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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박스
표지율 지음 / 노란돼지 / 2023년 12월
평점 :

이 책에 나오는 빨간 박스는 최초에는 역 앞에 있던 공중전화 박스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역이었던 만큼 여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빨간 박스를 찾아온 이들은
기쁨도 슬픔도 표현하고, 즐거움도 안타까움도 표현했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빨간 박스는 그 모든 순간 함께 했다.
역에 있던 빨간 박스에 어느 날,
한 사람이 와서 공중전화를 가져가고 말았다.
빨간 박스와 공중전화는 하나라 생각했는데,
공중전화가 없는 텅 빈 빨간 박스는 이제 어찌 될까?
공중전화가 없는 채로 어느 강가 자전거 길에 놓이게 되었다.
자전거로 국토를 종주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인증 도장을 찍는 장소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딱히 그 용도로만 쓰인 것은 아니긴 했다.
태풍이 찾아오고 망가져 버린 빨간 박스.
사람들은 이를 고쳐서
이번에는 작은 도서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빨간 박스가
공중전화 박스든
인증 박스든
작은 도서관 박스든
빨간 박스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공중전화라
내가 아는 공중전화는 빨간색이 아니었는데...
오래전 공중전화 박스는 저 흑백 사진처럼 회색이었다.
그 시절 공중전화 박스는 내게 참 따뜻한 공간이었다.
남편과 결혼 전 멀리 떨어져 있던 터라
동전을 한 움큼 쥐고서 공중전화 박스를 찾았더랬다.
물론 뒷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되니,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한적한 곳에 있던
공중전화 박스까지 갔었고.
추운 날 전화를 걸어야 할 때는 공중전화 박스에 문까지 있으면 더없이 감사했다.
책에 나오는 빨간 박스는
우리나라 것이기 보다 오히려 영국의 공중전화 상징이었다,.
빨간 공중전화 박스는
1924년 건축가 길버트가 디자인 해 영국 전역에 보급했고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영국도 요즘은 빨간 공중전화 박스가 그 쓸모를 다해서 철거되기에 이르렀고,
한 기업이 나서 새로운 쓸모를 찾아주고 있다고 한다.
복원된 빨간 공중전화 박스는
공공시설, 공원 등의 전시품으로 팔렸고 두바이 쇼핑몰 등 해외까지 수출됐다.
개인이나 기업이 사간 빨간 박스는
박스 안에 미술 작품을 전시하거나 작은 커피숍으로, 수족관으로 꾸미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데,
공기질 측정기(934대), ATM 결합부스(710대), 전기이륜차 공유배터리 스테이션(111대),
휴대전화 배터리 대여소(103대)로 쓰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스마트폰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공중전화 박스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물건일 수 있겠다.
그러나 표지율 작가의 바램처럼
바뀌지 않는 건 없는 급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무조건 다 없애버리기보다 다양한 활용법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이 책을 보다가
이제 점점 구세대가 되고 있는 내가 이 빨간 박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전에는 내 이름으로 나를 찾는 사람이 참 많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난 후,
내 이름은 거의 불리지 않게 되었고
누구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로만 불렸던 것 같다.
직장도 없이,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이 없이
20 여 년의 시간이 훌쩍 흘러 흘러간 요즘,
다시 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빨간 박스의 바램..
딱 내 바램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제이그림책포럼 서평단에 뽑히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으나,
진심을 다하여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