소거시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갈등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21세기 현대 사회는 내전과 같은 보다 지역적이고 민족내적인 갈등관계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이 책이 이야기하는 전세계 7개국의 도시 이야기는 그런 공동체들의 갈등과 화합에 대해 밀도있게 접근한다. 그중에서 잭슨하이츠, 로스앤젤레스, 리우데자네이루 등의 도시들이 드러내는 공동체의 정체성은 현대의 사회는 '다양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도시에는 국가, 인종, 문화를 초월한 다양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종교적, 민족적, 문화적 배경은 각양각색이다. 저자는 이들 도시들이 초다양성 사회를 잘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러한 각양각색의 배경을 넘어서서 공동체가 사람들을 융화시키고 화합한 결과는 결코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실 그들은 함께 살기가 아닌 나란히 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장소, 공간, 지역에서 같은 사회와 제도, 문화적 환경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들은 말그대로 공존하고 있을뿐이다. 이해와 협력이 아니라 각자의 이유로 그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서로의 목적아래에 각자가 살아갈 수 있게 서로를 허용하고 있는 게 보다 현실적인 모습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민족적 배경차는 위험으로 촉발될 잠재적 갈등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러한 갈등이 표면화 되지 않는 것은 그 사회가 경찰업무, 행정, 정치 등을 법과 제도를 통해 공동체내 사람들이 '나란히 살기' '공존'할 수 있도록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과 배경은 그에 따른 행동과 경험의 차이를 낳는다. 그리고 그 차이는 그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 경험을 한 사람을 본질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발생시킨다. 저자는 인간의 이러한 모습이 이성을 통해 융화하고 협력하고 이해하는 모습보다 본질적이라고 보는 것 같다. 만약,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오늘날의 다양성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과 생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중요함 딱 한가지는 잘 조직된 법과 제도 그것이 전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도덕규범의 층위, 평범한 미덕 vs 보편적 인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평범한 미덕의 공동체'는 민주주의 사회의 법과 제도가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해치지 않는 상황이라면 공동체내에 자연스레 생성되어 존재하는 협력의 가치를 말한다. 신뢰, 친절, 관용, 정직, 절제 등의 미덕은 지역, 사회, 민족에게 운명공동체의 상황을 보다 낫게 만드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특히나 그러한 가치는 잔혹, 부패, 권력욕, 증오와 같은 평폄한 악덕이 심각히 자리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필수적이었다.
이렇듯 평범한 미덕은 나, 나의 가족, 친구 그리고 이웃 사이를 결속시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미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21세기 세계각지에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갈등, 예를 들면 내전, 난민과 같은 보편적 인권 문제가 존재하며 놀랍게도 이러한 문제는 평범한 미덕과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
'민주주의의 진화는 인권과 함께 가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 기능은 분권과 상호견제이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독점하려는 소수의 독재자로부터 보호를 얻는 대신, 다수세력의 지배이자 그것의 옹호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책에 언급되는 보스니아, 미얀마의 사례가 이러한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오랜 민족적, 종교적 분쟁이 혐오를 낳고 무력 충돌을 빚어왔다. 지금도 보스니아는 공존하지만 결코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는 난민 문제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미얀마의 민족구성은 135개에 달하며, 그중 탄압을 받고 있는 로힝야족(소수 무슬림계)은 국가라는 테두리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도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배제와 억압에는 민족의 차이, 정치적 쟁점 외에 미얀마에서 90%를 차지하는 다수 종교인 불교의 소수종교인 이슬람교에 대한 탄압이 자리하고 있다. 미얀마에서의 로힝야족의 생존여건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난민 발생 또한 심각하다. 한 때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아웅산 수지가 로힝야족에 대한 버마민족의 탄압 앞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내 다수의 대중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이해와 소수가 아닌 다수를 선택한 결과물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이 책이 제기하는 최초의 문제의식과 마주한다. 미얀마(공동체)의 주인은 누구인가? 보편적 인권(로힝야 난민)보다 평범한 미덕(민주주의하 다수 세력의 공동체)을 앞세우는 미얀마 국민들을 어떻게 바라 봐야 할까?
저자의 시각은 미덕이 지역적이고 민족적인 것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보는듯하다.
인권은 우리에게 위험에 처한 낯선이를 바라볼때 도덕적으로 변함없이 보편적이 되라고 명령하지만 평범한 미덕은 항상 자기 집에서 가까운 시민쪽으로 유도하도록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이끈다고 말한다.
한 국가가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우선 공유한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건립유지 되고 있기에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자연적 우선권이 부여되었다고 믿는다.
우리는 각자의 피부, 각자의 역사, 각자의 인종, 성별 너머로 나아갈 수 없으며 이 모든 차이는 자부심과 수치, 지위와 권력의 원천이 된다고 말이다.
따라서 저자는 지역적 미덕에서 보편적인권으로의 도덕적 변화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그 변화는 현실적으로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 전망한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것은 법과 제도가 잘 갖춰 사람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도록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다. 당장 함께 살기까진 아니라도 공존과 나란히 살기가 유지되도록 말이다. 두려움의 시대에서는 평범한 미덕 그리고 더 나아가 인권은 설자리가 없다. 이 가치들은 안전 없이는 결코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생활에서의 평범한 미덕은 신뢰할만한 공공제도에 의존하고 있고, 그 신뢰가 형성된 상태에서만이 도덕적 변화의 시도들이 활성화되고 자리 잡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