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송 미래그림책 189
마리오 라모스 그림, 라스칼 글, 곽노경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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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그림책포럼의 서평단에 뽑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진심으로 느낀 것을 적었어요*



자책, 그 늪에 빠지다!



숲에서 가장 크고 가장 힘이 센 곰, 이름은 오르송.

이 객관적 묘사는 이어지는 '숲속 모든 동물이 오르송을 무서워했어요.'라는 말도

그럴 수 있겠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함께 그려진 삽화로 인해

오잉? 저 모습이 숲속 모든 동물이 무서워하는 곰이라고?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어요.

세상 딱 살기 싫다는 슬픈 표정으로,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호숫가에 서 있는 곰이 오르송이라니.

호수에 비친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일그러진 형체가

딱 오르송의 마음 같아요.



이 슬픈 첫 장면에 대한 의문을 풀 단서는 바로 뒷장에서 이어지는데,

숲속 동물들이 ‘함께 했던 숨바꼭질’ 때문이었나 봅니다.

놀이를 함께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것 같은데...

놀이하면서 일종의 ‘사고’가 일어났지요.



오르송이 가장 크고 가장 힘이 센 걸 알면서 술래였던 게 잘못이었을까요?

다른 동물들은 정말 오르송이 가장 크고 가장 힘이 세지만 힘 조절이 잘 안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오르송은 사실 평소에는 힘 조절을 잘했는데, 놀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실수한 걸까요?



각자에게는 모두 다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 딱부러지게

‘사고였으니 이해해 주자’ ,

‘힘들었다는 건 이해하지만, 같이 놀지도 않게 된 건 너무했어~’ 라고 말하기도 참 어렵다 싶어요.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 네가 당해보지 않아서 그래~’ 라고 토끼나 거북이가 말한다면...

‘가장 소중하고 멋진 뿔이 부러졌는데...뭘 이해하고, 같이 놀라는거냐’고 사슴이 말한다면...

에휴~ 트라우마처럼 잊을 수 없다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려나~ ㅜㅜ



사실 며칠 전에도 죽고 못사는 관계같았던 두 사람이 이젠 서로 안보는 사이가 되어

한쪽 분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친구로 지내는 동안 너무 힘들었다. 끊임없이 상처를 주면서도

자기가 상처준 줄도 모르더라. 그래서 관계를 끊는 게 좋겠다 판단했다.”

상대방에게 ‘이유’를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지만,

이유도 모른 채 주위의 사람들이 곁을 떠나간다고 어느 순간 인지하게 된다면

그 상대방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그렇다 보니~

곰의 태생적 문제라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긴 해도

그래도 다른 동물들과 멀어진 ‘이유’는 아는 게 어디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고 싶기도 합니다.

관계하다가 멀어진 경우, 대부분은 한쪽은 이유도 모를 때가 태반이니까.



이유를 안다한 들

숨바꼭질하다가 일어난 일들로 인해

이제 숲속 동물들은 오르송과 놀지 않고,

함께 놀 정도로 친근한 존재였다가

무서워하는 존재로, 꺼려지는 존재가 되고 말았대요.



숲속 동물들이 자신과 놀아주지 않자, 외로워졌고,

외로워진 오르송은 슬펐습니다.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아아아~~~ 가장 나쁜 방법인데...자책하는 거~

오르송은 사고를 친 자신을 자책하며...

늪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네요ㅜㅜ



이 우울을 벗어날 방법은 과연?????



겨울잠을 자고 나면 잊게 될 거라고 애써 맘을 잡는 오르송.

속상하거나 슬프다고 회피하거나 도망간다고 해결되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또 흔히들, 가장 많이 택하는 방법인 것도 참 아이러니한 사실이지요.

오르송은 가장 많이 택하는 방법 ‘잠’으로의 회피를 선택합니다.

마침 곰이기도 하니까.

겨울잠을 자고 깬 오르송, 역시 잔다고 잊게 되는 건 아니었어요.



독자입장에서도 오르송에게도 다행스럽게도

겨울잠에서 깼을 때, 달라진 게 아주 없진 않았어요.

오르송이 사는 굴 앞 큰 참나무 아래에

헝겊으로 된 아기 곰 하나가 앉아 있었거든요.


소리치고, 겁을 주고,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말하고, 가버리라고 하고.

자기 방어 기제를 제대로 발동해주는 오르송,

그러다가 서서히 헝겊으로 된 아기 곰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후, 많은 부분 삶의 변화를 보이는 오르송.

이를 지켜본 숲속 동물들은

다른 건 몰라도 오르송이 친구가 생겼고,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로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담담하게 이어집니다.

마치 ‘이게 진짜 현실이야~ 그동안은 너무 꿈속에서 살았어~’ 하는 것처럼.

이게 이 책의 매력일 수도^^



붉은색과 행복



벨기에의 극작가 모리스 마테롤링크가 1908년에 창작한 희곡 <파랑새>에서,

전하고픈 주제인...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이 책을 여러 번 보는 내내 그게 생각났어요.

이 책의 작가인 라스칼(본명 파스칼 노테)이 벨기에 사람이라서 그랬을까요~

<파랑새>에서는 ‘파랑새=행복’이었는데,

<오르송>에서는 ‘붉은색이 행복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르송이 우울하여 집(굴)에 앉아 있을 때 앉아 있던 방석은 붉은색이고,

겨울잠을 자고 나서 만난 것은 붉은색 옷을 입은 헝겊으로 된 아기 곰이고,

아기곰을 만난 뒤 집안에는 붉은색 꽃이 피어 있고,

붉은 방석을 베게 삼아 잠을 청하기도 하고,

청소할 때 쓰는 양동이도 붉은색이구요.

앞면지, 뒷면지도 온통 붉은색.

심지어 표지의 ‘오르송’ 글씨도 붉은색.



이쯤되니,

붉은색은 오르송에게 원래부터 있던 행복한 부분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작가님은 독자들에게 자신에게 있던 행복한 부분을 만나라고,

찾은/만난 행복과 더불어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헝겊 인형 아기곰은 자기 자신을 투영한 것일 수도 있고요.

출판사 제공의 책 소개를 보면,

오르송은 새끼 곰이라는 고대 프랑스어에서 유래되었다고 적혀있던데..

새끼 곰이라는 이름의 오르송과 헝겊 인형 아기곰.

그럴 듯 하죠.

가장 크고 가장 힘이 세도,

자신이 가진 것이 해할 수 없는

뭐라 하지도 않는...헝겊 인형.


“누군가 너를 잊었구나, 나처럼.”

“내가 보살펴 줄게.”

이 문장들 뒤로 이어진 여러 내용들로 인해

자책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데까지 발전했구나 싶어

덩달아 기분 좋아지긴 했어요.


헝겊 인형을 만난 뒤, '나는 이런 곰이야' 하고 자신에 대해 말하는 장면도 좋았어요.

"난 얘기하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즐거움도 슬픔도 나누기를 원한다고.



곰 오르송의 자기 인식을 보고 있노라면

붉은색은 숲속 동물들과 잘 지내던 시간(행복했던 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헝겊 인형과 아무리 좋은 시간을 보내도

헝겊 인형에게 생명을 줄 수는 없음을 깨닫고,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려는 오르송을 보면서

행복을 찾는 종국의 해답은 '함께' 밖에는 없는 건가 했지요.



‘함께’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나’처럼 ‘너’를 사랑하지 않고는

오래 지속되기 힘든 것이라

이제 ‘나’를 사랑하게 된 오르송이 힘을 내어

동물들에게 다가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함께 놀던’ 시간으로 돌아가자고 말해보았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오르송처럼 관계로 인해

상처 입고, 자책에 빠져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이

자책의 늪에서 벗어나 자신 안의 숨은 행복을 발견하고,

“내가 보살펴 줄게” 하고 손 내밀고, 손잡게 되길~

옆에 있어 줄 누군가를 만나게 되어

결국엔 '함께'를 회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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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서평도 아니고, 그저 횡설수설한 것 같지만,

이 책을 다시 읽게 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참 기뻤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르송 날 만나러 와줘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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