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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ㅣ 사계절 1318 문고 78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2년 7월
평점 :
1.
얼마전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보았다. 모성애가 없는 어머니와 그의 아들사이에서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이야기이다. 짧게 내용을 말하자면, 자신의 삶에 있어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임신을 하게 되고 아들에게 모성애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의 시선에서 접근하지 못한 채 심리적으로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점점 성장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학교의 많은 학생들을 죽이고, 자신의 아버지와 여동생 마저 죽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면회에서 본 아들에게 이유를 묻자, 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았었는데, 잊어먹었어요."라고..
2.
소설 <맨홀>에는 한 남자 아이가 나온다. 아버지에 대한 가정 폭력 때문에 불행하게 살아왔다. 악마라고 생각하고 증오해왔던 아버지가 소방관으로서 여러 명의 생명을 구하고 순직하게 되면서 세상에 의해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고, 이를 아니라고 세상에 외쳐 진실을 바로 잡고 싶지만, 무의미한 게 되어 버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입장이었기에 '내 편'이라 의심치 않았던 누나는 연극배우가 되고자 곁을 떠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악마로서 아버지가 아닌, 영웅으로서의 아버지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이자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명성 덕분에 살인죄가 감면당하게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 역시 영화 <케빈에 대하여>처럼 엄마가 아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을 두려워 하고, 괴로워 하며 감정을 쏟아낸다. 그런 엄마를 두고 집을 나와 집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이 두 작품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속의 국적과 상황, 그리고 정서는 다르지만 교묘하게 두 작품의 끝은 닿아있다. <케빈에 대하여>의 '알았었는데 잊어먹었다'는 아들의 짧은 답변 속에 담긴 의미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말로 풀기에는 너무 복잡한 그 감정.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였기도 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찾아 자신의 악몽 속을 헤집기에는 너무 무서웠던 것이 아닐까?