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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조약돌 ㅣ Dear 그림책
질 바움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정혜경 옮김 / 사계절 / 2025년 4월
평점 :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표지에 매혹되었었다.
숲 속 길을 여러 개의 풍선을 들고 달려가는 사람의 모습
어두운 것도 같고, 밝은 것도 같아...묘했다.
처음 책을 펼쳐 읽었을 때, 당황스러웠다
'무슨 이야기이지? 왜 이리 안 들어오지?'
그림이 너무 강렬하여 글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랄까.
몇 번을 다시 보고, 다시 봐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글만 다시 타이핑 하여 보았다. 오롯이 글만.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작가인 질 바움.
질 바움이 쓴 책은 그동안 6권 정도 읽었는데, 모두 이해가 쉬웠었다.
특히 <자전거 타는 날>, <책으로 전쟁을 멈춘 남작>은 너무 좋아서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이 없이, 질 바움의 글만 떼어 읽으니
그림책이 아니라, 단편 소설을 읽은 느낌이었다.
호수도, 강도, 개울도 없는, 흐르는 물이 없는 마을.
그나마 있는 물은
늪, 못처럼 깊은 구덩이에 고여 있거나 진흙에 엉겨 있거나 진창 속에 잠들어 있는 마을.
못이 움직이지 않는 식인귀처럼 모든 걸 집어삼킨 마을.
깊은 권태가 전염병처럼 퍼져 말조차 가라앉은 마을.
어른들은 모두 기쁨의 환호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자란 마을.
그런 곳, 그런 마을이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침묵의 벗 삼아, 일만 하며 지내지만,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놀 거리를 찾는 모습이 인상 깊다.
어느 날 밤, 하늘에 불꽃놀이 같은 것들이 펼쳐지고,
마을의 어린 아이들은 그것이 뭔지 알고 싶고, 자기 눈으로 보고 싶어 수면 위로 올라가게 되고,
수면 위에서 웬 낯선 가족을 보게 된다.
허수아비 같은 차림의 수염이 텁수룩한 남자와 지친 여자,
여자의 무릎에 앉은 한 아이를.
침묵의 마을 아이들로서는
자신들과 다른 언어를 쓰고,
웃고, 박수치고, 노래하는 아이에
한번도 본 적 없는 물수제비뜨는 일을 하는 남자가 낯설긴 했어도
그리 개의치 않았다.
물수제비뜨는 남자에 매료되어 계속 더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
손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남자가 원하는 조약돌을 찾기 위해 아이들은 힘을 합한다.
줄무늬가 있는, 납작한, 가장 아름다운 조약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조약돌을 남자에게 건넨 아이들.
남자가 조약돌을 따뜻하게 데우고 비밀의 주문을 외우고,
힘껏 날려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조약돌은 질주했고, 둑에 도착하고서도 들판을 가로질러 끝도 없이 달렸다.
바다를 만나지 못할 바엔 차라리 터져 버리려는 강물처럼 못이 구덩이에서 넘쳐 흘렀다.
이 마을 아이들이 아직 어린 아이일 때,
남자의 가족을 만나고, 마술사같은 남자의 물수제비뜨기를 볼 수 있어
미소를 띄고, 웃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한 그들의 이후 삶은 틀림없이 달라질 것이기에.
그리고, 이 책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줄무늬가 있는, 납작한, 가장 아름다운 조약돌이
늘 그 마을에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절대로' '아무리 평평한 돌을 골라도' 성공하지 못하고 가라앉았지만,
남자는 바로 그 마을 조약돌로 물수제비를 시도했고, 성공했고,
아이들이 찾아준 조약돌로 대미를 장식할 만한 멋진 물수제비뜨기를 해냈다.
<물수제비 잘하는 법>이라는 연극이 있다.
각기 다른 인물들이 삶의 파도 앞에서 돌을 던지려 하고,
파도치는 바다를 향해 누가 물수제비를 던지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 파도치는 바다에서 몇 번의 성공을 맛보는 그런 내용이다.
도전해보지 않으면 바로 가라앉을지 성공할 지 모를 물수제비뜨기.
몇번의 실패로, 지레 짐작으로 도전하기를 포기한 이들과
될 때까지 도전해보는 이들 중 어느 편에 속할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한 번의 성공이라도 경험하게 되면 삶은 달라진다.
어둠과 빛처럼 180도 변화한다.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작가는 이 변화 전후를 어둠과 빛으로 그리고 있다.
그녀는 질 바움의 글을 기본으로 하여 마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
남자가 풍선을 가지고 왔다는 글은 없었는데,
남자의 손에 풍선들을 잔뜩 쥐여 주고는
그 풍선들이 불꽃놀이 같기도, 조약돌 같기도 아이들의 웃음 같기도 하게...
희망차게 그리고 있다.
그림 작가는 암울한 시간들이나 빛의 시간들에서도
사람들을 흑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빛을 더욱 강조하는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얼마 전까지 이 책의 마을처럼 암울한 시간들을 보냈다.
물수제비뜨기를 해서, 흐르지 않는 물을 요동치게 하는 것 같은 시간이 오면 좋겠다.
또다시 그 이전의 시간을 경험하고 싶지 않기에.
될 때까지 하다 보면 한번은 성공하리라.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면,
표지에서 풍선을 들고 달려가고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남자 같다.
들판을 지나 숲을 지나
깊은 구덩이에 있던 마을의 물들을 이끌고
바다까지 풍선을 들고 간 남자.
참, 내게는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들이 참 어렵다.
난해한 현대미술 같이 다가온다.
이 책 앞뒷 면지에서 보여지는 사슴, 토끼, 꽃은 작가의 전작 [잃어버린 영혼]이 생각나게 하는데,
이 책과 함께 [잃어버린 영혼] [잃어버린 얼굴], [바다에서 M] 등을 함께 보면
내가 그랬듯, 이해하는 데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제이그림책포럼 서평단이 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열심히 보고 또 보고 고민하며 작성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