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이라는 이름의 무게.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그 마음의 무게를. 한국역사소설이라 밝힌 이 작품은 소설이면서도 소설 같지 않은 역사성과 시대인식을 품고 있다. 어쩌면 '한국 역사서'라 이름 붙이는 게 이 책의 내용과 형식을 가장 잘 정의하는 것일터지만 저자 서영해는 이 작품의 정체성을 한국역사소설이라 칭했다. 그것도 한글과 한자로 각각 병기하면서까지.소설가도 아닌 사람이 "어느 한국인의 삶"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내고, 4개국의 언어를 사용하여 표지를 구성한 것은 분명 일반적인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이 작품을 읽어 가다보면 소설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생생히 담긴 '역사서'라는 확신이 점점 분명해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박선초'는 가상의 인물이고, 이 작품은 소설이다.저자가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서까지 보이고자 했던 것은 박선초라는 인물 속에 20세기 초 한국인이 직면해야만 했던 삶을 생생히 녹여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역사가 주목하지 않는 그 애끓는 삶을. 한 사람 한 사람이 견뎌야 했던 그 통렬함을. 일제가 침탈한 건 우리의 국토만이 아니라 한국인 고유의 심성과 독자적으로 형성해 온 정체성이었음을 고발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진 20세기 초 한국의 반상차별이라는 신분제도, 그 구시대적 인습이 여전히 온존하고 있었다. 박선초라는 상놈?을 통해 시대와 신분의 아픔을 정면으로 맞닥드릴수 밖에 없는 한 사람의 삶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이 책의 내용이 역사서의 면모를 띄고 있지만, 한 인물의 구체적 삶을 통해 표현됨으로서 역사에 진실성이 부여되고, 그러한 삶에 대한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조국의 시련앞에 서영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서영해의 이러한 의지와 노력은 어느정도 결실의 열매를 맺은 걸로 보인다. 프랑스에서 1929년 출간된 이 소설은 1년 만에 5쇄까지 간행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극동아시아 그중에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 사는 사람의 삶은 매우 생경한 것이었을진 몰라도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그 어떤 역사 사료보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보통의 역사사료 처럼 사건과 역사의 기록이 나열된 것이 아니라 박선초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고 전지적자가 시점의 저자 자신을 통해 그가(개인) 생각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1920년대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생생한 '감정'이 잘 녹아 있기 때문이다.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은 역사적 맥락으로만 파악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면이 있다. 서영해라는 인물이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알리고자 했던 한국과 한국인의 삶이 2020년 해방된 조국에 살고 있는 현대 한국인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건 그때를 살아간 이들이 느낀 감정이 우리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이자 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감정임을 직접적으로 전해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이 소설속에는 시대와 삶을 살았던 그 마음과 감정의 무게가 오롯히 담겨있는 것 같아 그 어떤 역사서보다 애달프고 또 뜻있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