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A.J.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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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전쟁,2차 세계대전의 기원]


개인적으로 전쟁사를 즐겨읽는 편은 아니다. 아마도 전쟁이란 두려움을 주는 대상에 대한 본능적인 회피성향 그런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1,2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도 단편적인 사건연대를 아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것도 상당히 개괄적으로만.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베트남전쟁사를 읽으면서 전쟁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단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전쟁이 발발하는 속성이 생각보다 허술?하며 그러면서도 그 결과의 책임은 책임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이며 뿌리깊게 상처를 심어 주기 때문이란 생각에서였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해선 자세히는 모르지만 히틀러라는 전범. 그의 악함에 대해선 익히 그리고 공히 들어왔던 터였다. 그리고 부흥까페에서 진행하였던 히틀러와 자본가 계급의 연결고리를 파헤친 책을 읽고 오래지나지 않은 터라 그 책이 <준비되지 않은 전쟁,2차 세계대전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도 자극하였다. 두 책은 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라는 큰 공통분모가 있지만 엄밀히 말해 같은 '결'을 지닌 책은 아니다.(이 책의 저자 A.J.P 테일러는 히틀러와 자본의 상관관계에 대해 상당부분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두 책은 우리가 2차세계대전의 원인과 결과에 있어 악의 화신이라 상정하는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심층적이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공통적으로 유익하다.

저자 A.J.P 테일러는 이 책에서 전쟁이 히틀러만으로 일어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우리가 히틀러에 대해 가져온 인식 틀 자체를 뒤엎는 것이라 사실 적잖히 거부반응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저자의 주장을 개인적이고 근거없음으로 폄하하기엔 그가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가로서의 태도와 접근방식엔 책임감과 진실성이 강하게 베여있다.
히틀러를 전쟁을 일으킨 악의 화신으로 규정하는 방법은 편하다. 전쟁의 상처를 지우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에도 괜찮은 처방?이다. 하지만 히틀러를 인류역사에서 다시 없을 악인으로만 치부한다면 우리는 누구도 그러한 악인을 어떻게 막을것인가에 대해 논의하지 않게 된다. 물론 저자는 이런 측면이 아니라 실제로 이 전쟁이 히틀러의 책임만이 아님을 끊임없이 논증한다. 그럼으로서 히틀러는 희대의 악인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속에 숱하게 보아왔던 권력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를 연구하는 그의 논리는 그 누구보다 다층적이고 분석적이다. 저자는 자신이 펼치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당시의 외교 기록과 히틀러의 공식 및 비공식 발언, 전후의 전범재판 기록과, 전쟁 이전과 전쟁 기간 내 주요국의 통계 지표를 치밀하게 인용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적 무정부상태가 위기를 초래했다는 일반적 인식,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의 분수령이 된 1937년 호스바흐 메모가 장기적 전쟁계획이라는 인식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병합과정이나 체코슬로바키아 위기는 히틀러의 계획이라기 보단 그가 이를 이용했다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저자 테일러는 역사학자로서 사건의 결과만이 아닌 그 과정에서의 숨어있는 행간의 맥락과 결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단 하나만의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그 몇가지들이 전체를 확실히 설명해 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간의 숨은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의 본질에 다가갈수있고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전쟁을 대하는 이런 태도는 비단 전쟁이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이루고 있는 모든 사회 영역에 필요한 태도이다.

사람들이 가진 확고한 신념만큼 바꾸기 어려운 것도 흔지 않을 것이다. 저자 테일러는 전쟁의 흔적과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시점에 이러한 인식체제와 태도를 견지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갔다. 시간이 많이 흐른 시점에서 이 책이 가진 역사적 오류와 잘못도 없진 않겠지만 역사가로서의 그의 역사인식방법과 태도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조명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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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국인의 삶
서영해 지음, 김성혜 옮김, 장석흥 / 역사공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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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이라는 이름의 무게.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그 마음의 무게를. 한국역사소설이라 밝힌 이 작품은 소설이면서도 소설 같지 않은 역사성과 시대인식을 품고 있다. 어쩌면 '한국 역사서'라 이름 붙이는 게 이 책의 내용과 형식을 가장 잘 정의하는 것일터지만 저자 서영해는 이 작품의 정체성을 한국역사소설이라 칭했다. 그것도 한글과 한자로 각각 병기하면서까지.

소설가도 아닌 사람이 "어느 한국인의 삶"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내고, 4개국의 언어를 사용하여 표지를 구성한 것은 분명 일반적인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이 작품을 읽어 가다보면 소설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생생히 담긴 '역사서'라는 확신이 점점 분명해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박선초'는 가상의 인물이고, 이 작품은 소설이다.
저자가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서까지 보이고자 했던 것은 박선초라는 인물 속에 20세기 초 한국인이 직면해야만 했던 삶을 생생히 녹여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사가 주목하지 않는 그 애끓는 삶을. 한 사람 한 사람이 견뎌야 했던 그 통렬함을.

일제가 침탈한 건 우리의 국토만이 아니라 한국인 고유의 심성과 독자적으로 형성해 온 정체성이었음을 고발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진 20세기 초 한국의 반상차별이라는 신분제도, 그 구시대적 인습이 여전히 온존하고 있었다. 박선초라는 상놈?을 통해 시대와 신분의 아픔을 정면으로 맞닥드릴수 밖에 없는 한 사람의 삶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역사서의 면모를 띄고 있지만, 한 인물의 구체적 삶을 통해 표현됨으로서 역사에 진실성이 부여되고, 그러한 삶에 대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조국의 시련앞에 서영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서영해의 이러한 의지와 노력은 어느정도 결실의 열매를 맺은 걸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1929년 출간된 이 소설은 1년 만에 5쇄까지 간행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극동아시아 그중에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 사는 사람의 삶은 매우 생경한 것이었을진 몰라도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그 어떤 역사 사료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통의 역사사료 처럼 사건과 역사의 기록이 나열된 것이 아니라 박선초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고 전지적자가 시점의 저자 자신을 통해 그가(개인) 생각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1920년대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생생한 '감정'이 잘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은 역사적 맥락으로만 파악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면이 있다. 서영해라는 인물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알리고자 했던 한국과 한국인의 삶이 2020년 해방된 조국에 살고 있는 현대 한국인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건 그때를 살아간 이들이 느낀 감정이 우리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이자 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감정임을 직접적으로 전해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속에는 시대와 삶을 살았던 그 마음과 감정의 무게가 오롯히 담겨있는 것 같아 그 어떤 역사서보다 애달프고 또 뜻있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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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빗 - 내 안의 충동을 이겨내는 습관 설계의 법칙
웬디 우드 지음, 김윤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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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기)[애쓰는 마음에 이별을 고하다.]_해빗_웬디 우드_다산북스








[애쓰는 마음에 이별을 고하다.]​



애쓰는 마음들을 볼때면.. 그저 늘 응원하고 싶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구조를 딛고서 노력하는 마음이 그렇게 안타까워 보였다. 영화나 소설을 볼 때도 그런 캐릭터에 끌렸고 스스로에게도 '내 의지와 노력이 성패를 가른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고 또 다짐했다.

이 책 해빗은 그러한 믿음에 근거없음을, 아니 사실이 아님을 파헤치고 있다. 평소의 신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어서인지 몰라도 철저한? 경계심을 가지고 읽어나갔지만 결국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인간의 행동중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43%나 차지하고 이 습관의 영역을 잘 설계하는 것이 목표달성의 핵심이라는 것이었다. 절제력과 노력으로 무장한 인내는 꾸준히 지속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선언하는 것 같았다. 인간의 노력이나 의식적인 사고활동은 '숫자가 정해진 기마병을 동원하는 것과 같다. '는 말이 특히 와닿았다. 의식적인 노력은 일시적으로 가능해도 그로 인해 소모된 기마병은 의식적 절제력뿐만 아니라 다른 사고 활동의 여력 마저 뺏어간다는 것이었다.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인간행동영역에 대한 분석과 연구결과들은 저자의 주장에 탄탄한 논리구조가 되어주었고, 그 폭풍처럼 몰아치는 생경하고도 논리적인 인식앞에 무릎꿇지 않을수 없는 느낌이었다. 평소 자기계발 서적을 즐겨읽는 편은 아닌데 여타 자기계발류에서 엿보이는 장밋빛 같지만 나와는 동떨어진,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 처럼 주장하지만 누구의 것도 아닌 실체없는 책과는 거리가 있었다. 여려형태로 진행된 연구분석과 수십년간의 실험 조사활동 결과는 내가 가진 작은 신념에 비할 바가 아닌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제력이 좋은 사람 또는 목표설정과 성과를 잘 이뤄내는 사람도 사실 그것이 의식적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를 43%의 습관영역으로 잘 배치해 자동화되게끔 설계를 잘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웠다. 그런 사람들은 습관이라는 자동화시스템의 적인 의식적 자아가 고개를 펼칠 수 있는 여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게 아니라 상황과 조건을 조정해 먹을 것이 눈앞에 띄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좋은 습관의 방해가 되는 마찰력을 제거하고 잘 이용했다. 우리가 절제력이 강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엄밀한 의미에서 조금 달리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의지박약인 나를 탓하기 보다 노력없이도 스스로 움직이는 습관영역으로 나를 둘러싼 상황을 재설계 할 것을 이야기 한다. 의식하는 자아는 모든 자동화 습관의 적이다. 운동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매일 운동할 수 있는 건 운동 앞에 아무런 의식적 자아도 개입하지 못하는 여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형성된 조건들이 틀어지기 시작하면 의식적 자아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그 자아는 차츰 나의 습관을 무너뜨린다.








좋은 습관이 일상에 뿌리 내리게 하려면 습관도 설계가 필요하다. 의식적 자아가 고개 들지 못하도록. 이 책에서 말하는 습관 설계의 5법칙은



《1. 주변 상황을 나를 중심으로 재배열하기. 2,

적절하게 마찰력 배치하기. 3. 나만의 신호 발견하기 4. 행동과 보상을 긴밀히 연결하기. 5.계속해서 반복하기(but, 반복 이상의 것)》



이 법칙은 '습관은 애쓰는 게 아님을, 습관은 우리가 처한 환경이 곧 힘' 임을 강조한다. 아주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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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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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외면 할 수 없는 글쓰기의 필연>


읽고나니 이해 할 것 같다. '쓰기의 말들' 부제로 "안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란 문구가 붙은 이유를. 읽기 전까진 여느 책들의 글쓰기 학습법(skill)과 비슷한 내용을 다룰 법한 인상을 받았다. 저자 은유는 책에서 "단문을 쓰세요." "행간을 살리세요"와 같은 좋은 글쓰기의 방법적 조언들을 숨기지 않는다. 허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저자의 표현을 살리자면 '삶의 구체성' 같은 것 말이다. 이 책엔 삶이 녹아있다. 글은 곧 삶을 드러내고, 우리네 삶은 글을 필요로 한다.

다음의 저자 고백은 독자로서가 아닌 불안하기만한 자아로 살아가는 나의 삶, 그 구체성을 알아주는 것만 같다.

"삶의 구체성을 벗어난 무책임한 비유가 아닌 일상의 구석까지 훑어 내는, 삶의 무자비와 세계의 인식불가능성을 순순히 인정하는 진짜배기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책은 글쓰기를 가장했지만 실은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지, 또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조차 잘 알지 못한다. 이 책은 그속에 피어나는 마음의 일들을 밝히고 만져준다. 저자가 풀어놓는 100여개의 글쓰기 이야기는 우리가 더이상 쓰지 않고 있을 수 없도록 만든다.

한 동안 책읽기에 몰두했다. 2019년은 유독 더 그랬다. 나 스스로를 알고자 하는 갈증으로 가득했고, 깊고 탄탄한 사유와 지식으로 내면을 채우고 싶었다. 연초에 정했던 독서 목표량은 초과 달성했다. 이 역시 처음 이룬 성과라 의미있었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은 여전했다. 독서는 지식보다는 이해와 성찰의 마음을 넓혀주는 것 같았다. 그 마저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읽기만을 위한 독서는 점점 나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책을 읽는 주체는 나인데, 실천이 동반되지 못한 인식들의 과잉이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나와 타인 그리고 그 관계를 알고 싶어 몰입한 책읽기가 어느 순간부터 되려 혼란이 되어 있었다.

'쓰기의 말들'은 읽기가 읽기로서 끝이 아니라 쓰기로 이어져야 함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주체가 되어 행하는 글쓰기는 자기 삶의 맥락을 만들어 낸다. 책을 통해 그리고 불안 투성이인 세상을 견더내며 얻은 생각과 성찰, 인식들은 글쓰기를 통해 삶의 맥락이 되고 그것이 내 삶을 변화시킨다.

쓰기의 말들은 글쓰기가 나의 삶을 오롯히 마주하고 인생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좋은 방법임을 느끼도록 한다. 저자나 책속에 인용문의 원작자들은 이미 수 없이 써왔고 지금도 이 순간도 쓰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쓰지 않던 사람이 더 이상 쓰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려워 질 듯하다.

글쓰기는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이 순간을 사는 우리는 필연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103가지 이야기에는 다른 작가, 학자 등의 글을 인용하여 표제처럼 붙여 사용하고 있다. 쓰기와 관련된 문구도 있고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경우도 있다. 책 속 글과 별개로 103가지의 인용구는 그 자체로도 좋아 따로 두고 보아도 좋은 내용들이다.
인상적이었던 인용구 3가지를 덧붙이며 마친다.

**영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진실되다면,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우디 앨런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신영복

**작가가 하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일입니다. - 수전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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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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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집자에게서 사람과 삶을 보다]




<영감자>

필자가 전하는 이야기에 흠뻑 매료 되는 순간이 독서가 주는 가장 참다움이 아닐까. 하지만 단순히 책의 내용이나 수준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책이 풍기는 느낌이나 가치관이 나의 취향과 딱들어 맞기는 결코 쉽지 않다.

'굿바이 편집장"도 첫장을 쉬이 펼칠 수는 없었다. 편집장도 아니며 편집장을 꿈꿔 본 적도 없는 독자에게 이와 같은 제목은 읽기도 전에 시간낭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진면목은 한번 펴서 끝날 때까지 쭈욱 내려 읽어 갈 만큼 흡입력에 있었다.

독자로서 나와 무관한 편집장이자 필자인 저자에게 매혹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책내용으로 설명가능할듯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영감자란 낱말. 알듯 모를듯한 이 낱말은 사전에도 나오진 않는 말이라고 한다. 저자가 이 낯선 영감자란 말을 예로든 것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저자인 정혜신, 이명수 부부가 서로가 서로의 영감자라 밝힌 사실에서 비롯한다.



영감자란 내 삶과 일에 힌트와 자극과 통찰을 주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깨뜨려주는 사람이다.

저자는 영감자가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가 즐겁고 재밌었다면, 게다가 기억하고 메모할만 했다면 십중팔구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저자는 30년간 편집자로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수 많은 영감자가 존재했음을 고백한다.

그 순간 독자인 나에겐 저자의 이야기가 어떤 책보다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이 이렇게 술술 읽히는 건 간결한 문장과 명료한 표현력 때문만은 아님이 분명히 느껴졌다. 저자가 풀어놓는 한계레 토요판 발행기, 제돌이 커버스토리, 베트남전, LGBT기획, 고노무현전 대통령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듯 느껴졌고, 그러고 보면 이전부터 하나같이 나의 생각과 관심이 오롯이 집중하게 만들었던 분야였다. 흔한 말로 이 책과 저자가 제대로 내 취향이었다 할까.!











<편집자를 꿈꾸지 않아도 좋은>



'말만 번지르르 한 사람이 되지 말자'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인생의 모토 같은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편집자로서 저자가 걸어온 길을 이 '모토'를 기준으로 들여다 보면 더 뚜렷해진다. 그는 이미 해오던 일 보다는 관습을 깨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행동하는 묵언수행자 같달까. 이 책이 편집자를 꿈꿔보지않는 독자에게도 이토록 강렬한 인상를 주는 것은 편집자 이전의 그의 삶 자체가 매력적이어서라고 생각한다.



특히 제돌이 커버스토리를 다룬 한겨레 토요판 이야기가 그랬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동등하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제돌이를 보았기 때문에 수없는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있는 인물이 아닌 동물을 커버 전면에 내세웠다.

제돌이가 몰고 온 동물권에 대한 이슈는 어마어마했다. 제돌이 논란이후 사회 전체가 동물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물론이고,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 기획기사에 지금까지도 유독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대선정국과 현안 기사도 물론 중요했지만 그것만은 따졌다면 제돌이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당시 제돌이 기사를 낸 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의 현안기사를 하나라도 기억하는가! 그 기사가 중요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현안이라는 이름 속 무수한 중복기사에 가려 문명의 흐름과 그 변화를 품고 있는, 당장의 생사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드러나지 못하는 일들이 그 자체로 가치 없음이 아니란 사실을 제돌이 기사는 스스로 증명했다.

그 어떤 현안 기사보다 제돌이 기사가 우리에게 지금까지 강렬히 남아 있는 건 단순히 소재의 재미나 흥미 때문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 관계, 우리가 놓치고 있던 그 관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바꾸려는 패러다임은 처음엔 하나 같이 어색하다. 어색의 차원을 넘어 논란을 부른다. 하지만 결국 그 논란을 타고 넘는다. 우려 섞인 시선과 반대의 이유를 저자 또한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과감히 전진했다.


이 책은 편집자를 다루지만, 편집자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어색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

자신의 문제를 주인의식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편집을 책임지는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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