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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당신에게 - 외로움과 우정, 사이의 철학
엄성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우정을 떠올리면 나는 등산을 생각한다.
이 등산의 목적은 단 하나다. 낙오자 없이, 모두가 함께 정상에 다다르는 것.
정해진 시간도 없고, 반드시 따라야 할 루트도 없다. 누가 더 빠른지를 겨루는 규칙 역시 없다.
페이스가 빠른 사람은 앞서갈 수 있지만, 결국 모두가 함께 정상에 서기 위해 속도를 늦춘다. 그 느려짐은 때로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다.
체력이 약한 사람은 애초에 이 산에 오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닌 ‘함께 오르는 경험’에 의미를 두고 발걸음을 옮긴다. 체력이 남는 친구는 유난히 무거워 보이는 누군가의 가방을 대신 들어준다. 그 가방 안에는, 알고 보니 친구들이 함께 나눠 마실 물이 들어 있었다. 가장 무거웠던 짐은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다치는 사람도 생긴다.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고, 모두는 짐을 나누고 챙겨 온 비상약으로 치료를 돕고 부축한다. 잠시 짐처럼 여겨지던 친구는 막막한 갈림길에서 가장 안전한 길을 찾아낸다. 밝은 눈과 명석한 판단 덕분이다.
이처럼 각자는 부족함을 안고 있지만,
동시에 서로를 살리는 고유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함께 오른 정상은 혼자 올랐을 때의 정상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생각보다 모두가 함께 정상에 오르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풍경을 담는 마음은 더욱 충만해진다.
각자는 모두 다르지만, 함께여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저자는 우정의 관계적 측면을 통해 우리가 홀로이면서도 함께 잘 지낼 수 있는 다양한 사유를 보여준다. 책 속에는 여러 철학자들의 사랑과 우정, 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함께 담겨 있다.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바라면서도 그 관계에 쉽게 지쳐 버린다.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이해의 부재다. 이 책은 외로움, 고독, 그리움을 혼동한 채 살아온 우리의 관계 방식을 언어적 성찰을 통해 분리해 보여준다. 각 감정의 상태는 의미가 다르며, 그 정의를 이해할 때 우리는 관계 앞에서 기준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해답은 더 많은 연결이 아니라, 우정에 대한 재사유다. 여기서 말하는 우정은 친밀함을 넘어 서로를 바꾸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상대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 유연한 관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정이란 함께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그 ‘함께’가 얽힘이 아니라 균형에 머무는 태도임을 말한다.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사랑이나 우정이 결핍을 메우는 수단으로만 작동할 때, 관계는 생존 전략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우리는 상대에게 과도한 기대를 걸고, 결국 더 깊은 외로움으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틀어진 관계를 통해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관계 앞에서 어떤 태도로 서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사람은 혼자서 완성되지 않지만, 아무 관계로나 구원받을 수도 없다. 우정이란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받아들이며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는 사이의 철학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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