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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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다.
익숙한 장소다. 실재로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임에도, 나는 이곳을 알고 있다. 길을 헤매지 않고, 방향을 잃지도 않는다. 꿈속에서는 낯섦보다 기시감이 먼저 도착한다.

친구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사소한 일 하나를 두고도 과장될 만큼 진지해진다. 꿈 안에서 감정은 늘 부풀고 과잉되며 격동적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안전하다. 마리오처럼 높이 점프하고, 비행하듯 하늘을 날며,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히어로처럼 착지한다. 실패와 추락이 예정된 세계가 아닌, 언제나 회복을 전제한 세계처럼 미궁 속에서도 무사하다.

그곳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이자, 현실과 꿈이 겹쳐지는 얇은 막 위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과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공존하고, 시간과 논리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느슨해진다.

이렇게 파란만장하고 불가사의하며, 동시에 현실과 닮은 장면들이 겹겹이 포개진 꿈의 세계는 깨어남과 동시에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일상이란 세계는 견고하여, 무너짐 없이 원래의 질서를 회복한다.

나는 이 여정을 함윤이의 소설에서 본다.

이야기는 독자를 낯선 세계로 데려가지만 끝내 현실을 파괴하지 않는다. 잠시 균형을 흐트러뜨리고, 경계를 흐리게 만들고, 세계의 다른 층위를 보여준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를 무사히 돌려보낸다. 깊은 꿈을 건너온 뒤 아침의 방 안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함윤이의 소설은 불가사의를 통과한 후에도 세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나는 그녀의 옷장을 빌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낯선 이름으로 불리는 나는 남자를 사러 다니기도 하고, 귀신을 등에 업은 채 추억을 일삼으며 여행하기도 한다.

그녀의 소설은 현실과 환상이 너무도 유연하게 공존해, 소설 속 여백 어딘가에 버젓이 내가 서 있는 착각을 불러온다.

이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감각적이고 독창적이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의문을 품은 채 독자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문장들을 따라 꿈같은 여행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다시 익숙한 풍경 앞에 도착해 있다.

​감각적인 이동과 귀환의 리듬이 만들어내는 ‘낯섦’은 함윤이 소설의 인상적인 모티브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이야기마다 반복되는 ​모호한 경계에서의 여정은, 오늘 밤 잠자리에 들면 다시 이어서 꿀 수 있는 꿈처럼 우리를 기다린다.

자개장의 용도를 비밀처럼 공유한 우리는 그녀의 소설을 따라 어디든 넘나들며 환상을 통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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