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8
공희경 지음 / 허블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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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 전이든, 10년 전이든, 오늘이든
시대에 대한 정의는 일곱 글자로 요약된다.
“이 암울한 시대에…”

이쯤 되면 세상이 문제라기보다 인간이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184페이지에는 인상적인 문장이 등장한다.
“받아들여. 같은 종족에 비극이 반복되면 그건 더는 비극이 아닌 거야. 그 종족의 생존 방식인 거야.”

인간이 생존하고자 선택해 온 방식이 결국 더 큰 비극을 초래해 온 것은 아닐까. 인간은 지나치게 연약한 존재이고, 모든 시도는 언제나 불완전한 상태로 시작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생존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 사이에서 다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한 세기, 10년, 일곱 글자, 184페이지. 숫자를 열거하면 이야기는 한층 또렷해진다. 허구는 실재처럼 느껴지고, 과학이 제시하는 해답처럼 구체적인 실체를 띠고 떠오른다. 이 책에서 반복되는 수의 열거는 허구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다시 현재가 되는 시대를 우리 눈앞으로 데려온다.

인간의 상상에는 한계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 상상이 글로 쓰여 읽힐 뿐인데, 어째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가. 아마도 상상의 산물 역시 인과에 따라 현재에서 비롯되어 움트고, 예견 가능한 세상의 비극을 미리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희경의 『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는 이미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총체적 서사다. 이 작품에서 상상은 도피가 아니라 인과의 연장선이 된다. 작가의 스펙트럼은 놀라울 만큼 넓어 독자를 다채로운 무대 위로 옮겨 놓는다.

모든 생명을 증발시키는 정체불명의 비 ‘움’은 어느 날 갑자기 세계를 덮친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이 있는 존재들은 우후죽순 사라지고, 생명들은 언제 깊게 패일지 모르는 싱크홀처럼 비에 삼켜진다.

재난 앞에서 인류는 생존을 위해 유전자 시술을 선택한다. 그 선택은 곧 신체의 차이로, 계급의 차이로, 문명의 분화로 이어진다. 살기 위한 기술은 다시 누군가를 배제하는 기준이 되고,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장치는 또 다른 폭력의 장치가 된다. 우리가 물을 정수해 마시고, 바이러스를 마스크로 차단하며, 햇빛과 어둠에 노출되는 시간을 계산하듯 소설 속 인류 역시 생존을 조건부로 관리되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인간은 정말 살아남기 위해 이 모든 선택을 해왔는지, 아니면 ‘살아남는다’는 명목 아래 너무 많은 것을 파괴해 온 것은 아닌지 묻는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주춤한다.

모든 역사는 언제나 겹겹이 쌓인 희생 위에 세워져 왔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끝없는 생존과 파괴의 반복 속에서만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변치 않고 끝내 가져가야 할 의미 또한 분명해진다. 우리는 때로 지켜야할것이 많아 살아남기위해 사랑을 미룬다. 희생의 강 위에 세워진 이 세계에서,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구원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사랑일 것이다.

** 최근 읽은 많은 책들 가운데 단연코 인상적인 작품이다. 작가의 이 끝없는 상상력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묻고 싶다. 그 상상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아름다운 문장과 필력 또한 대단하다.

서평에는 기한이 있고, 결국 한 번 읽고 써 내려가는 첫인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아마 이 책을 여러 번 다시 읽는다면, 숨겨진 더 많은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문장 속에서 한층 더 깊이 유영할 수 있을 것이다. 서평이 첫인상을 말하는 데서 그쳐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그 이상이라 했던가.
이토록 미래다운 세계를 모두에게 기꺼이 추천한다.

#몸덮세 #허블 #공희경 #SF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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