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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편집장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평점 :
[어느 편집자에게서 사람과 삶을 보다]
<영감자>
필자가 전하는 이야기에 흠뻑 매료 되는 순간이 독서가 주는 가장 참다움이 아닐까. 하지만 단순히 책의 내용이나 수준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책이 풍기는 느낌이나 가치관이 나의 취향과 딱들어 맞기는 결코 쉽지 않다.
'굿바이 편집장"도 첫장을 쉬이 펼칠 수는 없었다. 편집장도 아니며 편집장을 꿈꿔 본 적도 없는 독자에게 이와 같은 제목은 읽기도 전에 시간낭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진면목은 한번 펴서 끝날 때까지 쭈욱 내려 읽어 갈 만큼 흡입력에 있었다.
독자로서 나와 무관한 편집장이자 필자인 저자에게 매혹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책내용으로 설명가능할듯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영감자란 낱말. 알듯 모를듯한 이 낱말은 사전에도 나오진 않는 말이라고 한다. 저자가 이 낯선 영감자란 말을 예로든 것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저자인 정혜신, 이명수 부부가 서로가 서로의 영감자라 밝힌 사실에서 비롯한다.
영감자란 내 삶과 일에 힌트와 자극과 통찰을 주는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고 깨뜨려주는 사람이다.
저자는 영감자가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가 즐겁고 재밌었다면, 게다가 기억하고 메모할만 했다면 십중팔구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저자는 30년간 편집자로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수 많은 영감자가 존재했음을 고백한다.
그 순간 독자인 나에겐 저자의 이야기가 어떤 책보다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이 이렇게 술술 읽히는 건 간결한 문장과 명료한 표현력 때문만은 아님이 분명히 느껴졌다. 저자가 풀어놓는 한계레 토요판 발행기, 제돌이 커버스토리, 베트남전, LGBT기획, 고노무현전 대통령 이야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듯 느껴졌고, 그러고 보면 이전부터 하나같이 나의 생각과 관심이 오롯이 집중하게 만들었던 분야였다. 흔한 말로 이 책과 저자가 제대로 내 취향이었다 할까.!
<편집자를 꿈꾸지 않아도 좋은>
'말만 번지르르 한 사람이 되지 말자'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인생의 모토 같은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편집자로서 저자가 걸어온 길을 이 '모토'를 기준으로 들여다 보면 더 뚜렷해진다. 그는 이미 해오던 일 보다는 관습을 깨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이었다. 행동하는 묵언수행자 같달까. 이 책이 편집자를 꿈꿔보지않는 독자에게도 이토록 강렬한 인상를 주는 것은 편집자 이전의 그의 삶 자체가 매력적이어서라고 생각한다.
특히 제돌이 커버스토리를 다룬 한겨레 토요판 이야기가 그랬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동등하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제돌이를 보았기 때문에 수없는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있는 인물이 아닌 동물을 커버 전면에 내세웠다.
제돌이가 몰고 온 동물권에 대한 이슈는 어마어마했다. 제돌이 논란이후 사회 전체가 동물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물론이고, 개인적 차원에서도 그 기획기사에 지금까지도 유독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대선정국과 현안 기사도 물론 중요했지만 그것만은 따졌다면 제돌이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당시 제돌이 기사를 낸 한겨레를 제외한 다른 언론사의 현안기사를 하나라도 기억하는가! 그 기사가 중요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현안이라는 이름 속 무수한 중복기사에 가려 문명의 흐름과 그 변화를 품고 있는, 당장의 생사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드러나지 못하는 일들이 그 자체로 가치 없음이 아니란 사실을 제돌이 기사는 스스로 증명했다.
그 어떤 현안 기사보다 제돌이 기사가 우리에게 지금까지 강렬히 남아 있는 건 단순히 소재의 재미나 흥미 때문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의 본질적 관계, 우리가 놓치고 있던 그 관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바꾸려는 패러다임은 처음엔 하나 같이 어색하다. 어색의 차원을 넘어 논란을 부른다. 하지만 결국 그 논란을 타고 넘는다. 우려 섞인 시선과 반대의 이유를 저자 또한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과감히 전진했다.
이 책은 편집자를 다루지만, 편집자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어색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
자신의 문제를 주인의식으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편집을 책임지는 편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