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 과몰입하는 좌뇌, 침묵하는 우뇌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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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가장 난처했던 순간 중 하나는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몰랐고, 결국 단편적인 정보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소개를 마치곤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라는 존재를 향한 의구심은 내 안에 수많은 질문을 만들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행복이냐 불행이냐로 해답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그 질문들은 나를 성찰하게 했고 세계와 타인을 이전보다 조금 더 의미 있게 바라보게 했다.

이 책은 그런 질문을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건넨다.
우리가 ‘나’라고 믿어 온 자아와 의식이 사실은 좌뇌가 만들어 낸 해석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설명하는 기능을 맡은 좌뇌는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할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의심 없이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책에 등장하는 분리뇌 실험과 여러 신경과학적 사례들은 이 설명이 단순한 비유가 아님을 보여 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좌뇌 때문에 자신이 조종당한다거나 우뇌를 더 활성화시켜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어떤 대안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감사하게도 좌뇌와 우뇌가 모두 함께 있으니 말이다.

좌뇌가 언어와 분류를 통해 세상을 또렷하게 구획 짓는다면, 우뇌는 말없이 전체를 받아들인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감각, 직감, 분위기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감각을 흔히 ‘무의식’이라 부르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지만, 이 책은 그 침묵의 영역 역시 하나의 의식임을 말한다.

아울러 생각을 곧바로 현실로 믿는 순간, 삶이 지나치게 무거워진다는 사실도 짚는다. 어떤 순간의 생각에 과도하게 동일시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동양 사상, 특히 불교의 공(空)과 무아(無我)의 개념과 연결한다. 무언가를 규정하고 붙잡으려는 좌뇌의 습관 때문에 우리는 비어 있음과 침묵, 이름 붙일 수 없는 질서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판단과 결론을 서두르기보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여백을 인식하도록 돕는다. 삶을 경쟁과 증명의 장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과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며 『도덕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바퀴에 살을 끼워 넣지만,
바퀴 가운데에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이 마차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흙으로 그릇을 빚지만,
그릇 속은 비어 있고
빈 곳이 원하는 바를 담는다.

우리는 나무로 집을 짓지만,
살 수 있는 터로 만드는 것은
안의 비어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형체를 이루려 일하지만,
형체를 이루지 않은 것이 쓰임새를 만든다.

단단한 실체라 믿어 온 ‘나’보다, 그 주변에 놓인 더 큰 흐름과 여백을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조금 덜 경직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익과 경쟁에서 비롯된 긴장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재의 근심도 이전보다 덜 날카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틈에서 삶은 조금 더 유연하게 다가온다.

#뇌는어떻게나를조종하는가 #뇌과학 #북스타그램 #책추천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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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언어 - 연두빛사람들 조경가 인터뷰집
최영준 지음 / 안그라픽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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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의 시선에서 조경은 건축의 주변부에 머무는 요소였다. 건물이 있고, 사람이 있고, 그 남은 공간을 꾸미는 일. 잘 만들어지면 좋지만 없어도 일상은 돌아갈 것 같은, 일종의 옵션처럼 여겨졌다. <풍경의 언어>를 읽기 전까지 조경은 그런 의미에 가까웠다.

이 책은 그런 인식을 변화시킨다. 조경이 무엇인지 단정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조경이 왜 지금의 도시에서 더 이상 부차적인 요소가 될 수 없는지를 드러낸다. 도시의 땅과 식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계해 온 일곱 팀의 조경가 인터뷰는 결과물보다 그들이 땅을 대하는 태도와 사고방식에 집중한다. 책을 읽으며 조경을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도시를 ‘조율하는 감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건축과 개발이 도시의 주인공으로 기능해 온 동안, 조경은 늘 뒤편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해 왔다. 주택의 안마당 정원이 옵션처럼 취급되듯, 조경은 중요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는 성격을 지닌 분야였다. 하지만 이 책은 바로 그 성격 때문에 조경이 지금 더욱 필요해졌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끊임없는 긴장 속에 살아간다. 속도와 밀도, 소음과 경쟁 속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조경은 자연을 ‘보여주는 장치’라기보다 자연을 ‘들이는 방식’에 가깝다. 숲을 조성하고 나무를 심는 일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조경가의 말은 더 이상 조경을 미적 장식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조경은 도시의 긴장을 완화하고, 사람들이 자연을 감각적으로 다시 만나게 하는 통로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인터뷰에 등장하는 조경가들 역시 자신들이 아직 주인공의 자리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조경이 지금 막 주목받기 시작한 분야임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조경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 조심스럽게 말한다. 이는 자기 과시가 아니라 도시의 변화에 대한 관찰에서 나온 혜안이다. 건축과 조경, 도시와 자연을 분리해 사고하던 방식이 점차 한계에 이르렀다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다.

<풍경의 언어>는 조경이 왜 늘 한 발 물러나 있었는지, 그리고 그 물러남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왔는지를 보여준다. 풍경이 있고, 건축이 있고, 사람이 있듯이 풍경은 우리가 매일 통과하고 머무르는 삶의 배경이다. 그 배경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곧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된다.

이 책은 조경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주기보다 시선을 바꿔준다. 이제 도시의 풍경을 지나칠 때, 그 공간이 누군가의 깊은 고민과 노고의 결과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바라보게 될 것 같다. <풍경의 언어>는 조경이 왜 지금의 도시에서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는지를 조경가들의 대화를 통해 환기시키는 기록이다.

#풍경의언어 #조경가 #조경 #북스타그램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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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전쟁 - 두려움도 분노도 없는 AI 전쟁 기계의 등장
최재운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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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인간은 머뭇거리고 망설이며 고민한다. 선택이라는 문제 앞에서 인간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챗GPT에게 질문을 던지면 아무리 긴 문장이라도 삽시간에 읽어 내고, 수초 만에 즉각적인 답을 내놓는다. AI에게 ‘망설임’은 없다.

인간은 때때로 도덕적 판단 앞에서 행동을 멈춘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살려두는 이유는 “얼굴을 마주했기 때문에, 아이가 보였기 때문에, 이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것 같아서”처럼 지극히 인간적인 이유로 살상을 멈춘다.
AI는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그 인간성 때문에 잔혹해지기도 한다. 분노와 공포, 복수심, 편견은 판단을 흐리고, 때로 무차별적인 폭력과 학살의 명분이 되어왔다. AI는 감정이 없기에, 증오로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복수로 목표를 선택하지도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AI는 오히려 더 냉정하고, 더 윤리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인간은 기술 혁명과 함께 수많은 전쟁을 치러 왔다. 화약, 철도, 전신, 핵무기까지 기술은 언제나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왔다. 그러나 20세기까지 전쟁은 여전히 비합리적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선택이었기에 쉽게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21세기, AI를 기반으로 한 전쟁은 이 문턱을 급격히 낮춘다.

AI는 인간의 ‘무기’를 넘어 전쟁의 ‘행위자’가 되고 있다. 드론은 자율적으로 표적을 식별하고, AI 플랫폼은 전장을 지휘하며, 알고리즘은 공격의 효율성과 허용 가능한 피해를 계산한다. 전쟁은 더 이상 인간의 결단으로만 시작되고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있다.
AI 기술은 삶 곳곳에 스며들었고, 위험성을 인식한다고 하여 기술의 파장을 피할 수는 없다. 포문을 연 기술은 비가역적이다. 인간만이 싸우는 전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명백해졌다. 그렇기에 단순히 AI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전쟁의 주체·책임·인간성 자체가 어떻게 재정의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AI는 확률을 계산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경로를 제시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전쟁의 규모를 줄이고, 무차별적 살상을 억제하는 도구가 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AI는 그 판단의 결과를 살아내지는 않는다.

밤에 악몽을 꾸지 않고, 유가족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며,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죄책감이나 회한, 책임의 무게 앞에 서지 않는다. AI는 인간보다 더 ‘윤리적’일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비윤리적인 존재가 된다. 윤리를 계산할 수는 있지만, 윤리를 짊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AI 그 자체가 아니라, 결정권과 책임을 어디까지 위임할 것인가에 있다. AI에게 판단을 맡기되, 책임은 인간이 끝까지 떠안을 수 있는가. 효율을 선택하되, 그 결과에 대해 도망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누가 무엇을 위한 AI를 만들것인가.

이처럼 AI는 인류의 기술적 능력보다 윤리적 성숙도를 먼저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기술은 이미 준비되었지만,
인간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AI가 전쟁을 얼마나 바꾸었는지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변화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지를 자각하는 일이다. AI가 전쟁을 하면 더 정확해질 수는 있다. 어쩌면 더 잔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결정의 순간에 인간이 완전히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 책은 그 마지막 경계선을 우리 앞에 또렷이 그려 보인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전쟁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불확실과 불안이 내재된 세계는 여전히 전쟁을 지뢰처럼 품고 있다. 누구에게나 실제가 될 수 있는 전쟁을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가장 현실적으로 예측하게 하는 탁월한 책이다.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지금 단 한 권을 추천해야 한다면 이 책을 선택하고 싶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AI의 이면과 현재의 상황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최적의 시나리오가 이 안에 담겨 있다. 우리가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붙들어야 할 가치 또한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없는전쟁 #AI #과학기술 #북스타그램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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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
나규리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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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과 불안이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수인과 단아는 사랑에도, 관계에도 서툰 사람들이다. 이전과 다른 삶을 바라면서도 다르게 보일까 늘 먼저 움츠러드는 이들은, 각자의 삶이 시작된 자리 또한 달라 서로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다.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며, 같은 감정을 나누고 있음에도 이해에 다다르지 못하는 순간들이 쌓인다. 사랑했으나 출발지와 도착지가 어긋난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짧은 비행처럼 허공에서만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소프트 랜딩』은 사랑을 감당하기 어려운 삶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삶 안으로 들이는 일은 기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이미 많은 것을 잃어본 사람들에게 사랑은 위안인 동시에 또 다른 위험이 된다. 수인과 단아에게 남는 것은 언제나 어긋난 타이밍과 말해지지 못한 진심, 그리고 뒤늦은 자책과 후회다.

두 사람의 운명이 시작된 영종도는 도피처이자 유일한 선택지다. 멀리 떠날 방법도, 더 멀리 갈 의지도 없었던 이들에게 섬은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삶은 결코 동등하지 않다. 공항이라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두 사람은 같은 보안검색원으로 일하지만, 계약 구조에 따라 또다시 나뉜다. 처우는 다르지만 허탈과 무력함은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 소설은 사랑의 균열이 개인의 감정 문제를 넘어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간극 위에서 더 쉽게 벌어진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 앞에서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상공으로 향한다. 불안하고 서툰 비행이 부드럽게 착륙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고 만다. 수인과 단아의 사랑 역시 사랑만을 고민하기에는 삶이 팍팍해, 끝내 흔들리고 위태로운 결말에 이른다. 그것은 해피엔딩도, 완전한 비극도 아니다. 다만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아픈 현실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쉽게 닫히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이 내내 조금씩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이동하고, 형태를 바꾸며, 때로는 더 깊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만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붙들 수 있다. 수인과 단아가 겪은 이 비행은 이후의 삶을 견디게 하는 단단한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어떤 필연들은 지나고 나서야 그 필요를 알게 된다. 선택의 결과가 기대와 멀더라도, 그 과정에서 손에 쥐게 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것이 미련이나 자책, 혹은 후회의 모습일지라도, 우리는 완전히 부서지지 않는다. 다시 나아가는 힘은 자신 안에 존재한다. 『소프트 랜딩』은 그러한 삶을 부드럽고도 애틋한 문장으로 증명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덮고 나면 우리는 삶의 어디쯤에서 비행 중인지,
어떠한 착륙을 시도하고 있는지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비행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만들어줄 온기는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모두가 부드럽게 안착하는 사랑의 도착이 가능한 사회와 관계를 희망하며 수인과 단아를 마음으로 끌어안는다.

#소프트랜딩 #장편소설 #소설추천 #북스타그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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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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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분들의 총합이 이 책을 이룬다면, 그 수많은 논점 중, 내가 일부만을 이해했음을 먼저 밝힌다.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철학적 훈련과 사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꺼운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어나갈 흥미로운 지점은 많다. 그것은 꼭 이해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정의한다. 어떤 릴스 영상에서는 인간만이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길가에 핀 꽃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으니 생각을 내려놓고 그저 살아 있음 자체를 받아들이라는 조언을 전한다. 하지만 나는 그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무엇이 가능하고, 그 외 지구 생물들은 가능하지 않다는 사고는 이분법적인 동시에 전 지구적 합의에 의한 결정이 아니다. 그 생각을 정의 내린 것이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무엇도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에 오히려 해답이 가까울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다행인 사실은 이 사실 또한 인간 스스로 안다는 점이다.

이러한 포괄성과 복합성을 인정하는 철학적 사고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와도 관통한다.

인간은 동물이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우리가 동물임을 인간 스스로 정의 내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동물에 머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로 규정하고, 동시에 동물 이상의 무언가(이성,언어,정신)를 덧붙임으로써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정의해 왔다. 이 자기정의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에 온전히 들어맞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인간은 자연 안에 있으나, 자연을 설명하고 분류하고 해석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가 좋아하는 분류 작업, 우주, 지구, 자연, 생물, 인간, 동물, 식물을 나누는 수많은 학문들은 그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이지, 그것들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은 훨씬 더 넓다. 인간은 다 알지 못함으로 아는 것에서 멀어진다. 아는 것 이상으로 판단할 수 없고, 모르는 것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기 때문이다.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정한 것도, 그 경계를 그은 것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비판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설명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설명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으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인간이 세운 이분법과 위계는 자연과 다른 생명체의 입장에서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 내부의 복잡성을 증폭시키며, 인간이 자연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강화해 왔다. 가브리엘은 인간을 자연에서 분리된 예외적 존재로 세우는 것도, 인간을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환원하는 것도 모두 거부한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성찰하고 판단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결국 가장 오래된 철학적 질문 앞에 우리를 다시 세운다.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브리엘의 철학이 머무는 곳은 정의가 아니라 태도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완전히 알 수 없다면, 그 알 수 없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가 제안하는 것은 ‘무지의 윤리’다. 모든 것을 안다고 믿지 않는 겸손,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태도,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도덕적 인식 능력때문에 다른 생물들과 우리가 공유한 환경에 대해 책임이 있다.

우리가 누구이건, 무엇이건 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책에서 언급한 대목 중 한 부분을 옮겨 온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을 인간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이 속한 환경과 전 지구적 생명 전체로 확장해 읽을 때 이 문장은 비로소 온전히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에 확장된 의미로 수정했다.

“비극이 발생할 개연성을 낮추는 일, 최대한 많은 존재가 존엄하게 살고 죽을 수 있게 만드는 일, 사회적 정의의 원리를 통해 되도록 만인이 서로에게—인간은 물론 지구와 환경,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게—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각자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
―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유의미하다고 느낀다.”

#인간은동물이다 #철학 #마르쿠스가브리엘 #북스타그램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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