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
이상협 지음 / 드루 / 2022년 10월
평점 :

세금은 국가 발전과 복지제도를 위해 시민으로서 당연히 내야하는 거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국가에서는 어떻게든 세금을 더 걷으려고 혈안이었고, 국민은 세금을 어떻게든 적게 내려고 애썼던 것 같다. 과도한 세금이 실제로 국가 발전에 기여한 부분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저 권력자의 사익에 쓰인 사례도 많았을 테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국가의 유지와 발전에 세금은 필수적이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복지제도를 실현하고, 타국으로부터 자국을 지키려면 돈이 필요할 테니까. 세금은 인류의 발전과 함께 문화, 정치, 경제 등 다방면으로 영향을 끼쳤다. 문자가 쓰이기 시작한 것도 세금 때문이었다. 사람이 기억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에는 한계가 있었고, 인구수가 많아질 수록 직원의 봉급이나 임대료, 이자를 계산하는 것을 기억에만 의존해 처리할 순 없었다.
국가는 말로 운영될 수 없었고, 초기의 문자는 조세의 납부, 부채 및 재산의 소유를 기록한 경제 서류였다. 인류는 조세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문자를 발명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쌀이나 밀이 주식이 된 것도 세금과 관련이 있었고, 국가에서 성벽을 세운 건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함도 있었지만 세금을 낼 백성이 이탈하는 걸 막기 위함도 있었다.
배 몇 척을 빼앗은 나는 해적이라 비난하고 전세계를 갈취한 사람은 황제라고 칭송한다.
악명높은 해적두목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옛 왕들은 타국을 정복해 땅을 넓히고, 조공을 받았다. 자국민들에게도 별의별 명목을 달아서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갈취하기도 했다. 창문세, 독신세, 이교도세, 유방세, 신문세, 소금세 등등. 말도안되는 세금을 보면 해적질과 다를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배웠던 역사적 사건이나 역사적 인물의 뒷면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세금 문제가 있었다. 은행의 시발점이 되었던 유대인의 고리대금업도 그들이 그 당시 천시받던 조세농부의 일을 하다가 시작된 것이었고, 바빌론 유수가 일어났던 건 시드기야 왕의 조공거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마치 거미줄처럼 세금으로 비롯된 역사적 사건은 이후의 역사에 또다시 영향을 미쳤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세금을 내는 농부가 도주하지 못하도록 로마 시민이 누리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중세 농노 제도의 씨앗이 뿌려졌고 시민들은 노예로 전락했다.
비폭력 운동으로 소금행진을 했던 간디는 독립운동 초기, 영국에 납세를 거부하는 비협조 운동을 반대했다. 당시 농민들이 인도 지배층에 납부하던 토지세도 같이 거부할까 두려워 했다는 점에서 간디도 결국 지배층이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의 가장 큰 위협은 영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은 프랑스 국민이었다. 그는 부족한 재정수입을 약탈로 채웠고 이로인해 수많은 국가를 적으로 돌려 몰락했다.
세금은 반란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고, 국가 쇠락의 원인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세금은 불과 같아 적절히 다루면 온기를 나누어 좋은 나라를 만들지만 적절한 관리와 돌봄이 없으면 모든 걸 태울 수도 있다. 세금의 공정성에 대한 대립과 갈등은 역사적으로 빈자와 부자 사이에 가장 많았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당연히 부자가 더 많은 세금을 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한때 빈자 과세가 유행이던 시절도 있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 그들이 더 열심히 일할거라나 뭐라나. 프랑스에서는 이에 분노한 농부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역사적으로 하나의 기관이 과세권과 지출권을 모두 가지면,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보다 더 많이 징수하려는 노력이 더 강해진다. 정부는 항상 과도하게 지출하려는 경향이 있고, 입맛대로 수입을 늘리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도 그렇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건강보험의 징수기능과 지출기능을 분리하는 것이다. 과세권과 지출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기관은 권력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은 기대보다도 훨씬 좋았던 책이다. 학교에서 배웠던 세계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세계관세기구에서 현대 관세행정을 소개하러 7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책 중간중간에 외국 학자의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도 나와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최근에 봤던 경제 뉴스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지만, 세금을 중심으로 엮인 역사적 사건들이 흥미로웠고, 우리나라의 세금 문제에 대해 미처 몰랐던 부분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덕분에 앞으로 뉴스를 보더라도 세금이라는 요소가 어떻게 얽혀있는지도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